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D. 2024-04-24 09:19 (수)
정영희의 녹색이야기/ 시래기와 콩나물
상태바
정영희의 녹색이야기/ 시래기와 콩나물
  • guest
  • 승인 2017.01.12 18:12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정영희<장곡면>

▲ 정영희<장곡면>
메추리알 장조림, 피자, 치킨, 삼겹살, 닭갈비, 곱창, 라면, 순대, 떡볶이. 초등학생 아들이 아파서 며칠 쫄쫄 굶은 후 하루 종일 먹는 타령을 하길래, 그럼 먹고 싶은 걸 적어보라 했더니 적어놓은 메뉴다. 병이 다 나은 아이는 한동안 적어놓은 것을 하나씩 지워나가는 재미로 지냈다. 아직 반 정도가 남았다. 그런데 적어놓은 걸 잊은 듯 별로 보채지 않는다. 적는 것만으로도 위안이 되었던 것인지, 아님 언젠가는 해 주겠지 하는 마음으로 기다리고 있는지 모르겠다. 나는 아이가 원하는 걸 매일같이 해 주진 않는다. 내가 해 주고 싶은 것은 따로 있기 때문이다.

요즘엔 시래기 된장찜과 집에서 기른 콩나물 반찬을 자주 한다. 겨울에 영양 많고, 손쉽고, 맛있고, 돈이 들지 않고, 물리지 않는 음식으로 이만한 게 또 있을까 싶다. 해마다 이런 음식들을 열심히 해 먹어야지 결심하곤 했다. 그래서 가을이 되면 무청을 처마 밑에 줄지어 매달았다. 버려지는 것을 말리기만 하면 되다니 얼마나 손쉬운가. 말리기만 하면 몸에 좋은 영양소가 추가된다니 얼마나 고마운가. 그러나 거기까지였다. 몇 번 시래기 반찬을 해 먹고는 그만이었다. 아이들은 너무 질기다고 했고, 된장보다는 고기가 더 맛있다고 했다. 정성껏 말린 시래기는 이듬해 봄이나 여름이 되어 싱싱한 푸성귀가 지천일 때까지 처마 밑에 매달려 있다가 부서져 떨어져버리곤 했다.

올해는 다르다. 나는 초겨울부터 일주일에 두어 번 시래기 된장찜을 밥상에 올린다. 시래기 된장찜은 아주 쉽다. 시래기는 저녁에 끓는 물에 10분쯤 삶아놓는다. 씻지 않고 그대로 두면 밤새 시래기가 부드러워진다. 냄비에 시래기 한 줌, 멸치 몇 마리, 된장 한 스푼, 들기름을 넣는다. 물을 자작하게 붓고 끓이는데 국물 많은 것이 좋으면 물을 더 부으면 된다. 누가 끓여도 맛있고, 누구든 먹으면 맛있다 한다. 콩나물도 기른다. 메주콩이나 서리태 같은 것은 콩나물 콩으로 적당하지 않다. 대가리가 커서 쉽게 썩는다. 콩나물 콩은 알이 작은 노랑콩이나 쥐눈이콩이 적당하다. 노란 콩나물콩을 구하기 위해 동네 할머니들께 여쭈었는데 모두 없다 하셨다. 재작년까진 키우셨는데 우리 마을에 어쩌면 콩나물콩이 사라졌는지 몰라 걱정이 된다. 올 해 씨앗으로 쓸 콩을 열심히 수소문해 봐야겠다. 영양면에서 뛰어나다는 쥐눈이콩으로 콩나물을 기른다. 아이들이 검정껍질 때문에 싫은 내색을 하지만 어쩔 수 없다. 그래도 일주일쯤 키워 반찬을 해 놓으면 제법 잘 먹는다.

좋다는 것을 알고 있으면, 그리고 의지를 품고 있으면 언젠가는 하는구나 하는 것을 나를 보며 확인한다. 아이들도 때가되니 엄마가 해 주는 음식을 점점 더 잘 받아들인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
이슈포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