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D. 2024-04-25 15:36 (목)
테이스터 권미림의 커피 인물사<22>/ 달리-두엔데, 레다 체어 그리고 카페 솔로
상태바
테이스터 권미림의 커피 인물사<22>/ 달리-두엔데, 레다 체어 그리고 카페 솔로
  • guest
  • 승인 2018.11.01 09:05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권미림<커피비평가협회 충남본부장>
▲ 권미림<커피비평가협회 충남본부장>

커피의 매혹은 끓어오름으로 시작된다. 끓인 물이 아니고는 추출할 수 없는 커피의 속성 때문이다. 배전 정도에 따라 물의 온도는 달라지지만 추출에 쓰이는 모든 물은 끓어오름에서 출발한다. 열정이 삶을 끌고 가듯 커피 또한 뜨거움으로 완성되는 것이다. 커피의 영혼이라 할 향기가 높은 온도에서 더 강렬한 것은 뜨거움에 제 몸을 내어준 유기물 덕분일 것이다. 제 몸을 내어주지 않고 어떻게 영혼과도 같은 향기를 피워 올릴 수 있단 말인가.

여기에 두엔데의 힘이 있다. 황홀한 절정 또는 끓어오름을 뜻하는 두엔데는 투우와 플라멩코의 나라, 스페인의 대표정서다. 스페인의 끓어오름은 집시들의 한(恨)에서 출발했고 그 한을 거름으로 예술이 성장했다. 그리고 꿈과 환상의 화가, 살바도르 달리를 낳았다.

그가 뜨거움으로 기억되는 건 흘러내리는 모양의 시계 때문일 것이다. 불변적이고 절대적인 시간과 달리 고무줄처럼 늘어난 회중시계는 사막의 강렬한 불볕더위를 연상시킨다. 그가 태어나 자란 지중해의 강렬한 기억이 시간에 대한 그의 해석을 변형시킨 것이다. 젊은 날의 그를 끓어오르게 한 것은 다름 아닌 한(恨)이었다. 일곱 살 된 장남을 잃은 그의 아버지는 둘째 아들 달리에게서 장남의 흔적을 찾으려 했고 그런 아버지의 태도는 그에게 늘 나는 누구인가라는 정체성의 혼란을 부추겼다. 그가 어린 시절의 대부분을 일탈로 보낸 것은 자신의 정체성을 찾기 위한 몸부림에 다름 아니었을 것이다. 그리고 마침내 찾은 파리에서의 자유…


스페인의 커피 문화에 익숙한 그에게 파리는 그 어느 곳보다 평안하고 안락했을 것이다. 알무에르소라는 간식 시간을 갖고 스페인식 에스프레소, 카페 솔로로 커피 세계에 입문한 그에게 파리의 카페 문화는 또 얼마나 낯익은 풍경이었을까. 게다가 헤밍웨이와 카뮈, 피카소 등 기라성같은 당대 작가들과의 만남이라니…

파리의 카페가 그를 기억하는 건 레다 체어라는 독특한 의자를 통해서다. 다리에 킬 힐을, 팔걸이에 여성의 손을 집어넣은 레다 체어는 그가 드나들던 파리의 한 카페를 위해 드로잉됐고 지금도 스페인의 한 가구회사에서 출시 중이다. 2013년 달리 탄생 백 주년을 기념해 상품화되기도 했던 레다 체어는 파리의 커피 문화를 사랑한 달리의 상징물이자 아이콘으로 여전히 사랑받고 있다.

“완벽해지려 하지 마라. 어차피 안 될 거니까”란 말로 스스로를 다독였던 그는 누구보다 완벽한 삶을 산 예술가였다. 스페인과 미국 프랑스를 넘나들며 화가로서의 영화를 누렸고 말년엔 스페인 국왕이 주는 푸볼 후작 작위까지 받았다. 플라멩코가 집시들의 한을 승화시켰듯 그 또한 어린 시절의 한(恨)을 뜨거움으로 승화시킨 인간 승리의 결과였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
이슈포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