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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티아고 순례길<16>/ 발톱 빠진 새끼발가락이 아침엔 어떨지 걱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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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티아고 순례길<16>/ 발톱 빠진 새끼발가락이 아침엔 어떨지 걱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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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8.11.01 09: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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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현수<홍성읍 남장리>
▲ 이현수<홍성읍 남장리>

발가락 문제로 하루 더 머물까하다가 멈추기보다는 조금이라도 더 가자고 짐을 챙겨 7시쯤 숙소를 나왔다. 더러는 부르고스가 볼거리도 많고 휴식도 취할 겸 하루 더 머무르는 이들도 있었다. 자판기에서 빵 두개와 음료수  한개 물 두개를 뽑고 나니 동전이 바닥이 났다. 왜 이 나라 자판기는 동전만 좋아하는지 모르겠다.

어제 갔던 부르고스대성당을 지나 시내를 빠져나와 급류가 흐르는 작은 강을 건너는 다리를 지나니 어제 걸어왔던 공원의 산책길이었다. 이따금 걸어서 출근하는 시민들이나 대형견을 데리고 아침 산책을 하고 있는 시민들이 보였다. 한참 걷다보니 강가로 이어지는 산책로에 노란 화살표가 있고, 성곽처럼 견고하고 넓게 둘러 쳐져 있는 돌담 안으로 들어가는 입구에도 화살표가 있어서 그 안으로 들어갔더니  아주 넓은 산책길 끝에 고풍스러운 단층건물이 나타났는데 쭉 이어진 건물의 불 켜진 창문으로 서가에 꽂힌 책들이 보여 혹시 대학교 건물이 아닐까 생각했는데 역시 부르고스종합대학교였다. 우리가 처음 보았던 건물은 역사가 오래된 건물인데 갈수록 현대적인 건물들이 들어서 있고 간혹 등교하는 학생들의 모습이 보이곤 했는데 대학 교정이 웬만한 마을보다도 훨씬 더 커 보였다.

하늘에 구름이 잔뜩 끼어 있고 축축한 날씨여서 혹시라도 비가 올까봐 마을에 도착하기 전 길에서 빵과 음료수를 먹었다. 한 시간 반쯤 걸었을 때 첫 마을이 보이고 세 시간쯤 걸었을 때 두 번째 마을 입구에 있는 바에서 맛없이 크기만 한 샌드위치, 커피와 콜라를 사서 둘이 나눠 마셨다. 그 바에 스테파니아가 먼저 도착하여 커피를 마시고 있었는데 자리가 없어 합석했는데 스테파니아가 어젯밤 잘 잤느냐며 사람들 코 엄청 골더라고 해서 우리도 이번 까미노 중 최고였다며 깔깔대며 웃었다. 스테파니아는 궁금한 게 있는데  이런 바는 돈을 얼마나 많이 버는지 궁금하다고 하니 딸아이도  그게 항상 궁금했다며 어느 나라 사람이든 생각은 같은 것 같다며 웃었다.

세 번째 마을을 그냥 지나쳐 가는데 길가의 오래된 아주 작은 성당에서 수녀님이 순례자들에게 기적의 패를 나누어 주고 계셨다. 성당 이름도 기적의 성모성당이었다. 딸아이는 돈을 받고 파는 건줄 알고 안받으려했는데 그냥 주셔서 너무 미안하고 감사했다고 여러 번 말했다.

마을을 지나 완만하지만 길고 긴 오르막이 계속되었다. 저 멀리 언덕과 하늘이 맞닿은 꼭대기에 다다르면 내리막이겠지 하고 가보면 조금 더 완만하지만 끝없이 긴 오르막이 또 다시 계속되더니 마침내 내리막길이 나오고 30~40분쯤 거리에 마을이 보였다.

절뚝이며 간신히 내리막길을 내려가 호르미요스델까미노마을에 다다르자 맨 처음에 보이는 알베르게에서 묵기로 했는데 마을 입구에 두 집이 마주보고 있었다. 한 집은 벌써 만원이라 문을 닫았고 다른 한집으로 들어갔더니 마지막으로 이층침대 두개만 남았다고 했다.

시설이 비교적 깨끗하고 괜찮다 싶었는데 샤워하고 침대에 올라갔는데 작은 벌레 한마리가 기어가고 있어서 손가락으로 눌렀더니 탁하고 터졌는데 빨간 피가 그 작은 몸속에 가득 차 있었다. 잘은 모르지만 필시 배드버그가 아닌가 싶어 침대를 이리저리 살펴보았는데 더는 보이지 않았다.

속 썩이던 새끼발가락에 붙인 밴드를 떼어냈더니 발톱까지 빠져있고 물집 잡혔던 피부가 벗겨져 뒤집어져 있었다. 손톱깎이로 조심스럽게 떼어내고 연고를 발랐는데 내일 아침엔 어떨지 걱정이다.

일곱 시에 숙소에서 9유로에 제공하는 저녁식사를 하러 나갔는데 옆자리에 대전에서 오신 분이 계셔서 오늘 처음 뵙는다고 했더니 오늘 부로고스를 출발해 처음 까미노를 걷고 계신다고 하셨는데 생각지 않게도 열한 번째 오신 아저씨가 며칠 전부터 안보여 어디까지 갔는지 궁금했는데 어제 묵은 숙소에서 그 분을 만났다고 했다.

오늘 저녁메뉴는 닭고기를 넣은 빠예야였는데 뜸이 잘 들어서 그저께 먹은 것보다 훨씬 맛있었다. 호주에서 왔다는 노인 두 분과 젊은 사람들 서너명이 까미노에 관련된 다큐멘터리라도 찍는 듯 방송국에서나 볼 수 있는  큰 카메라로 식사장면을 찍고 있었다. 얼마 전에 길을 걷다가 드론이 날아다니는 걸 본적이 있는데 아마 그들의 것이었나 보다.

식사를 마치니 8시. 이제 잘 시간라고  스테파니아가 말하니 대전에서 오신분이 벌써 자냐고 하셔서 여기서는 할일이 없어서 일찍 잔다고 말했더니 이해하시겠다는 듯 웃으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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