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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예연 출향시인, 2018 영주신춘문예 시조 부문 당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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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예연 출향시인, 2018 영주신춘문예 시조 부문 당선
  • 윤진아 서울주재기자
  • 승인 2018.03.09 17: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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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 2317편 응모작 중 당선

장곡 출향인 이예연<사진> 시인이 영주신춘문예의 주인공이 됐다.

제주인터넷신문 영주일보사가 시행한 ‘2018 영주신춘문예’에서 이예연 시인의 시조 ‘자전거 소개서’가 영예의 당선작으로 선정됐다. 올해로 11회째를 맞은 영주신춘문예는 해를 거듭할수록 관심과 열기가 더해져 올해만 전국 각지에서 총 2317편의 작품이 응모됐다.

2월 3일 영주신춘문예 시상대에 오른 이예연 시인은 “절제의 가락 속 언어의 숨결은 저에게 있어서는 격조 높은 울림이었다. 그 울림을 따라 달려오는 길은 즐거웠고, 행간의 여백을 추스르며 행복했다”며 “늦은 만큼 보폭을 늘려 달려가겠다. 만학의 길에 든든한 버팀목이 돼준 가족들과 친구들에게 감사하며, 한층 거듭난 모습으로 다시 설 것을 약속한다”고 소감을 밝혔다.

이예연 시인은 2015년 숭의여대 미디어문예창작과를 졸업하고, 2016년 샘터시조상 시조 부문 장원상을 수상했다.

장곡면 상송리 고향, 장곡초 38회

장곡면 상송리가 고향인 이예연 시인은 故 이병철, 김봉제 씨의 2남 1녀 중 둘째로 태어나 장곡초등학교(38회)를 졸업했다. 봄이 오면 앞 다투어 피어났던 꽃들, 보릿고개에 저도 배고프다고 소리 지르던 소쩍새, 으스름달밤이면 으레 들리던 부엉이 울음소리…. 지금도 눈을 감으면 고향의 풍경이 생생하게 펼쳐진다.

“국어시간에 시나 시조가 나오면 설레어 눈이 반짝였어요. 그때는 교과서 말고는 딱히 읽을 책이 없었죠. 교과서에 실린 시나 시조를 보면 마냥 행복해 눈을 떼지 못하고 단물이 나올 때까지 잘근잘근 곱씹어 삼켰습니다.”

어려운 가정형편 탓에 장곡초등학교 졸업 후 학업을 잇지 못했다. 배움이 끝이라는 절망에 여러 날 울며 좌절했지만, 어머니를 위해 분연히 다시 일어섰단다.

“저에게는 위대한 세 여인의 표상이 있습니다. 6.25의 회오리에 죽지 잘린 아버지는 평생을 심신의 아픔 속에 가엾게 사셨어요. 졸지에 가장이 되어 필사적인 노력으로 저희 삼남매를 키워내신 어머니를 지켜보며 철이 들었지요. 또, 꽃 같은 나이에 사변으로 남편을 보내고 자식을 훌륭히 키운 작은어머니, 서른아홉에 혼자의 몸이 되어 조카 셋을 반듯하게 세워놓은 올케언니의 숭고한 삶도 함께 지켜보았습니다. 세 여인의 고귀한 향기를 세상에 전함으로서, 어디선가 고군분투하고 있을 또 다른 어머니들에게 힘이 되고 싶었어요.”

▲ 2월 3일 영주신춘문예 시상식에 선 이예연(가운데) 시인.

환갑 나이에 시작한 만학의 꿈

2018 영주신춘문예 당선작인 ‘자전거 소개서’에는 이예연 시인의 삶이 고스란히 투영돼 있다. 자신의 아픔을 대물림하기 싫어 앞만 보고 달려온 지난 세월. 이예연 시인은 40년 가까이 밤을 낮 삼아 밤 12시에 가게로 출근하면서도 짜증 한 번 내지 않던 남편의 뒷모습을 시로 옮겼다. 온종일 쉬지 않고 달리고 와서 문 앞에 비스듬히 받쳐놓은 자전거를 보는데, 그 모습이 꼭 남편의 뒷모습 같더란다.

영주신춘문예 김영란 심사위원은 올해의 당선작 <자전거 소개서>에 대해 “화자와 오랜 세월을 함께 한 자전거와의 교감이 애잔하게 묻어나는 작품”이라고 설명하며 “네 수까지 자연스러운 호흡으로 끌어가면서 정형의 그릇 안에 다소곳이 앉힌 품이 편안하고 안정적이다. 측은지심으로 상대를 대하는 따스한 마음이 힘든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위로를 줄 수 있으리라 기대한다”고 밝혔다.

“장사하면서도 학교 주변을 지나갈 때마다 ‘저 건물 안에서 학생들은 어떤 공부를 할까?’, ‘나도 언젠가는 꼭 학업을 이어야지!’라고 생각하곤 했어요. 자식 셋 뒷바라지를 끝내고 환갑 되던 해에 용기를 내 공부를 시작했지요. 어느덧 손자 손녀가 셋이나 되는 할머니가 됐지만, 자나 깨나 시조 생각만 하는 게 스스로도 신기할 뿐입니다. 한없이 모자란 사람이지만, 그저 제 이야기가 어느 한 사람에게라도 희망의 씨앗이 될 수 있다면 더 바랄 게 없다는 마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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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 영주신춘문예 당선작
자전거 소개서
이예연

 빗방울은 등에 지고 땀방울은 지르밟아
 가락시장 삼십여 년 공손히 함께해온
 온몸에 보푸라기가 훈장으로 매달린 너

골 깊은 허기에도 비상구 없던 외길
숱하게 부대낀 날 짐받이에 걸어두고
힘차게 달리고 와서 숨 고르는 발동무

쭈글해진 두 바퀴에 기운을 넣어주고
다른 데는 괜찮냐고, 아픈 데는 없느냐고
페달과 늑골사이에 더운 손길 얹는다

청지기 받침대가 남은 하루 받쳐 들면
윤나는 안장위에 걸터앉은 가을 햇살
소담한 너울가지를 체인 위에 감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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