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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포길 주변의 숨겨진 이야기/ 홍성군 서부면 궁리 용이 살았던 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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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포길 주변의 숨겨진 이야기/ 홍성군 서부면 궁리 용이 살았던 샘
  • 김정헌<동화작가‧내포구비문학연구소장>
  • 승인 2017.10.16 16:39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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억울하게 죽은 아버지 용이 되다
▲ 옛날 용천이 있던 곳(간월호 수문 부근)

우리고장 홍성군 서부면 궁리 백사장에 용천(龍川)이라 부르던 샘이 있었다.

용천은 밀물 때면 바닷물이 백사장까지 들어와서 바닷물에 잠겼다가, 썰물 때면 바닷물이 빠지면서 모습을 드러냈다. 바닷물이 빠져나간 후에는 백사장 한가운데서 세찬 물줄기를 하늘로 뿜어내어, 마치 분수가 솟아오르는 모습 같았다.

마을주민들은 용천을 아무나 섣불리 접근할 수 없는 신성한 곳으로 생각했다. 해마다 정초에는 용천 앞에서 마을의 무사안녕과 뱃길의 평안을 기원하는 성대한 용왕제를 지냈다.

옛날, 용천 주변에는 아버지와 과년한 딸이 살고 있었다. 아버지는 바다에 나가 고기잡이로 생계를 이어나갔다. 어려서 어머니를 여읜 딸은 무럭무럭 자라서 예쁘고 효성스런 딸이 되어 아버지를 극진히 모셨다.

어느날, 아버지는 바다로 고기잡이를 나갔고 딸은 집주변에서 나물을 뜯고 있었다. 그런데 난데없이 낯선 젊은이가 나타나더니 딸이 나물을 뜯는 주변에서 의식을 잃고 풀썩 쓰러지는 것이었다.

깜짝 놀란 딸은 젊은이 옆으로 달려갔다. 낯모르는 젊은이라서 조심스러웠지만 앞뒤 가릴 상황이 아니었다. 우선 죽어가는 사람을 살려놓고 보는 것이 당연한 도리라고 판단했다.

“여보세요! 여보세요! 정신 차리세요!”

 딸은 부리나케 집 앞 샘으로 달려가 찬물을 떠왔다. 젊은이에게 물을 먹이고 시원한 그늘을 만들어 주었다. 젊은이는 한참 시간이 지난 뒤에 가까스로 의식을 회복하고 눈을 떴다.

“으음, 배가 고파요, 저에게 먹을 것을 …”

 딸은 젊은이가 의식을 되찾은 것이 반가웠다. 몇 끼를 굶었는지 정신을 차리자마자 먹을 것부터 찾고 있었다.

“예, 저희 집으로 가시지요. 제가 얼른 밥을 지어드리겠습니다.”

 딸은 젊은이를 부축하여 집으로 데리고 왔다. 젊은이를 방안에서 쉬게 한 후에 부랴부랴 밥을 지어 허기를 채우도록 했다.

바다에서 돌아온 아버지가 낯선 젊은이를 보고 깜짝 놀랐지만, 죽어가는 사람을 살렸다는 딸의 설명에 마음을 놓았다. 참으로 잘한 일이라고 딸을 몇 번이나 칭찬했다.

정신을 차리고 앉아있는 젊은이는 이목구비가 훤칠하고 예사사람은 아닌 듯했다. 무슨 일인지 모르지만, 누구엔가 쫓기는 상황인 듯했다. 하지만 아버지나 딸도 사연을 묻지 않았고, 젊은이도 자신의 신분을 밝히지 않았다.

“이제 그만 가보겠습니다. 저를 살려주신 은혜는 평생 잊지 않겠습니다.”

젊은이는 자리에서 일어나며 아버지에게 큰 절로 인사했다. 하지만 아버지는 손을 내저었다.

“며칠 더 묵으며 기력을 회복한 뒤에 떠나도록 하시오. 몸이 성치 않은 사람을 그대로 보내면 죄를 짓는 것 같아서 그런다오.”

마음 착한 아버지는 젊은이를 붙잡아 앉혔다. 젊은이는 어부의 마음 씀씀이가 너무도 고마워서 눈물이 핑 돌았다.

“제가 여기에 더 이상 머물다가는 아버님과 따님께 큰 화를 미칠까 두렵습니다.”

젊은이는 자신의 신분을 밝혔다. 아버지가 역적누명을 쓰고 돌아가셨으며, 남은식구들도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 여기저기로 흩어져 숨어산다고 털어놓았다.

“쯧쯧, 그런 사정이 있었구려. 이곳은 사람 발길이 드문 궁벽진 곳이므로 안심해도 될 것이오. 며칠 더 머문 뒤에 떠나시오. 그때는 붙잡지 않겠소.”

아버지는 젊은이를 안심시켰다. 젊은이는 며칠 더 머물면서 기력을 회복한 후에 집을 떠났다.

젊은이가 집을 떠난 후에 관원들이 들이닥치며 집을 포위하고 샅샅이 뒤졌다. 낯선 젊은이가 숨어있다는 제보를 받고 달려온 것이었다.

아버지와 딸은 관가에 붙잡혀 갔고 젊은이의 행방을 대라며 모진 매를 맞았다. 간신히 풀려나서 집에 돌아왔지만 매를 맞은 후유증으로 아버지가 숨을 거두고 말았다. 몸이 성치 못한 딸은 간신히 아버지의 장례를 치르고 혼자서 근근히 생계를 유지해야 했다.

그 뒤로 세월이 한참 흐른 뒤에 역적으로 몰렸던 젊은이가 찾아왔다. 그동안 아버지의 역적 누명이 벗어졌고, 젊은이는 열심히 공부하여 과거급제까지 하였다. 이제 옛날 자신을 살려준 딸과 결혼하려고 찾아온 것이었다.

젊은이는 딸로부터 모든 소식을 듣고 마음이 아팠다. 자기 자신 때문에 아버지가 돌아가셨다는 사실을 알고 큰 죄를 지은 느낌이었다. 앞으로 딸을 잘 보살피면서 은혜를 갚겠다고 다짐했다.

젊은이는 딸과 함께 아버지 산소에 찾아가 마지막 하직 인사를 하였다. 산소에 절을 하고 내려오는데 바닷가에서 물줄기가 솟아오르며 큰 소리가 들려왔다.

“한세상 고기 잡아 욕심 없이 살았는데 억울하게 죽었구나! 억울한 애비 마음 그 누가 알아주랴!”
하늘에서 큰 소리가 들리더니 청룡 한 마리가 물줄기를 따라 샘물 속으로 풍덩 들어가고 있었다. 딸과 젊은이는 아버지가 용이 되어 샘물 속에 살고 있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즉시 샘 앞에 가서 큰 절을 올리며 제사를 지내고 집을 떠났다. 그 뒤로 샘은 용이 산다고 하여 용천이라는 이름으로 불렸다.

하지만 지금 현재는 용천이 사라졌다. 오래전에 서산 AB 지구 방조제 공사로 용천이 없어졌다. 용천이 있던 자리는, 간월호 수문이 설치된 부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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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수만 2018-03-03 17:43:06
궁리포구 방조제 수문 근처에 "용물둠벙"이라고 있었고 썰물때 보면 항상 지하에서 물줄기가 흘러나왔습니다
60여년 전 어렸을떄 이곳에서 자라며 어른들이 늘 용물둠벙 말씀 하시는것을 듣고 보고 자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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