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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그런 시대 끝났다’가 될 때 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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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그런 시대 끝났다’가 될 때 까지
  • 홍성신문
  • 승인 2018.03.09 17: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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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투(#Me Too·나도 고발한다) 운동이 충남으로 불붙었다. 안희정 전 충남도지사에게 성폭행을 당했다는 잇따른 폭로로 미투 운동은 이제 유력한 대권주자인 현실권력까지 뒤흔들면서 새로운 변혁운동으로 진화하는 양상이다. 지금까지 피해자들이 폭로하는 안 전지사의 가해 행위는 듣는 것만으로도 고통스럽고 충격적이다. 그간 정치인으로서 보여줬던 깨끗한 이미지 뒤에 가려졌던 추악한 탐욕과 위선이 드러나면서 지지자와 도민들이 느끼는 배신감과 심적 타격은 처참하다.

법조계에서 시작해 문화 예술계로, 대학과 정치권으로 봇물 터지듯이 이어지는 미투 운동은 이러한 폭력이 단지 몇몇 개인들의 일탈과 윤리적 실패에 머물지 않는 다는 것을 증언한다. 가해자가 직을 내려놓고 사과하면, 본보기로 몇몇에게 법적 처벌을 내리면 여성들을 옥조이는 구조적이고 일상적인 차별과 폭력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을까?

‘해시태그 타임스 업(#Time’s up그런 시대는 끝났다)’지난 8일 세계여성의 날 행진에서 쏟아진 이 문구에서도 알 수 있듯이 요즘 우리 사회를 뒤흔들고 있는 미투 운동은 ‘정치공작’이라든지‘펜스 룰’을 들먹이며 물타기에 나선 역풍을 거슬러 근본부터 새로운 변화를 요구하는 압력을 획득하고 있는 것이다.

이참에 우리사회를 지배하고 있는 성폭력에 대한 잘못된 인식이 산산이 부서지기를 바란다. 노벨문학상 후보에 오른 노시인부터 민주주의와 인권을 부르짖는 유력 정치인까지, 권력의 상징인 검찰과 문화 예술계의 거장으로 군림한 자들, 종교인, 여성혐오를 일삼는 일베에 이르기까지 계층, 나이, 이념, 영역을 넘어 이들이 공유하는 탈법적 특권의식이 산산이 부서졌으면 좋겠다. 지금까지 우리사회에 통용된 강간, 성폭행에 대한 법적 판단이나 문화적 정의는 수정돼야 한다. 강도나 폭행의 피해자가 저항여부와 동의 여부, 강요나 협박여부를 증명해야할 이유가 없듯이 성폭력 피해자 역시 저항했다는 것, 동의하지 않았다는 것, 압도적인 힘과 공포 때문에 의지가 꺾였다는 것을 피해자 자신이 증명해야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움직이는 바늘에 실을 꿸 수 없다”는 재치 있는 말로 자신의 의지에 반해 강간당하는 여성은 있을 수 없다는 문화적 해석은 폐기되어야 한다. “합의에 의한 성관계였고, 강요나 협박은 없었다”는 가해자들의 판에 박힌 변명이 더는 통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남성중심의 조직사회가 만들고 퍼트린 ‘피해자 다움’ ‘순결하고 연약한’ 피해자의 이미지는 허구이다. 성폭력의 원인제공자로 여성을 지목하고, 출장과 회식, 업무 대화에서 여성을 배제하고 기피하는 것으로 미투 운동에 대처하려는 일부 남성들의 자기관리 법은 자칫 여성의 사회활동을 위축시키고 차별을 강화할 수 있다.

1898년 조선. 이소사와 김소사는 ‘여권통문’을 발표한다. “슬프다! 전날을 생각하면 사나이의 위력으로 여편네를 누르고, 구설을 핑계로 여자는 안에 머물면서 밖의 일을 말하지 않고, 어찌 밥하고 옷 짓는 일만 하리오. 어찌하여 신체와 수족과 이목이 남자와 다름없는 사람으로 규방에 갇혀 밥과 술만 지으리오” 이 ‘여권통문’은 여성도 남성과 동등한 인간이라 선언하고 평등한 교육권과 노동권 경제권을 강조한 우리나라 최초의 여성인권선언문이다. 100년이 넘게 시간이 흘렀지만 달라진 것은 별로 없다. 오늘의 미투 열풍이 실질적인 여권향상으로 이어지기 위해서는 여성을 대하는 태도나 방식에만 국한하지 말고 정치권에서 보다 적극적이고 공격적인 성평등 정책을 펼쳐야한다. 각자의 삶의 현장에서 몸담고 있는 조직문화에 대한 성찰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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