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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성군 골목을 가다<6>/ “홍성의 마지막 하꼬방 가는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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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성군 골목을 가다<6>/ “홍성의 마지막 하꼬방 가는 길”
  • 조현옥객원기자
  • 승인 2017.10.27 13:3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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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서로 1575번길
 

홍성읍 대교리 향교 가는 길이다.

옛 홍성고등학교 초입에서 왼편으로 꺾어 들어가면서 바로 시작되는 벽화 골목이기도 하다. 70년대 추억을 그림으로 감상하다 보면 중간쯤 긴 슬레이트 지붕 가겟집(일명 천년 하꼬방)을 만난다. 밖에 내놓은 평상은 동네 할머니들의 쉼터인데 한여름 저녁 무렵이면 이야기꽃이 피어난다. 오늘도 할머니 두 분이 조용조용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낯익은 주인 할머니가 나오시더니 “고구마 익으면 먹고 가”라시며 데리고 들어가신다. 문 밖에는 늙은 호박 하나와 푸르딩딩한 호박 하나가, 종이 상자엔 끝물 가지가 놓여 있고 그 앞 광주리엔 정성스레 담긴 시금치가 사진 찍기를 기다리듯 포즈를 취하고 있다. 안으로 들어가면 갖가지 나무재료로 만들어진 선반에 물건들이 할머니 취향대로 진열되어 있는데 천정에 아직도 80년대 전등갓이 매달려 있다. 창문을 가리는 꽃무늬 화려한 천으로 햇빛이 약간 들어오고“ 친구 o o o이 갖다 놓았다”는 채소 얘기가 맛깔스럽게 그리고 할로윈 놀이를 해도 될 호박이 여기 저기, 생강이 탐스럽게, 붉은 사과가 몇 개 가지런히 있다.

지난 8월 중순, 풋사과 만원어치를 사서 여행 온 사람들과 나눠 먹던 기억이 새록새록 났다. “이렇게 채소를 내놓으면 누가 사가냐”고 물었더니 “근처 농사 안 짓는 사람들이 하나둘 사간다”며 애꿎은 무를 만졌다 놨다 하신다.

할머니가 사시는 ‘하꼬방’은 사실 일본말도 한국말도 아니다. 백기완 선생이 50년대 남산 판자촌에서 ‘달동네 배움집’이라는 간판을 내걸고 아이들에게 한글을 가르치다 경찰에 잡혀갔는데 왜 ‘하꼬방촌’이라고 안하고 ‘달동네’라고 썼느냐며 팼다는 이야기가 있다. 사전에서 찾아보면 ‘하꼬’는 우선 ‘나무, 종이, 대나무 등으로 만든 물건을 넣기 위한 그릇, 대부분은 사각형이다.’와 ‘열차 등의 차량’ 으로 풀이되었다. 실제로 일본에서도 판자 집이라는 의미로 ‘하꼬’를 쓰지 않는다고 한다. 유추해보면 판자 상자의 의미의 ‘하꼬’에 한국 사람들의 ‘노래방’ 이나 ‘PC방’ 에 붙여 쓰는 것처럼 ‘방’을 붙여 쓴 것이다. 50년대 생겨난 판자로 만들어진 집들이 소설 속에서도 ‘하꼬방’으로 표현된 것을 보면 굳이 일본말이어서 쓰지 말아야 한다는 강박은 중요하지 않다. 그 안에 담긴 국민들의 정서와 애환을 읽을 수 있는 눈이면 족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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