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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벌써 그립습니다> 87세 영면하며 “밭 매러 가고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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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벌써 그립습니다> 87세 영면하며 “밭 매러 가고싶다”
  • 이번영
  • 승인 2017.12.07 16: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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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벌써 그립습니다
▲ 고 박종술 님에 대한 유족들의 선영안정 예배.

홍동 박종술 ‘아름다운 자연사’ 법과 제도가 유린
‘자연사’ 항목 없어 상주 경찰조사 받아

홍동면 금평리 김애마을 박종술 노인이 지난 2일 밤 자택에서 노환으로 사망했다. 향년 87세. 69년간 해로한 부군과 홍성, 서울, 대구에 사는 자손 7남매 28명 가족을 모두 보고 숨을 거뒀다. 임종 30분 전 자녀들이 각자 어머니와 행복하게 살았던 옛 이야기를 나누며 웃음꽃을 피던 끝에 잠 속으로 들어가듯 숨소리가 멈췄다. 둘째 아들 최용범 씨는 “가을 나뭇잎이 조용히 떨어지듯 가셨다”고 표현했다.

며칠 전 상태가 좋지 않아 큰 며느리 김옥분 씨가 마지막 소원을 들어주려고 귀에 대고 큰 소리로 물었다.

“어머님, 가장 잡숩고 싶은 게 뭐예요?”
=네가 여러가지 다 해 줘서 더 먹고 싶은 것 없다

“어머님, 지금 가장 해보고 싶은 게 뭐예요?”
=밭 매는 일

청양군 정산면 도림리에서 태어난 박종술 님은 열아홉 살 때 세살 위인 홍동면 금평리 김애 최성윤 씨에게 얼굴도 못 본 채 시집왔다. 7남매를 낳아 모두 성공시켰다. 대기업 간부, 초등학교 교장, 유기농업 전문가, 김애마을 이장 등. 명절이면 마을에서 가장 많은 가족이 모여 웃음꽃 피는 잔치가 벌어져 이웃의 부러움을 사고 있다. 이 가족의 모태는 고 박종술 님. 그는 이 집에서 평생 밭에 나가 풀을 맸다. 그에게 밭매는 일은 삶을 지탱해온 힘이었다. 행복이었다. 자손들은 “각자 자리에서 끝까지 자기 삶의 밭을 매라”는 교훈으로 받아들였다. 풀무학교 홍순명 전 교장 등은 분향소 예배에서 “고인은 7남매를 가르치고 모두 교회에 보내 기독교인이 되게 했다. 평범한 아내로, 여성농부로, 어머니로, 신앙인으로 평생을 사신 평민”이라고 회상했다.


지난달 29일 홍성여농센터 강당에서 열린 대한웰다잉협회의 ‘아름다운 마무리’ 강연회에 강사로 나온 최영숙 백석대 교수가 청중들에게 “여러분은 어떤 죽음을 원하시나요”라는 질문을 던졌다. 참석자 대부분이 “어느날 잠을 자다 슬그머니 죽었으면 좋겠다”고 대답했다.

박종술님은 이렇게 모두가 바라는 바처럼 마감했다. 그런데 이 ‘아름다운 마무리’에 법과 제도가 유족들을 폭력적으로 유린했다.

박종술님이 가족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숨을 거두자 같은 마을에 있는 홍성의료생협 ‘동네의원’에 연락됐다. 가정의학과 의사인 원장이 청진기로 진찰을 마친 후 “12월 2일 오후 9시 55분 사망”을 확인했다. 가족들은 홍성의료원 영안실에서 장례를 치르고자 연락, 129구급차를 불러 후송했다.

홍성의료원 응급의학과 의사가 엑스레이를 촬영하고 검시를 했으나 사망 원인을 찾지 못했다. 고인이 몸져 누운건 35일간. 아픈데가 있는 것도 아니고 90을 바라보는 노인으로 그냥 기력이 없어서였다. 15일 전 의료원에 가서 혈액주사 한번 맞은 것 외 다른 치료가 필요 없었다. 의사는 시체검안서에 사망원인을 ‘미상’으로 표시했다. 사망 종류 칸에는 병사, 외인사, 기타불상 3가지 중 ‘기타불상’에 체크했다. 자연사 항목은 없다. 뒤에 김진호 홍성의료원장은 “병원협회에서 정해 전국 공통으로 사용하는 양식”이라고 말했다.

다음날 새벽 3시경 국립과학수사대에서 4명이 홍동면 자택으로 들이닥쳤다. 고인이 숨진 방과 주방 문을 활짝 열어제키고 사진기를 들이대며 먹던 약과 음식 등을 모두 수거해갔다. 그리고 타살 흔적을 찾지 못했다는 것이다. 아침 9시가 되자 상주 2명이 홍성경찰서에 불려가 조서를 받았다. 분리 조서를 받는 중 서로 말이 다르면 부검에 들어간다고 했다.

가족들은 기가 막혔다. 담당 의사 태도까지 불손했다. 사람이 병의원에 가지 않고 집에서 자연스럽게 죽을 권리도 없나 항의했다. 문제는 해결돼 장례는 잘 마쳤지만 막내딸 최기자씨는 청와대나 국민권익위원회에 문제를 제기하겠다고 말했다. 옛부터 내려오는 자연스런 장례질서가 더 이상 무시당하며 유린당하지 않게 해야한다고 목청을 높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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