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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향인 인터뷰/ 콘텐츠 기획자 김동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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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향인 인터뷰/ 콘텐츠 기획자 김동욱
  • 윤진아 서울주재기자
  • 승인 2017.12.05 17: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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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이몽학의 난’을 소재로 했냐고요”

부족한 사료(史料)에 상상 입혀 홍성 역사 재조명
2017 충남문화유산 스토리텔링 공모전 대상 김동욱 씨

 

잊힌 역사에 새 숨 불어넣다

충청남도와 충남문화산업진흥원이 실시한 ‘2017 충남문화유산 스토리텔링 공모전’에서 대상을 수상한 김동욱(45) 출향인을 만났다. 공모전 대상 수상작인 웹툰스토리 <낙화>는 김동욱 씨가 오랫동안 준비해온 ‘임진왜란 3부작’의 마지막 3부에 해당하는 이야기다.
“‘이몽학의 난’은 제 고향에서 벌어졌던 매우 중요한 역사적 사건이에요. 그런데 홍경래의 난이나 동학농민운동 등 유사한 다른 사건들에 비하면 관련 사료가 턱없이 적다는 점이 제 상상력을 자극하더라고요. 제 고향집이 백월산 앞인데, 백월산 무속인들이 모시는 신 중에 ‘홍가신’이 있습니다. 이몽학의 난을 진압한 공으로 형조판서까지 오른 인물이죠. 이몽학은 홍주성 싸움에서 패퇴한 후 동지들의 배신으로 목이 잘려 죽었어요. 난이 진압된 후, 조정에선 이몽학을 죽인 배신자들까지 전부 잡아 올려 가혹하게 국문(鞫問)을 하고 죽였습니다. 호남에서 유명했던 의병장 김덕령도 이 사건에 연루되어 고문을 받고 죽죠. 홍주목이 충청서부지역의 최고거점이고 광천나루가 세곡선(稅穀船)을 올리는 전략적 요충지였다 해도, 왜란 중에 일어난 이 민중봉기를 선조가 왜 그리 민감하게 받아들였을까 하는 의문이 들더군요.”
그동안 역사에서 한없이 미미하게 다뤄졌던 ‘이몽학의 난’에 대해 새로운 관점의 흥미진진한 이야기가 조만간 세상에 선보일 예정이다. 1부 <자객>은 이미 탈고해 소설 출판과 만화 연재 작업을 추진 중이고, 2부 <파천>은 올겨울에 완결할 계획이다. 3부 <낙화>의 세부내용은 현재 수정을 거듭하고 있다. 언제나 역사를 바꾼 것은 민초들의 선택이었음을, 김동욱 씨는 3부작에 걸친 이야기를 통해 여실히 보여줄 계획이다.
“원래는 늘 하던 대로 기획자로 참여해 만화가들의 손끝에서 작품화할 생각이었어요. 그런데 아버지 문학비 제막식에 다녀오던 중 ‘직접 써보자!’는 생각이 들었죠. 고향 어르신들과 친구들 덕분에 창작자로서의 의지를 세운 만큼, 제 첫 작품의 배경을 홍성으로 하고 싶었어요. 아버지를 명예롭게 기억해주시고 저희 가족에게 단단한 정표를 남겨주신 분들에게 조금이나마 은혜를 갚는 길이라고 생각해요.”

▲ 故김양수 교수(오른쪽)와 김동욱 씨.

만화가 매니지먼트사 운영

콘텐츠 기획자인 김동욱 씨는 주로 만화 관련 프로젝트를 총괄기획하고 있다. 한국 최초의 만화 웹진 ‘만화엔진’을 기획·제작한 장본인이기도 하다. 김동욱 씨는 만화가 매니지먼트 회사를 운영하며 윤태호, 강도하, 원수연, 박희정 등 20여 명의 만화가들과 함께 일했었다. <미생>, <이끼>로 유명한 윤태호 작가와는 화실 근처의 허름한 호프집에서, 오래된 선술집에서, 매니저와 만화가로 마주 앉아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만화에 대한 꿈을 나누던 사이다. 강도하 작가의 <위대한 캣츠비>, 김선희 박기홍 작가의 <바둑삼국지> 등이 모두 김동욱 씨가 참여한 작품들이다. 비·송혜교 주연의 드라마로 제작돼 높은 시청률을 기록했던 원수연 작가의 <풀하우스>는 김동욱 씨가 매니지먼트를 맡아 드라마 계약을 완수하고, TV 방영 이후엔 캐릭터 라이선스, 판권 수출, 온라인·모바일 서비스 등등 각종 문화산업과 결합해 순정만화로서는 전례 없는 성공을 거두기도 했다.

▲ 1983년 여름 할머니·아버지와 함께.

故김양수 교수 아들

김동욱 씨는 홍성읍 오관리에서 태어나 홍주초(39회), 홍주중(16회), 홍성고(46회), 충남대 철학과를 졸업했다. 김동욱 씨의 아버지인 故김양수 전 청운대 교수는 홍주문학회 창립을 주도하고 2~3대 회장을 역임하며 홍성에 문학단체가 뿌리내리는 데 큰 역할을 했다.

역재방죽공원에 건립된 ‘김양수 문학비’에는 그의 수필 한 토막이 새겨져 있다. 그 속엔 어린 아들 김동욱 씨도 등장한다. 그래서일까. 고향에 다녀오는 길에 문학비를 볼 때마다 김동욱 씨는 ‘더 열심히, 더 따뜻하게 살아야겠다’고 다짐하곤 한다.

“아버지가 돌아가시기 전에 유언처럼 이런 말씀을 하셨어요. ‘굳세게 살어! 사람은 본래 뜻을 세우기보다 지켜나가는 것이 훨씬 더 어려운 법이다’라고요. 누군가에게 아버지는 수필가일 수도, 농촌운동가일 수도, 교육자일 수도, 언론인일 수도 있겠지만, 제게 아버지는 당신께서 옳다고 믿었던 일들을 실천하기 위해 왼쪽 다리를 절뚝거리면서 굳세게 걸어가셨던 뒷모습으로 기억 속에 남아있습니다.”

단단한 정표 새겨준 고향 “고맙습니다!”

빛바랜 사진 속. 유년시절의 그가 할머니, 아버지와 함께 평화로운 일상을 보내고 있다.

“이때 아버지의 연세가 딱 지금 제 나이인 45세였어요. 아버지가 갑작스럽게 돌아가신 후, 남겨진 저희 가족에게 고향 어르신들이 베풀어주신 선의와 형제 같은 친구들이 보내준 응원은 저희 가족이 잘 살아갈 수 있도록 뒤에서 든든하게 지켜준 ‘수호신’ 같은 느낌이에요.”

돌이켜 보면 늘 살갑게 힘이 돼준 고향이다.

“할머니 장례식 때, 아버지 친구 한 분이 ‘우리 친구 중에 니 할머니가 해주신 밥 한 끼 안 먹어본 놈이 한 놈도 없다’며 두 손을 꼭 잡아주신 기억이 있어요. 다들 어렵던 시절에 끈끈한 정을 나누며 살았던 고향 분들에게 ‘양수 아들, 열심히 잘 살고 있습니다!’라는 인사를 올리고자, 한없이 부족한 제가 인터뷰에 응할 용기를 냈습니다. 홍성신문을 즐겨보시는 어르신들께 사진첩 속 할머니와 아버지의 모습도 오랜만에 보여드리고요.”

고향의 온기 전하는 지역언론 되길

창간 29주년을 맞은 홍성신문에 김동욱 씨는 ‘고향의 온기를 바지런히 전해달라’고 당부했다.

“아버지는 전국 최초의 지역신문인 홍성신문의 태동에 깊은 관심을 가지셨어요. 저 또한 앞으로의 시대를 이끌어갈 언론의 첨병은 지역언론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고요. 우리네 삶과 어딘지 모르게 동떨어진 기분이 드는 전국구 기사보다는, 바로 우리 곁 이웃이 살아가는 미시적인 이야기가 사람들에게 작지만 단단한 힘을 준다고 믿거든요. 차가운 머리와 따뜻한 가슴을 지닌 홍성신문이 앞으로 30주년, 50주년에도 부지런히 고향의 정과 온기를 전해주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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