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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포길 주변의 숨겨진 이야기/ 열다섯 살 어린 원님의 지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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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포길 주변의 숨겨진 이야기/ 열다섯 살 어린 원님의 지혜
  • 김정헌<동화작가·내포구비문학연구소장>
  • 승인 2018.01.15 16:0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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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산 대흥 동헌.

우리고장 홍성군 갈산면 상촌리 안동김씨 집안에, 옛날 열다섯 어린 나이로 예산지역 군수를 지냈던 원님 이야기가 전해온다.

이야기의 주인공은 갈산면 상촌리 출신 김병안으로 전해온다.

김군수가 어린 나이로 부임해가자 관아에 소속된 육방관속들이 말을 듣지 않았다. 더욱이 지역에 힘깨나 쓰는 토착세력들도 모두가 한통속이었다. 어린 군수를 깔보며 시시때때로 어려운 문제를 갖고 와서 지혜를 시험해 보곤 했다.

어느날 관아에 닭 한 마리를 놓고 서로가 주인이라고 싸우는 농부 두 명이 찾아왔다. 담당 관리는 자신이 직접 처리하지 않고 어린 군수를 시험해보려고 두 농부를 군수 앞으로 데리고 들어왔다. 김군수는 잠깐 생각에 잠기더니 두 농부에게 물었다.

“당신들은 오늘 아침에 닭에게 무슨 먹이를 주었소?”

한 농부는 밀을 먹였다는 대답이었고, 또 다른 농부는 수수를 먹였다고 대답했다.

“잘 알았으니 오늘은 집으로 돌아가고, 내일 다시 관아로 나오시오.”

김군수는 농부들을 돌려보낸 후에 아전에게 닭을 잡으라고 시켰다.

“지금 내 앞에서 닭을 잡아라. 닭의 배를 가른 후에 밥통만 내게로 가지고 와라.”

잠시 후에 아전은 닭의 배에서 꺼낸 밥통을 군수 앞으로 가지고 왔다.

“그 밥통을 갈라 봐라.”

어린 군수의 명령에 아전이 닭의 밥통을 갈랐다. 닭의 밥통 안에서는 밀이 잔뜩 나왔다.

이튿날 두 농부가 관아로 들어왔다. 어린 군수는 수수를 먹였다고 대답한 농부를 심하게 꾸짖어서 돌려보냈다. 어린 군수가 어려운 닭의 재판을 지혜롭게 처리하는 모습을 보면서 아전들이 속으로 놀라는 눈치였다.

“어리다고 얕잡아 보았다가는 큰 코 다치겠구나.”


아전들은 그 뒤로 어린 군수를 대하는 태도가 조금 달라졌다. 하지만 군수를 얕보고 우습게 여기는 모습은 여전했다.

김군수가 부임하여 몇 달이 지나고 가을이 되었다. 김군수는 육방관속들을 데리고 관아 밖으로 순찰을 나가게 되었다.

순찰을 나가는 주변 밭에서는 사람의 키보다도 훨씬 크게 자란 수수가 고개를 숙이며 익어가고 있었다. 김군수는 수수가 자라는 밭 앞에서 걸음을 멈추더니 육방관속 한명 한명에게 차례대로 명령하기 시작했다.

“이봐라, 이방. 자네는 지금 당장 저 수숫대를 하나 뽑아서 갖고 오게.”

영문을 모르는 이방은 수숫대를 뽑아서 어린 군수 앞으로 갖고 왔다.

“그 수숫대를 꺾지 말고 온전한 모습으로 도포 소매 속에 집어넣어 보게.”

이방은 수숫대를 도포 소매 속에 넣어보았다. 그러나 사람 키보다도 큰 수숫대를 꺾지 않고 소매 속에 넣는 것은 불가능 했다. 이방은 땀을 뻘뻘 흘리면서 한참동안 실랑이 했다.

“사또 나리, 수숫대를 소매 속에 넣을 수가 없사옵니다.”

“그렇다면 다음은 호방 자네가 한번 해보게.”

그러나 호방 역시도 수숫대를 소매 속에 넣을 수 없었다. 어린 군수는 이렇게 수행한 아전들을 차례대로 불러 명령했다. 하지만 어느 누구도 수숫대를 꺾지 않고 온전하게 소매 속에 집어넣을 수 없었다. 김군수는 이 모습들을 보면서 엄한 목소리로 아전들을 꾸짖기 시작했다.

“이놈들! 일 년도 채 자라지 않은 수숫대 하나도 도포 소매 속에 집어넣지 못하는 놈들이, 훌륭한 선생님 밑에서 열심히 공부하며 십오 년이나 자란 군수를 어리다고 얕잡아 보느냐? 내가 그동안은 너희들 꼴만 가만히 살펴보고 있었느니라. 앞으로 군수를 어리다고 얕잡아 보거나 업무를 소홀하게 처리하는 놈들은 엄하게 처벌할 것이다!”

어린 군수의 쩌렁쩌렁 울리는 호령소리에 육방관속들은 어찌할 바를 모르고 있었다.

“나으리, 저희들이 잘못했사옵니다. 이제는 정신 바짝 차리고 나으리를 정성껏 모시겠사옵니다.”
그 뒤로 육방관속들과 텃세가 심하던 주변 토착세력들은 태도가 완전히 바뀌었다. 어린 원님이라고 함부로 얕잡아보지 못하고 정성껏 모셨다는 이야기가 그의 고향에 전해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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