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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포길 주변의 숨겨진 이야기/ 예산군 광시면 마사리, 터진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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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포길 주변의 숨겨진 이야기/ 예산군 광시면 마사리, 터진목
  • 김정헌<동화작가‧내포구비문학연구소장>
  • 승인 2017.09.18 14:2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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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하기 싫은 자의 어리석음
▲ 마사마을 터진목 모습.

우리고장 예산군 광시면 마사리 마을 앞에는 터진목이라고 부르는 지명이 있다. 홍성군 금마면 마사리에서 마사고개를 넘어가면 대흥산 아래로 자리 잡은 첫 마을이다. 마사고개를 사이에 두고 홍성군과 예산군의 경계가 되는 마을이다.

마사마을 들판 건너편으로 나지막한 산줄기가 지나가고 있는데, 이 산줄기 끝머리 부분이 잘려서 반 토막이 되었다. 산줄기 잘려나간 부분은 사람들이 왕래하는 길이 되었고, 이곳을 터진목이라고 부른다.

이곳 마사마을에는 터진목에 얽힌 전설이 구전되어 내려오고 있다.

옛날 마사마을에 부잣집이 살고 있었다고 한다. 부잣집은 인심도 후해서 사람들이 수시로 찾아왔다. 주인은 찾아온 손님들과 술잔을 나누며 항상 즐거운 시간을 보냈지만, 부엌에서 살다시피 하는 며느리는 손님들 술상을 차려내는 일이 참으로 힘들었다.

며느리는 차라리 옛날이 그리웠다. 어려운 살림살이였지만, 옛날 친정에서 살 때가 너무도 좋았다. 부잣집으로 시집왔다고 해서 즐겁고 행복한 것도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막상 부짓집으로 시집와서 보니 불편하고 힘든 일들은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제일 어려운 것은 찾아오는 손님들 접대하는 일이었다. 자칫 잘못하여 손님들 대접이 소홀하기라도 하면 당장 야박한 인심이라고 손가락질을 받을 것이 뻔했다. 겉으로 싫은 내색도 못하고 손님접대에 신경을 많이 써야 했다. 며느리는 시간이 점점 지나면서 어떻게 하면 집안에 찾아오는 손님들을 막을 수 있을지 많은 궁리를 해보았다.

그러던 어느날이었다.

부잣집 대문 앞에 스님 한 분이 찾아와서 시주를 부탁했다. 며느리는 시주할 쌀을 듬뿍 퍼가지고 나가서 스님의 바랑에 넣어주었다. 시주를 하고 집안으로 들어오다가 갑자기 생각난 듯, 부리나케 밖으로 다시 달려 나갔다.

“스님, 스님….”

스님은 몇 발짝 걸어가다가 며느리의 부르는 소리를 듣고 뒤돌아섰다.

“스님, 사실은…, 한 가지 여쭤볼 것이 있어서….”

며느리는 스님 앞에 다가가서 무슨 말을 하려다가 주저주저 했다.

“무슨 용건이신지요. 주저 마시고 말씀해 보시지요.”

스님은 궁금증이 가득한 표정으로 며느리를 쳐다보았다.

“저어, 사실은….”

며느리는 주저주저하면서 용건을 말하기 시작했다. 집안에 북적거리는 손님들의 발길을 막을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인지 물었다.

며느리의 말을 듣고 난 스님은 고개를 끄덕끄덕했다. 잠깐 주변 지세를 살펴보더니 마을 건너편 산줄기를 가리켰다.

“부인, 저기 앞에 있는 산줄기 있잖습니까? 저 산줄기 한쪽을 끊어내면 머지않아서 집안에 북적거리는 손님의 발길이 끊어질 것입니다. 나무아미 관세음보살.”

스님은 목탁을 두드리며 다시 발길을 돌렸다.

며느리는 며칠 동안 망설이다가 젊은 일꾼들을 몇 사람 구해왔다. 스님이 가르쳐준 건너편 산줄기를 파내도록 시켰다. 하나로 이어졌던 산줄기는 두 토막이 나게 되었다.

그 뒤로 계절이 바뀌고 한여름이 되었다.

한여름 장마철에 근래 드물게 큰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장대 같은 굵은 빗줄기는 하늘 위에서 양동이로 들어붓는 것처럼 쏟아지고 있었다. 쏟아지는 빗물은 사납게 변하면서 낮은 곳으로 흘러내려왔다.
산줄기의 두동강 난 틈을 통해서 마을로 세찬 물줄기가 밀려들어오기 시작했다. 마을 전체는 삽시간에 물속에 잠기고 말았다. 산줄기가 원래대로 이어져 있었으면 마을이 홍수에서 무사할 수 있었는데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었다.

그 뒤로 부잣집도 망하고 마을도 망했다고 한다.

터진목 전설은 이곳을 오가는 많은 사람들에게, 일하기 싫은 자의 어리석음을 무언으로 깨우쳐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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