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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이스터 권미림의 커피 인물사<18>/ 구르몽-너는 좋으냐, 커피 하는 시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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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이스터 권미림의 커피 인물사<18>/ 구르몽-너는 좋으냐, 커피 하는 시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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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8.10.04 16: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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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미림<커피비평가협회 충남본부장>
 

가을은 시몬의 계절이다. 핏빛으로 스러져가는 나뭇잎 때문이다. 4월을 잔인한 달이라 노래한 시인이 있었지만 잔인한 달은 오히려 조락(凋落)의 계절 10월이다. 죽음을 앞두고 타오르는 핏빛 단풍은 아름답기에 도리어 처연하다. 그러기에 우리는 커피 한 잔을 놓고 시몬과 마주하는 것이다.

<...시몬 너는 좋으냐 낙엽 밟는 소리가/낙엽 빛은 정답고 모양은 쓸쓸하다/낙엽은 버림받고 땅 위에 흩어져 있다.../...발로 밟으면 낙엽은 영혼처럼 운다.../시몬 너는 좋으냐 낙엽 밟는 소리가/가까이 오라 우리도 언젠간 낙엽이리니...> 수북이 쌓인 낙엽 앞에서 시몬을 부른 건 프랑스 시인 구르몽이었다. 학창 시절, 그는 청춘들의 술상 위를 안주처럼 끼어들었고 배낭 멘 여행객들 사이를 바람인 듯 떠돌았다. 구르몽이 여성일 거라 짐작한 이도 있었고 시몬이 남성일 거라 추측한 이도 있었다. 구르몽이 18세기 프랑스를 산 남성이며 시몬 또한 여성이란 사실을 모른다 해도 사람들은 가을이면 어김없이 시몬을 부르고 누군가의 시몬이 되기를 소망했다.

이 가을, 커피와 더불어 시몬을 생각하는 건 그 때문일 것이다. 구르몽이 노래했듯 우리 또한 낙엽이 될 것을 알기에 이 가을 잊고 있던 시몬과 마주하고 싶은 것이다. 구르몽이 커피를 사랑했다는 기록은 많지 않다. 그는 프랑스 국립 도서관의 사서로 20대를 보냈고 서른네 살이 되어 시몬의 시 <낙엽>을 썼다. 결핵의 일종인 낭창을 앓아 얼굴에 곰보 자국이 생겼고 그로 인해 일찌감치 여성과는 격리된 금욕의 삶을 살았다. 오죽하면 “금욕이야말로 성적 일탈 가운데 가장 기묘한 것”이라며 은둔의 삶을 토로했을까. 그는 시인 이효석처럼 낙엽을 태우며 커피향이 난다 말하지도 않았고 백화점에서 커피를 갈아 오며 가을은 생활의 계절이라 예찬하지도 않았다. 그럼에도 가을이면 어김없이 그를 떠올리는 건 우리의 삶 또한 낙엽처럼 덧없을 것임을, 그리하여 바쁜 일손 멈추고 낙엽이 내는 소리에 잠시 귀 기울여 볼 것을 권하는 그의 혜안과 철학 때문일 것이다.

14세기까지 유럽은 가을을 계절로 인정하지 않았다. 가을이 가진 우울함 때문이었다. 그들은 10월 중순을 리틀 서머라 불렀고 11월 초순을 해로운 서머라 했으며 11월 중순을 성 마틴의 서머로 불렀다. 미국 역시 인디언 서머란 단어로 가을을 대신했다. 그러다가 15세기, 문인들이 글의 소재로 사용하면서 수확을 뜻하는 하비스트(harvest)와 낙엽을 뜻하는 폴(fall)이 가을이란 단어로 쓰이기 시작했다.

잠시 머물다 갈 이 가을, 낙엽처럼 스러져갈 우리의 삶을 생각한다. 낙엽이 다 하기 전, 누군가의 시몬이 되어 커피 한 잔 나눠볼 일이다. 그리고 물어볼 일이다. 시몬 너는 좋으냐, 커피 하는 시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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