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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티아고 순례길<17>/ 즉석 미역국으로 딸아이 생일을 축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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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티아고 순례길<17>/ 즉석 미역국으로 딸아이 생일을 축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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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8.11.08 2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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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현수<홍성읍 남장리>
 
▲ 이현수<홍성읍 남장리>

까스트로예리츠 도착(남은거리 439km)
마을을 빠져나와 긴 오르막길을 오르니 지평선이 보이는 평원이 나왔는데 여기서부터 메세타대평원의 시작이라고 했다.

하늘에 구름이 끼어 햇볕도 약한데다 공기는 차갑고 바람은 세찬데 다행히 뒤에서 바람이 밀어주듯이 불어서 배낭이 가볍게 느껴지고 오히려 따뜻한 날보다 땀도 안 나고 걷기에는 좋은데 멈추면 추워서 쉴 수가 없었다. 어제 발톱이 빠지고 물집 잡혔던 피부가 완전히 벗겨져서 오늘 걸을 수 있을까 걱정했는데 생각보다 통증도 덜하고 걸음걸이가 편해져서 다행이었다.

지루한 평원 길을 걷고 있는데 농부들이 밭에서 골라 쌓아둔 자갈 더미 옆에서  어제 보았던 호주사람들이 바람을 피하며 인터뷰를 하는 모습이 보였다. 한 참을 걷는데 그들 중 키 작은 할머니 한분이 우리를 앞질러 가시기에 딸아이보고 가서 말 좀 붙여보라고 시켰다. 딸아이도 많이 궁금했던 듯 재빨리 따라가서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각각의 사연을 가지고 까미노를 걷는 다섯 명을 주인공으로  다큐멘터리를 제작중이라고 했다.

 

두 시간 반 동안 평원을 걷다가 내리막길에서 만난 첫 번째 마을에서 아침 겸 점심을 해결하고 다시 길을 떠나 마을 한가운데를 통과하여 평원의 계곡을 따라 두 시간쯤 걸었을  때 마을과는 거리가 많이 떨어진 곳에서 성당의 유적지로 보이는 건물을 만났다. 이상하게도 벽면에 붙어있는 인물조각상의 머리 부분이 모두 훼손되어 있어 성당이 워낙 오래되어 풍화작용으로 그리됐나 생각했다. 원래는 그 자리에 순례자들을 위한 병원이 있었고 옛날에 이슬람세력들이 스페인을 대부분 점령하고 북부 일부만 남았었는데 오늘 묵는 마을 산꼭대기에 있는 성을 차지하려고 치열한 싸움을 벌였던 아픈 역사를 간직한 곳으로 그 당시 이슬람인들이 조각상의 머리를 훼손시킨 듯 보였다. 마을을 들어오면서 입구에 십자가상의 예수님도 머리가 훼손되어 있었다.

이곳은 시골마을 치고 규모가 좀 크고 집은 오래 되었지만 깨끗이 수리해서 알베르게나 바를 운영하는 집이 많은 걸로 보아 이 마을의 주 수입원이 까미노 순례자들인 듯 보였다.

그도 그럴 것이 이 마을을 전후로 마을이 10킬로미터 이상 떨어져 있어서 이곳을 지나쳐가면 너무 많은 길을 걷기 때문에 이곳에서 많은 순례자들이 머무르는 듯하다.

오늘 숙박할 알베르게는 1층 침대만 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OK하고 왔는데 와보니 주방도 깔끔하고 조용하기도 하고 마을 끄트머리쯤에 위치해 내일 아침에 마을을 빠져나가기도 좋을 것 같다. 우리가 도착했을 때만해도 와이파이가 잘되더니 시간이 지날수록 사람이 많아져서인지 속도가 너무 느려 이용하기가 어렵다.

샤워하는 동안 딸아이가 동네 슈퍼에서 계란, 양파, 참치캔을 사와서 밥하고 참치 전 부치고 내일 딸아이 생일에 먹으려고 남겨두었던 즉석 미역국을 내일 묵을 숙소에서는 아무래도 어려울 듯하여  미리 끓여 생일을 축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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