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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간 30주년을 맞아/ 장호순 (순천향대 신문방송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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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간 30주년을 맞아/ 장호순 (순천향대 신문방송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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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8.11.15 14: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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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호순 (순천향대 신문방송학과 교수)

2018년은 주간지역신문이 30년을 맞는 해이다. 1987년 민주항쟁으로 군사독재 정권이 퇴각하고, 이듬해 새 헌법과 정기간행물 등록법이 제정되면서 지역에 관계없이 누구나 자유로이 신문을 발행할 수 있게 되었다. 군사정권 시절에는 고가의 윤전기를 소유해야만 신문발행이 가능해, 자본과 인구가 적은 지방에서는 신문발행이 어려웠다. 1주일에 1번만 윤전기가 필요한 주간신문은 사실상 신문발행이 금지된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민주화 이후 비록 법적인 제재는 사라졌지만 주간지역신문이 그동안 걸어온 길은 순탄치 않았다. 일제식민지 시절부터 깊이 뿌리박힌 언론에 대한 그릇된 고정관념, 즉 신문=중앙일간지라는 고정관념으로 인해 주간지역신문을 진정한 언론으로 인정하고 대우하는 사람들은 드물었다. 일제 식민지 시절의 친일언론 구조가 청산되지 못한 탓이었다. 일제 강점기 한반도에 진출한 일본인들은 서울은 물론이고, 지방에서도 무려 20여개에 달하는 신문을 발행했다. 그러나 조선총독부는 한국인들에게는 3개의 신문만을 허용했고, 그나마 모두 서울에서만 발행하도록 했다. 언론을 중앙에 집중시켜 손쉽게 관리통제하는 방식은 해방 후 군사독재자들에게 전수되었고, 세월이 흐르며 한국 고유의 언론문화로 토착화되었다.

민주화 이후에도 중앙언론 문화는 제거되지 못했다. 군사독재정권으로부터 민주화를 쟁취한 6·29선언에는 ‘지방자치의 실시’와 ‘자유언론 창달’이 명시되었지만, 지역언론에 대한 탄압과 소외는 지속되었다. 김영삼 정부시절만해도 지역신문은 지역의 정치에 관한 뉴스를 게재할 수 없었다. 소위 ‘조중동’의 언론독과점을 집요하게 물고 늘어진 진보 민주화 진영도 중앙언론의 비대화로 인한 지방언론·지역언론의 소외현상에 대해선 별 관심을 두지 않았다.

자치와 분권을 강조한 노무현 정부들어 지역신문의 공익적 기능을 인정하고 촉진하기 위한 지역신문발전지원법이 제정되었다. 건강하고 유익한 지역신문에 재정과 인력을 지원해 자립기반을 만들어, 민주화 이후 부실난립으로 인해 혼탁해진 지역신문 생태계를 지속가능한 건강한 생태계로 만들자는 취지였다. 그러나 이명박, 박근혜 정부의 무관심과 냉대로 지역신문지원법은 그 효과를 제대로 발휘하지 못한채 현재 명맥만 간신히 유지되고 있다.

문재인 정부의 지역언론에 대한 관심도 과거 보수정권의 수준을 넘어서지는 못하고 있다. 대선 공약으로 내세운 연방제 수준의 자치와 분권을 실현하겠다며 개헌안까지 마련했지만, 언론분야의 자치와 분권에는 아무런 대책도 내놓지 않고 있다. 그 사이 대다수 중앙언론은 박근혜편에서 문재인편으로 위치이동을 마무리했다. 우호적인 중앙언론 진영을 구축한 문재인 정부가 굳이 언론의 분권에 적극적인 관심을 보일 이유가 사라진 것이다.

자치와 분권은 대한민국의 시대적 소명이지만 정치적, 사회적, 지역적 기득권의 저항을 극복하고 실현되기는 매우 어려운 현실이다. 대한민국 지방사람들은 아직도 권력을 중앙에 몰아주고, 중앙권력으로부터 무엇인가를 얻어내기를 기대한다. 지방자치선거였지만 지방자치와는 무관하게 치러진 지난 6·13 지방선거 결과가 이를 증명한다. 그러나 대한민국은 더 이상 중앙과 지방이 공존하기 어려운 국가로 변신했다.

중앙과 지방이 공존하는 방식은 두 가지이다. 하나는 중앙이 지방을 강압적으로 통제하는 방식이다. 과거 봉건왕조, 일제식민지, 군사독재 시절의 통치방식이다. 민주화된 대한민국에선 용인될 수 없는 방식이다. 또 하나의 공존방식은 중앙과 지방이 상호 대등하게 교류하며 호혜를 주는 민주적 방식이다. 중앙은 지방에 문호를 개방하고, 지방은 중앙의 지시와 간섭을 수용하는 방식이다.

현재 대한민국의 중앙과 지방 간의 관계는 결코 민주적이지 못하다. 과거 60-70년대만 하더라도 서울은 지방사람들에게 기회의 땅이었다. 지방의 우수인재들이 서울의 대학으로 진학했고, 두메산골 출신자들이 무작정 상경해서 공단일자리를 구할 수 있었다. 그러나 지금의 서울은 그런 곳이 아니다. 과밀화된 수도권은 지방사람들에게 개방할 여유가 없다. 그래서 서울사람들과 지방사람들 모두 자치와 분권에 대해서 공감한다. 지난 봄 청와대가 발표한 지방분권 개헌안에 대한 여론지지도는 75%에 달했다. 그러나 6개월이 지난 현시점에서 지방분권 개헌이나 자치분권에 대한 관심은 거의 완전히 사라졌다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왜 그럴까? 지방분권의 필요성이 사라졌기 때문일까? 지방분권에 대한 소망이 사라졌기 때문일까? 아니다. 중앙언론에서 더 이상 지방분권에 대해서 보도하지 않기 때문이다. 지방분권에 대한 관심이 고조되었던 시기는 중앙언론에서 잠깐 집중적으로 보도한 그 시점뿐이었다. 자치와 분권에 대한 무관심은 지역언론을 외면하고 중앙언론만을 선호하는 한국사회에선 불가피한 현상이라 할 수 있다. 민주화 이후 30년동안 한국사회에 많은 것이 변했지만 권력과 언론의 중앙집중은 조금도 달라지지 않았다. 권력과 언론 모두 분권과 자치를 달갑게 여기지 않는다. 선거공약이나 정치적 구호 이상으로 실현되기를 바라지 않는다.

대한민국이 중앙과 지방의 전근대적 구분을 극복하고, 모든 지역이 골고루 잘 사는 진정한 자치분권 국가가 되려면 언론의 분권이 선행되어야 한다. 홍성신문과 같은 지역주간신문은 우리가 아직 언론분권에 대한 희망을 간직할 수 있게 해주는 언론이다. 30년 전 홍성신문을 기점으로 전국각지에서 많은 풀뿌리 지역주간지들이 창간되었지만, 그 중 사라진 신문들도 허다하다. 언론은 곧 중앙언론을 의미하는 한국사회에서 주민들 스스로 자기 지역의 신문을 외면하고 무시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지역언론의 기능을 포기하고 지방권력의 브로커로 변질되거나, 지역뉴스 대신 행정기관 보도자료로 지면을 채우는 부실한 지역신문들도 적지 않다.

그러나 풀뿌리 지역신문은 대한민국이 진정한 민주국가, 자치분권국가가 되기 위해서는 결코 없어서는 안될 존재이다. 지난 30년동안 민초들과 함께 해온 홍성신문의 끈질긴 생명력이 더욱 건강하게 이어지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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