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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요열<새홍성교회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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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요열<새홍성교회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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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7.11.09 1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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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워 침 뱉기
▲ 유요열(새홍성교회 목사)

‘종교개혁’에 대한 보통의 상식은 ‘16~17세기 유럽에서, 로마 교황을 중심으로 하는 가톨릭교회의 타락을 비판하고 그리스도교의 참된 정신으로 돌아가 교회를 개혁하려 한 종교 운동’정도가 될 것이다. 물론 종교개혁은 당시 교회의 문제를 드러내는 일로 시작되었다. 하지만 그 바탕에는 하나님 앞에서 모든 인간은 평등하다는 정신이 깔려 있었고, 당시 일어났던 인문주의자들의 동참 속에, 신성로마제국의 붕괴와 근대 시민사회로 급격히 전환되는 결과를 초래되었다. 그래서 종교개혁은 ‘the Reformation’이다. 종교개혁으로 번역 소개되면서 교회개혁으로 한정하는 인식이 생겼지만, 사실 종교개혁은 곧 사회개혁이었다. 그렇다면 종교개혁 500주년을 맞이한 지금 한국 개신교회는 어떠한가?

특별한 존재인 냥 세금 안 내겠다고 큰소리치는 목사들, 부와 권력을 물려 주기위해 온갖 방법이 동원되는 교회세습, 나라의 헌법도 무시하면서 사람에 대한 편견과 혐오를 부추기는 일 등등. 한마디로 자기중심주의에 빠져서 타인을 존중하지 않고 자기 생각만 일삼는 무례한 종교라는 세평이다. 사회개혁은 언감생심이고 사회 지탄의 대상이 되고 말았다.

개신교도들을 이르는 말은 프로테스탄트(protestant)이다. ‘저항, 항거하는 자들’이라는 뜻이다. 종교개혁자들은 하나님의 영광을 가로채고 있는 교회와 전통 그리고 성서의 가르침이 아닌 교리 즉 불의에 항거했다. 당연하게 여기고 있던 구체제에 온 몸으로 저항했다. 친척과 재물과 명예와 생명을 다 빼앗길 각오를 하고 진리를 위해 싸웠다. 그래서 프로테스탄트라는 명예로운 이름을 얻었다.

그러나 지금 개신교회는 종교개혁 주제인, ‘오직 성서’는 성직자 성서해석 독점으로, ‘오직 믿음’ ‘오직 은혜’는 무책임하고 값싼 자기만족과 자기확신으로, ‘만인사제설’은 절대 권력의 목사와 절대 순종 평신도의 두 계급으로, 감사의 신앙고백인 헌금과 십일조는 신종면죄부로, ‘신앙’은 지금 누리는 권력과 물질을 잃지 않기 위한 수단으로 아니 더 높은 권력 더 많은 재물을 얻기 위한 수단으로 전락시키고 말았다. 프로테스탄트라는 이름을 계속 사용해도 될는지….

거칠게 나누면 칼빈의 전통을 계승한 교회들은 자기들의 교회를 ‘개혁된 교회’(reformed church)라 했고, 루터의 전통 쪽 교회들은 ‘개혁하는 교회’(reforming church)라 했다. 칼빈은 교회 개혁으로 세워진 교회야말로 참된 교회임을 강조하려고 이렇게 표현 했을 것이다. 그러나 ‘개혁된 교회’가 수동적이며 완료된 과거의 의미가 된다면? 더 이상 개혁을 하려고 하지 않고, 더 이상 개혁을 교회 존립의 근거로 삼지 않는다면? 그렇다면 과거에 ‘개혁된 교회’는 지금 ‘개혁해야 될 교회’, 즉 ‘개혁의 대상’이 아닐까!

“그래도 교회가 좋은 일도 많이 하고 대부분 목사님이 성실하게 목회하고 있는데 몇 가지 잘못된 사례로 너무 침소붕대하는 것 아닙니까!” 그 입장 모르는바 아니나, 사실 루터도 그 비슷한 말을 들었었다. 그러나 타협하지 않고 종교개혁을 이루었다. 아닌 것은 아닌 것이니까!

‘1517년 10월 31일 마르틴 루터는 비텐베르크 성 앞에 있는 교회 문에 95개조의 반박문을 게시했다.’ 이것이 개신교회다. 잘못된 일이 있으면 회개하고 스스로 정화할 수 있는 교회, 약한 자에게는 힘을 주고 강한 자는 바르게 인도하는 교회, 하나님을 내 편 삼으려 하지 않고 내가 하나님 편에 서기 위해 애쓰는 교회, 지금 개혁하는(reforming) 교회, 이것이 개신교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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