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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포길 주변의 숨겨진 이야기/ 성삼문 선생의 무덤 일지총(一肢塚)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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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포길 주변의 숨겨진 이야기/ 성삼문 선생의 무덤 일지총(一肢塚)
  • 김정헌<동화작가·내포구비문학연구소장>
  • 승인 2018.11.25 22:2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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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지총 전경

조선조 500여년 역사에서 가장 절개가 뛰어났던 충신은 사육신(死六臣)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사육신 중의 한 분인 성삼문 선생은, 우리고장 홍성군 홍북읍 노은리에서 태어났다.

 세조에게 왕위를 빼앗긴 어린 단종을 위해 단종복위 운동을 주도하다 발각된 사육신은 새남터 사형장에서 거열형(車裂刑)으로 참혹한 죽임을 당했다. 거열형이란, 사람의 팔다리를 밧줄로 소나 말에 묶어 각각 반대 방향에서 당기며 사지를 찢어 죽이는 사형 방법이다.

 거열형으로 숨을 거둔 사육신의 시신은 생육신의 한 분인 매월당 김시습이 수습하여 주변에 묻었다고 전해온다. 이 당시에 사육신의 시신이 묻혀있던 장소는, 서울특별시 동작구 노량진동 사육신 공원묘지로 조성되어 있다. 현재 성삼문의 산소는 사육신의 산소와 함께 사육신 공원묘지에 자리잡고 있다.

 그런데 성삼문의 산소가 또 다른 곳에도 전해온다. 충남 논산시 가야곡면 양촌리에 성삼문의 또 다른 산소가 위치해 있다. 산소 이름이 ‘일지총(一肢塚)’이다. 성삼문의 사지 한쪽을 묻었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일지총의 유래가 전설로 전해오고 있다.

▲ 일지총

세조는 새남터에서 참혹하게 사형당한 사육신의 시신을 전국 각지로 보냈다고 한다. 반역을 도모하면 이처럼 처참하게 처벌할 것이라는 본보기를 보이기 위함이었다.

성삼문 선생의 시신 일부를 지게에 지고 걷던 인부가 고개를 넘게 되었다. 인부는 한여름이라 무덥고 힘들고 귀찮은 생각에서 선생의 시체에 욕설을 퍼부었다고 한다. 그때 등 뒤에서,

 “아무 곳에나 묻어라.”

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인부는 깜짝 놀라서 선생의 시신을 고개 주변에 대충 묻고 사라졌다. 이런 이유로 성삼문 선생의 시신 일부가 이곳에 묻히게 되었다.

 여러 해가 흐른 후에 선비 한 사람이 인근 절에서 잠을 자다가 꿈을 꾸었다. 꿈속에서 한 남자가 나타나서 말하기를,


 “지금 내가 있는 곳이 얼마나 더럽고 추운지 모르겠다.”고 하소연하며 사라졌다.

 선비는 잠에서 깨어나 스님에게 꿈얘기를 했다. 스님이 대답하기를,

 “성삼문의 묘소가 근처에 있다.”

고 했다. 선비는 스님의 말을 듣고 선생의 묘소를 찾아가 보았다. 묘는 비바람에 파헤쳐지고 유골이 밖으로 드러나 있었다. 선비는 입고 있던 적삼을 벗어 유골을 정성껏 감쌌다. 땅을 깊이 파고 다시 묻은 후에 봉분을 만들었다. 이후로 성삼문 선생의 신체 일부를 묻었으므로 일지총이라 부르게 되었다.

 일지총 앞으로는 사송재라고 부르는 고개가 있다. 이 고개를 성삼문재라고 부른다. 이 고개와 관련한 전설도 전해온다.

성삼문재를 넘어갈 때 말을 타고 넘는 사람은 넘어지기가 일쑤였다. 멀쩡하던 말이 넘어져서 다리가 부러지거나, 말에 타고 있던 사람이 땅으로 떨어져 크게 다치는 일이 많았다.

▲ 하마비

사람들은 충신의 무덤 앞으로 말을 타고 지나갔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이곳을 지나갈 때는 말에서 내려야 한다는 뜻으로 하마비를 세워놓았다. 사람들이 하마비를 보고 말에서 내린 후에 고개를 넘으면서 다치거나 불상사를 당하는 일이 없어졌다고 한다.

지난 11월 10일에 홍성문화원에서 주최하는 “성삼문 탄신 600주년 기념 ‘내가 성삼문이다’행사에 참여했다. 홍성과 논산지역에 각각 전해오는 성삼문 선생 관련 유적지를 순회하면서 일지총을 답사했다. 이날 일지총의 유래를 전하는 논산시 문화해설사의 설명도 전설 내용과 비슷했다. 인터넷 등에 전하는 전설과 문화해설사의 설명에서 약간 다른 부분이 있긴 했다.

내용에서 조금 다른 부분은 “아무 곳에나 묻어라”는 소리를 듣고 겁이 난 인부는 시신을 그 자리에 내버려두고 도망갔다고 한다. 이 소식을 들은 인근 쌍계사 스님이 시신을 수습하여 산소를 썼다는 내용이 달랐다.

▲ 성삼문 선생 산소(사육신공원묘지 위치)

이후 명종과 선조 연간에 교리 김추후라는 분이 봉분을 조성하였으며, 1615년에 은진현감 정효성과 1765년에 은진현감 이도성이 각각 산소를 정비했다고 한다.

 일지총 앞에는 무덤의 유래를 설명하는 오래된 비석이 서있다. 1765년에 세웠는데 성삼문 선생의 후손인 성낙주가 글을 짓고 성석지가 글씨를 썼다고 한다. 또한 일지총으로 올라가는 왼편 산언덕에는 하마비가 서있다. 일지총 입구 공터에는 성삼문선생 신도비와 선생을 모신 사당 성인각(成仁閣)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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