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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성, 역사도시를 꿈꾸다<20>/ 이창섭<생태도시재생연구소 소장·공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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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성, 역사도시를 꿈꾸다<20>/ 이창섭<생태도시재생연구소 소장·공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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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8.02.14 08: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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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도시 홍성 구도심의 도약 시기 I-역사도시 위한 구도심 발전의 중요한 시점은 지금
▲ 이창섭<생태도시재생연구소 소장·공학박사>

홍주읍성을 중심으로 하는 홍성 구도심은 조선 시대까지 내포지역의 행정·문화·경제의 중심지로 충분한 역할을 했다. 일제강점기에 일본인에 의하여 성곽이 부분적으로 철거되고 새로운 도로가 조성되며, 홍주읍성 내부의 도시구조와 역사건축물이 사라졌다. 또한, 행정 중심지로 이때까지 역할을 했지만, 인근 도시인 예산이 더 크게 활성화되어 경제적인 중심지의 역할을 잃어가기 시작했다. 이 시점에 홍주라는 명칭도 홍성으로 변화하게 되었다. 한국전쟁 이후 홍성은 더욱 쇠퇴하기 시작했다. 다수의 행정기관으로 인해 여전히 행정의 중심지로 역할을 하였지만, 1970년대 말 15만 명에 이르던 홍성군의 인구는 2000년대까지 감소하게 된다. 2000년대에 이르며 홍성에 큰 변화가 생겨난다. 그 첫 번째는 내포신도시 조성이며, 두 번째는 주변 도시에 지방법원, 검찰청, 세무서 등 다수의 공공기관이 들어서 내포 지역의 행정 중심지 역할을 소실하는 점, 세 번째는 홍주읍성 내부의 법원, 검찰청, 세무서, 경찰서, 읍사무소 등 공공기관이 홍주읍성 외부로 이전된 점, 네 번째는 홍주읍성 내부를 조선말로 재현하는 ‘홍주성복원기본계획’의 수립이다.

2006년 이후 내포 신도시 조성으로 인하여 현재 홍성군은 홍북읍을 중심으로 인구가 증가하는 추세이며, 내포신도시로 충청남도 도청과 교육청, 경찰청 등 다수의 공공기관이 이전하여 홍성 구도심의 도심 공동화를 우려하게 되었지만, 반면에 홍성이 다시금 내포의 중심이자 충청남도의 중심으로 발전될 가능성을 얻게 되었다. 즉, 내포신도시 조성으로 인하여 홍성은 기회의 순간을 맞이하는 한편 동시에 내포신도시와 경쟁해야 하는 위기를 직면하게 된 것이다. 2004년 홍주읍성 전체 지역을 조선말로 재현한다는 계획은 도시를 활성화하는 방법으로 적합하지 않다. 그 이유는 재현된 홍주읍성 내부에 더 이상 거주할 수 없으며, 복원된 성곽으로 철저하게 폐쇄된 거대한 민속촌과 공원의 형상이 되기 쉽기 때문이다.

2010년대에 접어들며 더 이상 홍주성복원계획에만 집착하지 않고 살아있는 구도심을 만들기 위해 도시재생을 통한 구도심 활성화를 모색하고 있다. 대표적인 예로 오랜 숙원 사업이었던 성문이 없던 남쪽 성곽에 남문을 복원하였고, 북문지 발굴조사를 완료하여 현재 북문을 복원할 계획을 가지고 있다. 또한 이미 사라진 북쪽의 성곽을 전체 복원하지 않고, 성곽이 있던 필지를 매입하여 홍주성 내외를 자연스럽게 연계하려는 계획이다. ‘홍성읍사무소 - 한일약국’의 소규모 블록을 매입해 근대 건축물을 활용하여 홍주읍성 내부에 관광객과 거주자를 위한 공간을 조성할 계획이다. 홍성군의 조직도 크게 개편되어 행정복지국, 지역개발국, 도시재생과, 도시개발팀, 문화관광과 문화유산개발팀 등 홍성 구도심 활성화를 위한 부서가 생성되고 학예사, 전문위원 등의 전문인력이 이전과 다르게 전문가이자 공무원으로 활동하게 하고 있다.

많은 지역 거주자들이 더딘 홍주읍성의 변화에 비판적으로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항시 그렇듯 빠른 변화로 지역의 정체성을 고려하지 않은 계획은 장기적인 관점에서 성공하기 힘들다. 현재 홍성 구도심은 크게 변화하지 않은 듯 보여도 장기적으로 지속가능한 역사도시로 발전하기 위하여 가장 어려운 단계를 지나고 있다. 홍성 지역 주민들과 전문가들이 현재까지 더디지만 탄탄하게 준비하고 있는 홍성군 행정과 함께하면, 머지않은 미래에 역사도시 홍성을 경험하게 되리라 확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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