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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영희의 녹색이야기/ 기억과 망각, 세월호 3주기를 보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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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영희의 녹색이야기/ 기억과 망각, 세월호 3주기를 보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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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7.04.19 1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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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영희<장곡면>

▲ 정영희<장곡면>
세월호 사고가 발생한지 3주기가 지났다. 이번에는 ‘세월호와 나’란 주제로 글을 써봐야지 생각하고 일주일을 지냈다. 글쓰기가 무척 버겁고 부담스러웠다. 다른 주제로 바꾸자고 생각했다. 마당에 핀 수선화가 미세먼지 많은 이 봄날에 얼마나 위로가 되는지, 땅속에서 막 얼굴을 내민 감자싹에 봄비가 내리는 모습이 얼마나 싱그럽고 보기좋은지… 그렇지만 세월호를 그냥 지나치려니 다른 글이 써 지지 않는다.

세월호 하면 떠오르는 기억 몇 가지를 적어본다. 2014년 4월 16일 오전 웰빙몰 약국에서 버스를 기다리며 무심히 TV를 쳐다보고 있는데, 속보에 몇 백명이 탄 큰 배가 전복되었고 백 몇 명이 구조되었으며 사망자는 없다고 했다. ‘그럼 나머지 사람들은 어떻게 된 거지?’ 의아해하며 집으로 가는 버스에 올랐다. 저녁에 아들은 1년 전 인천서 제주도 갈 때 탔던 배가 바로 세월호라고 말했다. 배가 전복되고 3일 후 쯤 세월호에 남아 있는 아이들에게서 아직 살아있으니 구해달라는 카톡메시지가 왔다는 이야기가 돌았고, 그것은 ‘희망고문’이란 말들이 떠돌았다.

그 후 세월호 사건의 진상규명을 위해 동분서주하는 부모들을 보았다. 온 몸이 슬픔으로 젖은 성난 걸음거리, 그 걸음으로 홍성에도 와서 동영상을 틀고 진상규명을 외쳤다. 동영상엔 ‘가만히 있으라’는 소리를 들으며 물에 잠기는 아이들의 마지막 모습이 담겨있었다. 전국을 돌며 수없이 틀었을 동영상이었다. 우리를 위해 또 틀게 하는 게 정말 미안했다. 부모들은 곧 실신할 듯 보였지만 혼신의 힘으로 버티고 있었다.
고 김관홍 민간잠수사도 생각난다. 구조작업을 방해하는 해수부에 맞서 민간인의 신분으로 잠수하고 구조하다가 누명을 쓰고 결국 고인이 된 잠수사가 남긴 말을 이러했다. “뒷 일을 부탁합니다.” “아직 해야 할 일들이 남아 있다. 인양해야 할 모든 진실들, 바로 잡아야 할 비정상들….”

사고가 나고 1년 반이 지난 초겨울 홍성 세월호 집회에서 세월호 유가족 몇 분을 모시고 김장을 담갔다. 삶의 끈을 놓쳐버린 분들과 먹는 일을 도모하는 김장담그기를 누가 처음 생각했는지 참 잘 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여럿이 돌아가면서 하는 녹색당 1인시위에도 가끔 참석했다. ‘진상규명이 민주주의다’라는 피켓을 들고 덕산통 사거리에 서 있는 일이었다.

지금, 서서히 밀려오다가 어느새 완전해진 어둠같은 망각이 나를 둘러쌓고 있다. 어둠속에 드문드문 서 있는 가로등처럼 가끔 세월호에 대한 기억이 떠오를 뿐이다. 애쓰지 않으면 이 기억마저 사라질지 모른다. 나는 세월호에서 무얼 배웠을까? 내 삶의 방향이 좀 더 확고해졌을까? 돈보다 생명이 소중하다는 것을 내 삶의 지표로 삶고 한발 한 발 조심스레 내딛고 있는 중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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