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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이스터 권미림의 커피 인물사<14>/ 프루스트-마들렌과 카페오레, 잃어버린 시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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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이스터 권미림의 커피 인물사<14>/ 프루스트-마들렌과 카페오레, 잃어버린 시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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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8.09.07 1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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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미림<커피비평가협회 충남본부장>
▲ 권미림<커피비평가협회 충남본부장>

추억은 향기를 타고 온다. 이른바 ‘프루스트 현상’ 이다. 마들렌 과자를 맛본 한 작가가 있다. 계란과 버터 벌꿀이 조합된 마들렌의 향기에서 작가는 문득 잊고 있던 과거를 떠올린다. 어린 시절 숙모가 만들어준 마들렌의 추억이다. 이렇게 소환된 기억들로 그는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라는 소설을 썼고 그가 쓴 작품은 마침내 세계문학의 흐름을 바꾸어놓았다. 현대소설의 시조 마르셀 프루스트의 이야기다.

‘기억은 일종의 실험실과도 같다. 무심코 내민 손에 어떤 때는 진정제가, 어떤 때는 햄록과도 같은 독약이 잡힌다.’ 그에겐 세상의 그 무엇보다 기억이 중요했던 모양이다. 기억을 그려내기 위해 그는 시간과 공간의 벽을 허물었고 두서없는 문체를 펼쳤으며 몽환과 명상을 넘나드는 긴 호흡의 소설을 썼다. 그리고 마침내 비자발적 기억이란 신조어를 낳으며 현대 소설의 창시자가 됐다.

그런 그가 카페오레를 즐겼다는 사실은 좀처럼 알려져 있지 않다. 평생 천식을 안고 산 그였다. 햇빛과 소음, 향수냄새 등 어느 것 하나 그에겐 호의적인 게 없었고 덕분에 그는 치열한 생존 현장을 벗어나 작품에만 몰두할 수 있었다. 의사였던 아버지의 넉넉한 유산도 전업 작가의 길을 보장하는 든든한 자산이 됐다.

소설을 쓸 때마다 그는 소음과 냄새 차단에 신경을 썼다. 파리에 있는 작업실엔 벽면마다 코르크를 둘렀고 천식 완화를 위해 아편이 든 로그라 가루를 상비했다. 그리고는 식사 대신 카페오레와 크로아상으로 하루를 시작했다. 추억을 불러내는 향기란 달달함에 다름 아니다. 소설 속 마들렌이 어린 시절의 추억을 소환했듯 현실 속 카페오레 또한 어린 시절 꿈꾸었던, 소설에의 열망을 불러오기에 충분했다. 그렇게 그는 카페오레와 크로아상으로 끼니를 때웠고 정신이 흐트러질 때면 카페인 정제로 만든 각성제로 결기를 다졌다. 오랫동안 그를 돌봐준 가정부는 그가 영양실조에 걸릴까 걱정했다지만 그는 가끔 외출을 했고 그 때마다 엄청난 양의 식사를 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향기가 추억을 소환하는 것은 코에 분포된 후각 세포가 뇌에 있는 편도체 및 해마에 연결돼 있기 때문이라 한다. 편도체는 감정을, 해마는 연상 작용을 관장해 냄새라는 뇌관을 건드리는 순간 추억이 폭죽처럼 터져 나온다는 것이다. 수많은 예술가들이 그토록 커피를 사랑한 것은 어쩌면 잃어버린 시간들을 소환해 줄 달콤하고도 씁쓸한 커피향 때문인지도 모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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