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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포길 주변의 숨겨진 이야기/ 홍성군 구항면 태봉리 ‘태봉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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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포길 주변의 숨겨진 이야기/ 홍성군 구항면 태봉리 ‘태봉산’
  • 김정헌<동화작가‧내포구비문학연구소장>
  • 승인 2017.10.10 08:4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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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종임금의 태가 봉안되었던 마을
▲ 태봉산이 사라진 구항면 태봉리 모습.(원으로 표시한 자리에 태봉산이 있었다)

우리고장 구항면에 태봉리(胎封里)가 있다. 태봉리라는 지명은 조선조 마지막 임금인 순종의 태를 봉안한 마을이라서 붙여진 이름이다. 순종의 태를 봉안했던 야트막한 동산 이름도 ‘태봉산(胎封山)’이라 불렀다.

옛날에는 민간이나 왕실에서 아기의 태(胎)를 소중이 여기는 풍습이 있었다. 특히 왕손의 태는, 왕실은 물론이고 나라의 국운과 연결된다고 하여 더욱 소중하게 다루었다.

왕실의 태를 관리하는 국가기관은 ‘관상감’이라는 곳이었으며, 이를 맡아서 처리하던 관리를 ‘안태사’라고 하였다. 이처럼 왕실 자손의 태를 관리하는 일은 국가 특별기구가 설치될 정도로 중요한 일이었다.

▲ 구항면 태봉리 화소비 모습.

왕손의 태실은 풍수지리를 살펴서 전국의 명당자리에 조성했다. 왕손의 태를 백자항아리에 보관했다가 길일을 택하여 극진한 의식행사와 함께 명당자리에 조성한 태실로 옮겨 봉안하였다. 태실 주변에는 화소비(火巢碑) 등의 금표를 세워 화재를 예방하고 신성한 구역으로 특별관리 하였다. 태실이 조성된 지역 명칭도 자연스럽게 ‘태봉리’ ‘태실’ 등 태실과 관련된 이름이 붙었다.

이후에 태실의 주인공이 임금으로 등극하게 되면, 태실이 조성된 고장의 위상도 함께 달라졌다. 임금의 태실이 설치된 고장에는 행정 등급이 한 단계 올라가는 등 다양한 혜택을 주기도 하였다.

조선시대 이처럼 중요시 여겼던 왕손의 태실은, 일제강점기에 크게 훼손당하는 시련을 겪었다. 일제강점기에 조선총독부는 이왕직(李王職)이라는 기구를 통하여, 전국에 있는 조선왕족의 태실 53기를 파헤쳐서 서삼릉(西三陵)으로 옮겼다.

▲ 옛 태봉산 모습.(구항면지 화보에서 옮겨옴)

서삼릉은 경기도 고양시에 있는 조선말엽 왕실의 가족 묘지이다. 일제가 태실을 관리한다는 명분으로 전국의 태실을 파헤쳐서 이곳에 모아 놓은 것이다. 우리고장 홍성군 태봉리에 봉안되었던 순종임금의 태실도 이때 훼손되어 서삼릉으로 옮겨졌다.

순종임금의 태실은 1874(고종11)년에 조성되었는데, 일제강점기인 1929년에 서삼릉(西三陵)으로 옮겨갔다. 일제는 이당시에 순종임금의 태를 넣어둔 태항아리만 옮겨간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나머지 태실 주변에 설치되었던 시설물은 그대로 방치되어 있었다.

이렇게 방치된 시설물들은 누군가 하나 둘씩 옮겨갔고, 세월이 흐르면서 태실 주변에는 아무것도 남아있는 것이 없었다. 태항아리를 올려놓았던 둥그런 돌받침이 구항초등학교 교정에 있었다고 하는데, 현재는 어디로 옮겨졌는지 행방을 알 수가 없다.

당시 태실이 조성되었던 태봉산 주변에는 화소비가 설치되어 있었다. 그 화소비 중에 한 개만 태봉산 서쪽 논둑에 남아있다. 순종임금 태실과 관련하여 유일하게 남아있는 흔적이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은, 현재는 태실이 조성되었던 태봉산마저 파헤쳐지고 없다는 사실이다. 태봉산은 일제 강점기 이후로 왕실 소유에서 개인 소유로 여러 번 주인이 바뀌었으며, 몇 년 전에는 누군가 태봉산을 파헤치고 사업체 건물을 지었다. 지금 현재 순종임금의 태실과 관련된 흔적들은, 태봉리 마을이름의 유래와 화소비만 남아있을 뿐이다.

홍성군과 이웃한 예산과 서산지역에도 태실의 흔적들이 남아있다. 예산 지역에는 가야산 기슭에 숙종의 3남 연령군 태실, 영조의 11녀 화령옹주 태실, 현종 태실 등이 있다. 이들 태실도 대부분 일제강점기에 심하게 훼손되었다. 지금 현재는 덕산면 옥계리에 있는 헌종 태실과, 대흥면사무소 동헌 뒤뜰에 옮겨놓은 화령옹주 태실이 전해온다.

서산지역에는 운곡면 태봉리에 명종태실이 있다. 이곳은 원형에 가깝게 복원되어 옛 태실의 모습을 살펴볼 수 있는 곳이다. 이곳 마을 이름도 태실이 있다고 하여 ‘태봉리’이며, 태를 봉안한 산도 ‘태봉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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