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D. 2024-04-25 15:36 (목)
산티아고 순례길<1>/ 그가 가고 싶었던 그 길을 딸과 함께 떠난다
상태바
산티아고 순례길<1>/ 그가 가고 싶었던 그 길을 딸과 함께 떠난다
  • guest
  • 승인 2018.07.12 18:03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이현수(홍성읍 남장리)

홍성읍 남장리에 사는 이현수 씨가 떠나버린 남편을 그리워하며 딸과 함께 걸은 산타아고 길의 기록들을 나누어 싣는다. <편집자 주>

▲ 이현수(홍성읍 남장리)

나의 인생에서 산티아고에 두 번 다시 갈 일이 있으리라고는 꿈도 꾸어보지 않았다. 작년 오월 말 고칠 수 없다는 의사의 말을 듣던 날, 마지막으로 정리하실 일 있으면 정리하시라는 말을 들었던 날, 버스에서 두 시간 동안 많은 생각들을 하며 내려왔던 날, 그는 눈가에 이슬이 맺힌 채 낮은 목소리로 이야기했다.

산티아고순례길 꼭 가고 싶었는데 못 가게 됐노라고. 자기 가거든 다솜엄마가 산티아고 가는 길 메세타 대평원에 조금만 뿌려달라고. 그 말을 듣고도 나는 그 약속을 지킬 수 있을 거라고 여기지 않았다. 그가 죽음을 향하여 한발 한발 다가가는 모습을 아프게 바라보면서 그리고 마지막 한줌의 재로 변해버린 그를 보내면서 하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은 숙제가 되었다.

그 사람의 소원이기도 했지만 어쩌면 그 사람이 마지막으로 내게 해주고 싶었던 선물일지도 모른다.
미워하며 원망하며 살아온 날들이 더 많았지만 지금 나에겐 미움이나 원망보다는 육십 평생 살면서 해보고 싶은 일도 많고 가보고 싶은 것 가지고 싶은 것도 많았을 텐데 못해보고 그렇게 아프게 떠나간 그 사람에 대한 연민만이 남아 때때로 가슴 한편이 아려온다.

이제 그가 가고 싶었던 그 길을 딸과 함께 떠난다. 순례 길에서 대평원을 만나면 그 곳에서 그를 훨훨 떠나 보내려한다.

2018년 4월 11일 아침 6시.

알람소리에 눈을 떴다. 며칠만의 숙면으로 몸이 개운하다. 며칠 동안 불면증에 시달려 어제는 머리 한쪽에 약간의 통증이 느껴져 내심 걱정했는데 자고 일어나니 머리가 맑아졌다.

친구가 챙겨준 누룽지 끓여 먹고 저녁에 마지막 점검 후 꾸려놓은 배낭을 메고 나서는데 최소한의 필요한 것들만 챙긴다고 쌌는데도 그 무게가 만만치 않다.

어제 하루 종일 심란하게 불어대던 바람도 가라앉고 밤새 봄비도 약간 내린 듯 아침공기도 산뜻한 게 여행의 시작 기분이 좋다.

광명KTX 도심공항으로 가는 시내버스에 몸을 실었는데 출근길의 시민들로 가득하다. 빈자리가 있어 재빠르게 앉아 배낭 내려놓고 도로에 가득한 차량들과 도로변 화단에 화사하게 핀 봄꽃과 다채로운 연한 파스텔 톤의 나무들과 맑게 갠 하늘을 바라보다가 공연히 눈물이 흐르기 시작했다.

혹시라도 누가 볼세라 손가락으로 찍어내다가 감당이 안 돼 휴지를 찾으니 주머니에 어제 넣어둔 꼬깃꼬깃한 화장지가 두 장 손에 잡혀 눈물을 훔치다가 코를 푸는데 딸아이가 뒷자리에서 엄마 내려야한다고 툭툭 친다.

공항처럼 멋지게 지어진 KTX역사 지하 1층에 마련된 도심공항에 이용객들이 별로 없어 도착하자마자 티켓팅하고 짐 부치고 출국심사하고 근사한 공항버스에 탔는데 와이파이도 잘 터지고 미남 기사님이  친절하게 공항까지 잘 모시겠노라 인사하는데 박수를 쳐야 할 것 같은데 아무도 안쳐서 참았다.

너른 갯벌을 지나 여러 대의 바지선들이 점점이 떠있는 바다 한가운데를 가로질러 달리는 버스에서 바라보는 수평선이 연한 물안개로 하늘인지 바다인지 구분하기가 어렵다.

공항에 도착하자마자 딸아이가 미리 예약해둔 유로화 환전하느라 줄 서 있는 동안 친정엄마에게서 전화가 왔다.

몸 건강히 잘 다녀오라고. 엄마도 노인복지회관에서 버스타고 변산반도 여행 가시는 중이라고. 비수기여서인지 공항이 한산한 편이다.

중국 단체여행객들이 부치는 가방마다 황금색포장에 빨간색 테두리가 있는 네모난 선물상자들이 올려져있다. 자세히 보니 김 상자인데 아마도 중국인들이 김을 좋아하나보다.

이미 출국심사를 마친 상태이므로 승무원들이 이용하는 출입구 검색대를 통과하니 기다리지 않고 빨라서 좋다.

나는 40번 게이트 앞에서 기다리고 딸아이는 면세점 구경에 나섰다. 비행기 탑승 한 시간 전, 집에서 들고 나온 빵과 커피 한잔 마시며 뜨고 내리는 비행기 를 구경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
이슈포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