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D. 2024-03-29 09:47 (금)
여하정/ 김미경<청운대학교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 교수>
상태바
여하정/ 김미경<청운대학교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 교수>
  • guest
  • 승인 2017.03.13 13:33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보아라, 이제 파면이다

▲ 김미경<청운대학교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 교수>
TV를 켜서 결과 발표를 기다렸다. 11시에 이정미 헌재재판관이 읽어 내린 판결문에서 ‘그러나’가 언급될 때마다 주식시장이 요동쳤던 것처럼 내 마음도 진자운동을 계속했다. 마지막에 “피청구인 대통령 박근혜를 파면한다”는 그 한마디를 듣는 순간, 묵은 체증이 내려가며 정상의 균형을 잡아가는 듯 안정화되었다. 아무리 세상의 진짜와 가짜가 구별되지 않고, 가상과 현실의 경계가 모호해지고, 관리와 조작이 한 끝 차이이고, 우기기와 주장이 목소리 크기로 결정된다고 하더라도 우리가 믿는 가치와 상식의 기준이 동의 받았음을 확인하는 순간이었다.

‘파면’은 그 직에서 쫓겨나는 것이다. 가끔 어떤 조직은 파면이나 해임의 불명예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사표를 받기도 한다. 마찬가지로 그녀에게도 ‘하야’를 통해 막다른 골목으로 내몰리지 않도록 제안했다. 그런데 그녀는 너무 당당한 것일까! 아무 생각이 없는 것일까! 상황이 엉키는 것을 방치하고 방조하고 독려하기 까지 했다.

성난 민심을 간파하지 못할 정도로 고립된 것인지, 우주의 기운으로 분노를 흡수해버리는 것인지, 죄와 벌의 개념을 모르는 것인지, 여론은 조작되는 것이라 무시할 수 있다고 믿는 것인지, 그녀를 보통사람으로 보기에는 탁월한 무엇인가가 있는 듯 신기롭기까지 하다. 보통 자신에게 다가오는 위험을 감지하는 사람은 그 정도에 대해서 파악하는 게 우선이다. 그러나 상황에 대한 정보의 입력과 처리과정에서 부조화를 경험하게 된다면 근거 없는 자신감을 증폭시키고 무의식적으로 자신의 부정을 인정하지 않게 된다. 비현실적으로 높은 자신감은 자신이 무능력하다는 사실을 피하기 위한 전략일지도 모르겠다.

대국민 담화를 통해 “조사에 성실하게 임하겠다”고 두 번 이상을 공개적으로 언급했다. 대통령의 말은 ‘말씀’이라고 표현하는 것처럼 무겁다.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라”라고 했듯이 말씀에는 정령이 깃들어져 있다. 양아치처럼 오늘 뱉어버리고 내일 주어 담을 수 있는 것이 아니고, 생명처럼 받들어야 하는 절명의 가치가 있는 것이다. 그 ‘말씀’에 대한 무거움을 친구와 나눠가졌고, 그 ‘말씀’에 대한 국민의 믿음을 저급하게 만들었다. 그래서 그녀를 보통사람으로 보기는 어려운 무언가가 있는 듯하다. 침묵은 금이라고 했다. 그녀의 이미지에 담겨 있는 침묵은 수없이 많은 의미와 은유와 함의가 있는 듯 응축되어 있다고 우리는 생각했다. 그래서 그녀의 침묵은 우리가 만들어 준 아름다운 스토리 안에서 살아움직였던 모양이다. 실체가 없는데 있는 듯 착각하는 시뮬라크라이다. 말씀을 가볍게 여기고 침묵을 무겁게 여기는 그녀는 그 의미를 모르는 것 같다. 아니 말씀을 무겁게 할 때와 침묵을 가볍게 할 때를 모르는 것 같다. 그것을 구별하지 못함으로써 세상이 시끄러워지는 것도 상관할 바가 없는 모양이다.

파면되었다. 그녀는 어떨까? 죄가 있든 없든 인간으로서 삼라만상의 모든 번뇌가 그녀의 머리 속에서 또아리를 틀텐데, 때론 무섭고, 때론 외롭고, 때론 억울하고. 그 번뇌의 자기증식과 자기소멸의 과정을 거쳐 내려놓고 수긍하고 받아들이게 될 것이다. 그런데, 그녀의 비범성에 비추어본다면 혹시 ‘시크릿 가든’에서 ‘길라임’으로 분하여 환타지의 세상에 있지 않을까 두려워진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
이슈포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