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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향인 인터뷰/ 이형집(KMP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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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향인 인터뷰/ 이형집(KMP 회장)
  • 윤진아 서울주재기자
  • 승인 2017.02.17 08: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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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공 비결은 남에게 이익을 주는 것입니다”

▲ 이형집 KMP 회장이 금속인쇄 50년을 회고한 책을 냈다.
<나의 금속 인쇄 50년> 출판기념회

이형집 출향인이 금속인쇄 50년을 회고한 책을 냈다.

이형집(80) KMP 회장은 지난 10일 서울 그랜드 앰배서더에서 열린 50주년 창립기념식에서 ‘나의 금속 인쇄 50년(교학사 펴냄)’ 출판기념회를 가졌다. 이 회장은 1967년 현 케이엠피주식회사의 전신인 대성금속인쇄공업사를 창업, 불모지나 다름없던 한국 금속인쇄 분야를 개척해왔다.

1938년 청양에서 태어난 이형집 회장은 광천중학교(6회), 서울 인창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동국대학교 경영대학원, 연세대학교 산업대학원 산업최고위과정을 수료했다. 2002년에는 순천향대학교에서 명예경영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이형집 회장은 충남기업인연합회를 창립하고 초대회장을 맡아 지역경제 활성화에 앞장서왔다. 아산시기업체협의회장을 5년 역임했으며, 국제라이온스 지구 총재로 활발한 사회봉사활동을 벌이기도 했다.

KMP 50주년 창립기념식 개최

이 회장이 세운 KMP의 역사는 한국 금속인쇄의 역사와 궤를 같이한다.

KMP는 1996년 국내 최초로 4컬러 인쇄기를 설치한 데 이어, 2003년 6칼라 인쇄기를 국내 최초로 설치했다. 현재 KMP는 아산시에 부지 1만5000평, 건평 9000평의 공장을 가동하며 단일 금속인쇄 분야에서는 국내 최대 규모의 기업으로 성장했다. 2012년 500만불 수출탑, 2015년 1000만불 수출탑을 수상한 KMP는 매출의 50%를 유럽 등 세계 각지로 수출하는 글로벌 강소기업의 반열에 올랐다.

객지에서 사업하면서도 고향을 잊어본 적이 없다고 했다. 이형집 회장은 광천읍 명예면장, 광천중학교 총동창회장을 역임했으며, 홍성군 문화대상, 자랑스런 충남인상, 자랑스런 광중인상 등을 수상했다.


2002년 광천읍 벽계리 둔전마을회관 준공에 1000만 원을 지원한 이형집 회장은 도로포장 등 고향에 일이 있을 때마다 도움을 아끼지 않았다. 광천읍 벽계리에는 이 회장의 공덕비가 세워져 있다.

“집사람도 광천사람이에요. 젊었을 때 광천읍내 양장점에서 일했는데, 참 예뻤죠.(웃음) 제가 태어난 곳은 오서산 아래 작은 정자나무집이었어요. 기차는 30리가 넘는 광천읍내에 가야 탈 수 있었고, 신작로도 없어 자동차 구경도 힘든 깊은 시골이었죠.”

▲ 이형집 케이엠피주식회사 회장이 ‘나의 금속인쇄 50년’이란 자서전 출판 콘서트를 가졌다. 콘서트는 지난 10일 그랜드앰배서더호텔서울 그랜드볼륨에서 실시됐다. 회사 창립 50주년 기념식과 함께 실시됐다. 심대평 전 충남지사 등 내외 귀빈 1000여명이 참석했다. 사진은 이형집 회장이 고객사와 협력사 및 회사 관계자에게 공로패 및 감사패를 주고 있는 장면이다.
벽계리 마을회관 1000만원 지원

1951년 광천중학교에 입학하면서 광천읍 벽계리 고모님 댁에서 ‘유학’ 생활을 시작했다.

“고모님 댁이 있던 마을은 제가 살던 곳보다 훨씬 큰 ‘도회지’였죠. 벽계리에 살던 서정모, 서승구, 백동에 살던 송동준, 김성식 친구와 냇가에서 미역도 감고 참외서리도 하며 중학교 3년을 함께했습니다.”

고모님 댁은 4대가 같이 가는 대가족이었다. 이형집 회장은 사장어른(고모의 시아버지)과 한방에서 3년을 지냈다.

“사장어른이 회초리로 손자들을 엄하게 꾸짖으셨는데, 제게는 한없이 잘해주셨어요. 제가 손자들의 ‘아저씨’ 뻘이어서, 늘 ‘아저씨를 닮아라!’고 훈계하시던 기억도 나네요.(웃음)”

자랑스런 광중인상 수상

이다음에 큰사람이 될 거라고 믿어주셨던 사장어른과 동네 어르신들 덕분에, 더욱 바른 모습을 보이려고 노력했다는 말에 미소가 고인다.

“제 나이 서른 되던 해에 자본금 50만 원의 초라한 가내공업으로 시작한 회사가 지금의 자랑스러운 케이엠피주식회사로 성장했습니다. 고락을 같이한 임직원, 가족, 그리고 주위의 감사한 분들 덕분이라고 생각합니다. 제 삶과 사업의 성공비결은 ‘남에게 이익을 주는 것’이었습니다. 50주년을 맞아 경영일선에서는 한발 물러서겠지만, 그 원칙과 열정만큼은 앞으로도 변함없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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