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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이스터 권미림의 커피 인물사<6>/ 헤밍웨이-커피를 위하여 종을 울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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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이스터 권미림의 커피 인물사<6>/ 헤밍웨이-커피를 위하여 종을 울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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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8.07.12 11: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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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미림<커피인문학 강사>
▲ 권미림<커피인문학 강사>

쿠바에서 커피는 ‘생각하는 향기’로 불린다. 쿠바의 아이콘이 된 혁명가 체 게바라와 소설가 헤밍웨이. 이 두 거장이 사랑한 나라답게 쿠바는 커피에도 ‘생각’이란 단어를 붙여 풍미를 논한다. 혁명과 고뇌로 압축되는 두 사람의 생애는 쿠바 태생이 아님에도 쿠바를 열렬히 사랑했다는 것, 그리고 커피를 즐겼다는 점에서 서로 닮아 있다. 햇빛이 수정 같다 하여 크리스탈 마운틴이라 불리는 에스캄브라이 산맥의 크리스탈 마운틴 커피. 쿠바인들의 표현처럼 하나님의 술 같고 부드러운 불 같으며 피와 정신을 맑게 하는 약초와도 같은 이 커피는 쿠바 사람들이 즐겨 찾는 주식과도 같은 음료다. 쿠바가 정열의 나라로 기억되는 건 어쩌면 끊임없이 소비되는 커피향과 이 향기를 매개로 써내려간 헤밍웨이의 주옥 같은 작품들 때문인지도 모른다.

전 생애를 통틀어 7편의 장편 소설을 완성한 과작(寡作)의 작가. 여행과 낚시에 미치지 않았다면 더 많은 작품을 썼을 것이라는 스스로의 고백처럼 헤밍웨이는 펜보다 삶을 더 중시한 역사의 산증인이었다. 1, 2차 세계대전과 스페인 내전, 일본과 전쟁 중인 중국 등 전장이 있는 곳이면 어디든 달려간 그는 그러한 경험들을 녹여 <무기여 잘 있거라> <누구를 위하여 종을 울리나>와 같은 전쟁 소설을 탄생시켰다. 그런 그에게 커피는 암울한 세상 한 복판에서 이야기를 길어올리는 마중물과도 같은 존재였다. 복잡한 문명사회를 떠나 전쟁터로, 투우장으로 떠나는 사람들, 망망대해에서 청새치와 싸우고 투우와 낚시에 미쳐 어딘가로 떠나는 작품 속 주인공들 곁엔 어김없이 한 잔의 커피가 있었다.

그의 소설 속에서 커피는 죽을 고비에 놓인 노인을 살리는 치료제였고(노인과 바다) 여자들 앞에서 마초 근성을 과시하는 남성들의 자랑거리였으며(해는 다시 떠오른다) 전쟁의 상처 속에서도 결코 희망을 놓지 않으려는 망각의 오브제였다.(두 개의 심장을 가진 강)

그 누구도 온전한 섬이 아니다/ 모든 사람은 대륙의 일부일 뿐/ 흙 한 덩이가 바닷물에 씻겨나가면 대륙은 그만큼 작아지고/ 누군가의 죽음은 나를 그만큼 줄어들게 한다/ 그러니 알려고 하지 말라/ 누구를 위하여 종을 울리는지.../ 전쟁과 이혼, 가족들의 잇단 자살을 통해 인간은 누구도 고립된 존재가 아님을, 그리하여 삶의 본질은 지금 이 순간 곁에 있는 사람들을 뜨겁게 사랑하는 일임을 온 몸으로 보여준 그는 누군가의 죽음을 알리는 종소리처럼 커피 또한 그렇게 소통과 화합의 도구로 쓰여져야 함을 역설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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