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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 이야기/ 갈산면 와리 압곡마을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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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 이야기/ 갈산면 와리 압곡마을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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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8.10.08 1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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압곡에 대한 ‘기억’에 취하다
▲ 원와마을을 지나 보이는 압곡 마을 입구 표지석.

삶을 살아간다는 것은 무엇일까요? 수많은 만남과 이별을 반복하며 쓰는 책이 아닐까 싶어요. 사람마다 가지고 있는 고유한 책이죠. 그 책들은 목차부터 구성과 내용까지 너무나 다르기 때문에 한 권 한 권이 굉장히 소중하고 특별하지요. 마을 주민분들은 저희들에게 많은 기억들을 읽혀주셨어요. 타임머신을 타고 그때의 그 시절로 돌아가, 그곳에 있었던 것만 같은 생각이 들었지요. 그만큼 아주 흥미로운, 재밌고도 슬픈 이야기들이 많았어요. 저희 같이 압곡마을 주민분들의 기억을 읽으러 가볼까요?

1. 혼례
특별한 날 하면, 결혼식이 떠올라요! 둘이 하나가 되어 조화를 이루기로 약속한 날, 잊을 수 없을 날이 아닐까요? 옛날에는 꽃가마를 타고 시집을 오신 분도 많다고 해요. 압곡마을 주민분들은 어떻게 혼례를 치르셨을까요?

“서부에서 용호리 돌아서 여기까지 꽃가마 타고 왔어. 쪽두리 쓰고 원삼 입고. 꽃가마에 처렁처렁 촤악하고 수술 늘어져 있어. 수술은 남색, 분홍색, 빨간색, 고루고루 다 있지.나무로 된 부분들도 곱게 칠했지.” 
-김봉학 (85)

“그때만 해도 꽃가마 타고 댕기는 사람도 있었는디, 꽃가마 타믄 아버지 뻘쯤 되는 분들이 메고 오는디, 와서 메 주므는 또 나도 가서 가마 메 주야 하니께 그거 싫어설랑은 보행으루 오라 했지. 우리는 고거 싫어서 안 혔어.”
-전용구 (83)

“난 집에서 했어. 구식으로 했어. 닭 날리구. 마을 사람들, 결성분들도 다 왔지. 내가 11월 30일 날 결혼했는디, 86년도.”             
-김동섭 (60)

▲ 전통혼례하는 모습. 이미지 제공=Pixabay

“함은, 결혼식 하기 사흘 전에 신랑 친구들하고 신부 집 가서 함을 미리 파는 거예요. 함을 500m 전방에서부터 그 집, 소리 지르면 들리게 끔. 주로 저녁 때 왔었지요. 어둘 무렵에. 친구들이 이제 함 가방 메고, 여럿이 와서 신부 댁 길목에서 함 사시오. 하고 소리 질렀지유. 몇 명이 와서 짓궂게 그냥 허고 하면 함, 신부 집에서 돈을 주야만이 함을 사잖아요. 몇 발짝 걸으면 봉투 하나, 몇 발짝 걸으면 봉투 하나, 이렇게 신부 집서 내놨었잖아요. 신부 집 바짝 오면은 동네 사람들이 함잡이 함 벳겨서 들어가면 그 방에서 신랑 친구들, 함 팔러 온 사람들 술자리를 극진하게 대접허고. 술 먹고 이렇게 하고 가면은 친구들이 이제 함 값 받은 거 갖고, 잘 노는 거죠.”        
-박수용 (62)

“아이고. 꽃가마가 뭐여. 그때는 먹고살기가 어려우니께. 동산서, 당일치기로 식을 올리고서 점심 먹고 혼인집이 떠나는디, 트럭 하나 댔더라구. 트럭으로 국민학교 모탱이, 거기 와서 내리데. 길이 좁아서 차도 못 들어오고, 거기서 일로 걸어왔어. 음력 시월 초나흗날. 더워. 핵교 모퉁이서 여길 걸어오다가 목과동 배알 고개라는 데서 거가 서낭 이리야. 옛날에는 서낭이라고 돌 막을 시 개를 던지리 야. 그래야  잡귀, 잡신이 안 따라온다고. 돌 시 개를 줏어 주면서 우리 친 형님이, 동상 이거 시 개를 한 번, 한 번, 내뜨리리고 가라고. 그리고 침 밭으리 야. 그래서 하나, 하나 이렇게 내뜨리면서 침 밭으라고 혀서 했지.”
-이이순 (81)

“내가 스물한 살이, 음력 10월 21일 날. 동산에서 가마 타고 시집왔어. 옛날이 그거 꽃가마 메고 대니는 으른들이 있었어요. 이 동네 저 동네. 그런 으른들 하고 나 키워준 으른이 같이 가요. 우리는 오빠가 오셨어. 그러켜서 데려다 놓고 그 가마 타구 가셨어. 식은 이게 상이면, 오른쪽이 신랑. 왼쪽이 신부여. 상 양옆으로는 닭 갖구 있어. 여곤 암탉 갖구 있고 저곤 수탉 갖고 있어. 각시가 먼저 두 번 반인가 절 혀. 그다음에 신랑이 절허여. 하고 나면은 닭을 널려. 잘 살라고. 그러구서 잔치하잖어. 그러고 끝나는 겨. 혼례 허고 연태 살았슈.”          
-이월용 (88)

“꽃가마 쬐끔 타고 왔어. 차타고 갈산 조금 더 와서 서부 가는 데께서 내리고 요기만. 옛날이는 장가가는 거라고 하는 거여. 신랑이 새악시 집이 와서 초례 지내구서 가야지. 신랑이 우리 친정이로 올 적인 후행 하나 따라 오야지. 옛날이는 결혼식에 사람 많이 없었어. 옛날이는 하나. 나 갈 때두 친정아버지가 딸네 안 간다고 작은아버지나 오빠나 보냈지. 아이, 그때 눈물 나. 오는 사람 서운해서 눈물지고, 친정 오빠나 누구도 눈물지고 가고... 서운해서. 두고 가니께, 살라고 여기다 두고 가니께.”
-김욱 (94)

2. 주막

알싸하고도 달큼한 막걸리.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는 술이지요. 지금은 슈퍼 냉장고에서 시원한 막걸리를 구매할 수 있지만, 예전엔 그렇지 않았지요. 압곡마을 주민들은 긴 밭 꽁지에 있는 주막에 가거나 결성 술차에서 막걸리를 받아먹었다고 하시더라고요. 40년 쯤 전엔 집집마다 돌아가며 부녀자들이 주막을 운영하기도 했다고 하시고요. 그 옛날 압곡마을 주막으로 떠나 볼까요?
※구매사업: 마을 부녀회 자금을 마련해 쓰라고 정부에서 권장한 사업. 농협에서 물건을 사 와서 집집마다 돌아다니며 물건을 팔거나 결성에서 술을 떼 와 돌아가며 주막을 운영했음.

“주막? 결성면 용호 초등학교 거기 반오랭이에 있었어. 술집 있었어. 옛날이 구매사업할 띠는 돌려가면서 했는디. 구매사업이라고 한 달에 한 번씩 돌아가면서 하는데 동네서 돈, 돈 불리고 어쩌고저쩌고 하라고 나라에서 시켰어. 결성 양조장에서 막걸리를 한 통이든 두 통이든 줘. 이 동네 하루 먹는 걸. 주면은 그늠 가꼬 팔어. 그게 구매사업이었지.            
-이이순 (81)

▲ 막걸리. 이미지 제공=Pixabay

“긴 밭 있잖아. 긴 밭 초머리에, 첫 번에, 집이 요렇게 세 개 있지요? 고 첫 집 자리가 옛날에 주막을 했었어요. 막걸리는 결성에서 떼다 팔았지. 사람들이 주전자 갖고 가서 한 주전자씩, 그거 보고 한 되라 그러는데, 한 되씩 받어 가지고 가. 우리 할아버지도 술을 안 자셨고(=드셨고), 우리 영감님도 술을 안 자셨기 때문에 술이란 건 받줌으러 난 안 댕겨 봤어. 몇 년 하시다가 돌아가시매, 고만뒀지(=그만뒀지). 할아버지, 할머니 두 분이 가정집에서 하셨어.”            
-방점분 (82)

“주막은 학교 옆에 있었어. 초가집이 지금은 양옥으로 변신했지만, 전에는 주막에 가면 큰 밭탱이를, 항아리 큰 거를 부엌에 묻어 놨지. 묻어 놓고 막걸리 통이 오면 거기에 붓는 거여. 그런디 옛날에 주막집이 어떤 때는 막걸리가 싱겁고 어떤 때는 괜찮을 때가 있거든? 왜 싱겁냐면 막걸리에다가 주막집에서 자꾸 물을 부어서 그랴(웃음). 그래도 그냥 막걸리 맛이 싸하고 그러니까, 일하고서 목마르니까 맛도 모르고 벌컥 마셨었지. 배고프고 뭐덜 때니까. 주막집에서 밭탱이에 묻어 놓고 노란 주전자로 한 잔씩 팔고. 안주는 전에 뭐 호되게 없었고, 김치지. 전 같은 건 그 집서 팔지도 않고 거의 다 김치 놓고 그냥 막걸리 먹었었지. 그전에는 주막이 많았지. 여 너머에도 있었고. 가는 곳마다 주막이 있었지.”          
-박수용 (62)

“구매사업? 그거 한 달 저기서 한 달 이렇게 집집마다 다 허지. 혼저만 허면 돼간? 구매사업을 허머는 돈 조금씩 걷으야 혀. 마을이서 걷은 돈으로 구매사업을 하면 많이 더 파는 집이 있고 못 파는 집이 있잖여. 더 파는 집은 이득금이 많이 남고, 못 파는 집은 이득금이 없고, 그렇쥬. 그렇게 혀서 번 돈은 마을 돈으로 쓰지. 여기가 길이 있어서 가시는 아저씨들 오시는 아저씨들헌테 술장사 많이 했어유. 아이. 술이 뭔지 물렀쥬. 물렀는디... 부녀회장이로 나가기 땜이 그것도 허라 하지. 집이 들어 앉았으믄 시키도 안 혀. 빨빨거리고 댕여서라미 허게 됐쥬. ”
-이월용 (88)

<다음호에 계속>
홍성군 청년마을조사단(남지현, 전윤지, 김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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