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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산의 음악여행/ 이제는 월드 뮤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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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산의 음악여행/ 이제는 월드 뮤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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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7.12.07 23: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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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산 신기용<치유명상음악가>
▲ 평산 신기용<치유명상음악가>

필자의 세대는 한참 감수성이 예민한 청소년기에 라디오에서 주로 들을 수 있는 외국음악이 미국과 영국의 팝송이나 프랑스의 샹송, 이태리의 칸쪼네, 중남미의 라틴음악이나 클래식뿐이었다.

그 때에 아프리카, 인도, 아일랜드, 호주, 중동이슬람, 중앙아시아 등등, 토착민의 음악도 많이 들을 수 있었더라면 우리의 감성이 더욱 풍부해지고 정서와 의식 또한 훨씬 풍요로워져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요즈음은 다양하고 다채로운 제3세계음악들이 전파를 타고 있으니 참 반가운 일이다.

우선 아프리카출신의 세계적인 음악가 몇 명을 소개하고자한다.

1. Salif Keita : Folon(지난일, 과거)

마틴 스콜세지의 블루스 다큐멘터리 'The Blues : Feel Like Going Home'에서 통기타를 치며 노래 부르던 사리프 케이타는 서아프리카 말리에서 태어나 그리오의 음악을 들으며 자랐다. 10대 때 가출하여 나이트클럽을 전전하다가 말리의 수도 Bamako에서 밴드의 보컬로 유명해진 후 아프리카 문화 바람이 한 참 불던 프랑스에서 가서 국제적인 뮤지션이 되었다. 2002년도에는 그래미상 후보에까지 오르게 된 사리프는 자신이 알비노(태어나면서 부터 유전적 색소결핍증상을 가진 사람)라는 지울 수 없는 슬픔을 지니고 살고 있다. 그래서인지 거친 그의 목소리에는 고통스러운 자기연민과 탄식이 배어있어 듣는 사람의 가슴을 후벼 파고 영혼의 모서리를 긁어대는 것 만 같다. 서아프리카에서는 집안에 알비노가 태어난 것을 불길한 징조로 여겨 어린 사리프를 동네 사람들이 죽이려고 하여 어머니가 매일 숨기고 다녔었다고 하니까!
* 그리오 : 관혼상제를 찾아다니는 세습유랑음악가

2. Ayub Ogada : Kothiboro(비가 오려나)

1956년 아프리카 케냐 몸바사 루오족의 음악가 부모 밑에서 태어난 아윱 오가다는 1986년 Nyatiti(8줄 달린 수금)와 젬베를 안고서 런던으로 가 길거리공연을 하다가 인기를 얻게 되어 20년을 유럽에서 엄청난 활동하였다. 지금은 귀국하여 자신의 값진 경험을 후배들에게 교육시키는 케냐의 대표적인 싱어송라이터이다.
Kothiboro는 1993년 앨범 En Mana Kuoyo(모래사막)에 수록된 곡으로 아프리카를 소재로 한 영화 'The Constant Gadener' O.S.T로 쓰이면서 우리나라에 소개되었다.
암울하고 간절함이 묻어나는 Kothiboro의 성조는 최면에 가까운 감동이 있다.

3. Oliver Mtukudzl : Ndakuvara

짐바부에 출신의 허스키한 목소리의 가수, 올리버 음투쿠드지는 인권운동가와 유니세프 남아공친선대사로도 활동하는 아프리카를 대표하는 세계적인 가수로 40장 이상의 음반을 내고 수많은 상을 획득 한 바 있다.
Ndakuvara는 소를 부르는 소리로 소를 훈련시키다 몸을 다쳐서 미래의 꿈과 희망이 사라졌다고 푸념하는 노래이다.

4. Hugh Masekela : Stimela(석탄차)

미국의 트럼펫 연주자 디지 길레스피와 클리포드를 사숙(私淑)하던 남아공출신의 휴 마세켈라는 1959년에 그 유명한 피아노 연주자, 아브둘라 이브라힘이 소속된 흑인 밴드 Jazz Epistles에서 모던 재즈를 연주하다가 아파르트헤이트(Apartheid 남아공의 인종차별정책)가 심해지자 미국으로 건너가 뉴욕의 맨해튼 음악학교에 다니면서 자신의 악단을 조직했고 〈Grazing in the Grass〉라는 노래가 담긴 앨범을 발표하여 400만 장이나 팔리는 쾌거를 올리기도 하였다.
아파르트헤이트에 항거함으로써 고국에 들어오지 못했던 휴 마세켈라는 미국과 유럽 및 주변 아프리카를 전전하면서 조국 남아공의 독특한 가락과 화음을 국제무대에 소개해왔다. 남아공 출신의 가수 미리엄 마케바가 바로 그의 부인이었다.

5. Miriam Makeba : Click Song

‘마마 아프리카‘로 불리어지던 미리암 마케바는 남아공 코사족 출신으로 자메이카 출신의 가수, 해리 벨라폰테의 권유로 미국에 데뷔하여 대성공을 거둔 뒤 흑인에 대한 인종차별과 넬슨 만델라 석방을 부르짖다가 남아공 정부로부터 귀국금지를 당하기도 하였다.
‘Click Song’은 원래 남아공 요하네스버그에서 젊은 처녀들이 결혼식 때 부르는 축하노래이다.
사회적 연대의식과 정의감이 투철했던 미리암 마케바는 자서전 ‘Miriam Makeba, My Story ’ 에서 다음과 같은 의미심장한 말을 남겼다.
“나는 개미를 보고 배운다. 아프리카원주민은 자기보다 더 큰 힘을 자연에서 얻기 때문에 자신의 정신을 파괴하는 인종차별주의 무게를 잘 견뎌 낼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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