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풀무학교 설립자들의 지역운동사(2)-주옥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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풀무학교 설립자들의 지역운동사(2)-주옥로
  • 이번영 기자
  • 승인 2018.05.03 19:1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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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성교육과 협동으로 … ‘위대한 평민’ 교육자
 

주옥로는 1919년 12월 24일 홍동면 팔괘리에서 태어났다. 홍동초등학교, 예산공립농업학교, 서울 감리교신학교를 졸업하고 홍동초등학교 교사, 홍동감리교회 목사로 시무하다 1958년 이찬갑을 만나 풀무학교를 세웠다.

청년회 결성해 지역 계몽

주옥로는 홍동에서 두 번에 걸쳐 청년회를 결성해 지역운동에 나섰다. 첫 번째는 1945년 9월 1일 ‘개홍청년회’를 결성해 주민계몽운동을 했다. ‘개홍’이란 말을 쓴 것은 홍동에 대한 개량, 개방, 개혁 등 주민을 깨우칠 목적이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회원은 40여 명이었다.

초등학교에 부임한지 3개월도 안 된 초년 교사가 해방된지 15일 만에 지역 청년 40여 명을 규합했다. 평소에 청년, 지역사회, 그리고 민족 문제에 대해 고민과 꿈을 가졌던 것으로 보이는 대목이다. 개홍청년회는 1950년 6.25 한국전쟁을 만나면서 사라졌다.

평안북도 정주군 오산에서 청년회를 결성해 소비조합을 만들어 지역운동을 폈던 이찬갑과 홍동에서 청년회를 결성해 해방정국의 계몽운동을 했던 주옥로가 만나 풀무학교를 세웠다. 이들은 교육에 전념하던 중 1960년 4월 학생혁명으로 민주화된 새 세상이 다가오자 다시 지역사회로 눈을 돌렸다. 4월혁명이 일어난지 보름 남짓 지난 5월 8일 홍동청년회를 결성했다. 홍동청년회는 면내 마을을 순례하며 주민계몽강연을 했다. 7월 10일에는 수란, 신기, 신촌, 백동, 월림리 등 마을로 나가 강연회를 한 것으로 기록돼 있다. 풀무학교와 멀리 떨어진 변두리 마을로 찾아다니며 강연회를 했다.

그러나 4월혁명으로 독재정권이 무너져 대통령과 장관이 바뀌고 통치 방법이 달라져도 아래 관료들의 생각은 변한 게 없었다. 관료들은 여전히 국민 위에 군림했고 6.25전쟁에서 발생한 이웃간 살육의 상처는 흐르는 세월과 무관하게 각 분야에 점점 더 깊이 파고들어갔다.

이찬갑과 주옥로의 홍동청년회 결성과 활동에 시비가 걸렸다. 주옥로가 해방 직후 결성했던 개홍청년회 회원 중 인민통치 기간에 부역 혐의를 받은 사람이 포함됐다는 이유로 용공단체로 본 경찰이 압력을 가했다. 그런 가운데 이찬갑이 연탄가스중독으로 쓰러져 풀무학교를 떠나면서 청년회 활동은 중단됐다.

졸업생 18명, 4500원으로 신협 창립

주옥로는 1969년 11월 10일 창립총회를 열고 신용협동조합을 만들었다. 풀무학교 교사와 졸업생 18명이 4500원을 모아 출발했다. 홍성 역사상 처음이며 충남도에서는 예산 다음 두 번째였다. 풀무신협은 2가지 특징을 갖고 있다. 교회와 직장 단위 신협이 대부분이던 시대에 풀무신협은 학교에서 시작해 지역 주민이 주도하는 지역조합으로 옮겨간 점과 도시가 아닌 농촌의 작은 면 지역에서 시작한 점이다.

풀무신협은 45년이 지난 2018년 1월 현재 조합원 3357명, 자산 366억 원으로 성장했다. 홍동면 전체 세대수는 1598세대. 세대당 평균 1.9명씩 조합원으로 가입한 셈이다. 은행 문턱은 높고 서민들은 급전마저도 조달할 길이 막혀있던 시대, 낮은 금리로 대출하며 40년 동안 서민금고 노릇을 해왔다.
우리나라 교육이 입시위주, 선발교육, 간판교육, 출세교육으로 인성 파괴, 양극화, 무한경쟁 피해가 심각해지자 학교와 가정과 지역사회 전체가 함께 해야한다는 진리를 체득한 교육계의 새로운 발상이 시작됐다.

충남도는 지난해부터 올해까지 9개 시·군에서 ‘행복교육지구’를 지정해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지난 3월 홍성군청과 홍성교육청이 협약을 체결한 홍성행복교육지구 사업은 앞으로 5년간 25억 원을 투자하는 사업이다. 핵심 내용은 학교와 마을의 경계를 허물고 마을교육공동체를 만든다는 것. 풀무학교에서 60년 동안 추구했던 교육 내용이다. 지난 3월, 이 정책을 설명하는 모임에서 한 관계자는 홍동의 지역공동체교육 실천에서 힌트를 얻은 정책이라고 말했다.

주옥로는 2001년 7월 82세로 타계했다. 그가 일생동안 가르친 교훈은 ‘위대한 평민’. 평민이 위대하다는 것이다. 그가 몸으로 실천하며 길러낸 위대한 수많은 평민들은 오늘도 더 나은 지역 건설을 위해 여러 곳에서 바쁘게 움직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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