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D. 2024-04-25 15:36 (목)
<신년기획> 지역농업의 새물결②/ 홍성씨앗도서관의 토종지키기운동
상태바
<신년기획> 지역농업의 새물결②/ 홍성씨앗도서관의 토종지키기운동
  • 이번영 기자
  • 승인 2017.01.06 13:25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시집올 때 갖고 온 씨앗 60년 이상 지켜

▲ 홍성 씨앗도서관이 2015년 2월 홍동면 운월리에 문을 열었다.
옛 고구려 땅인 만주가 원산지인 콩은 우리나라 논두렁이나 밭두렁 아무데나 심어도 잘 자란다. 된장, 고추장, 두부, 콩나물 등 우리 전통음식의 토대가 되는 콩. 1930년대 미국 사람들은 한국의 구석 구석을 다니며 이 신기한 콩씨를 수집해갔다. 그들은 광활한 농토에 기계로 대단위 콩농사를 시작했다. 50년 쯤 뒤 미국은 전 세계 제1콩생산국이자 수출국이 됐다. 1965년까지 100% 자급하던 우리나라 콩은 2016년 현재 80% 이상 수입에 의존하고 있다. 이중 80%가 미국에서 수입하는 유전자변형(GMO)콩이라는 게 여성농민회 등의 설명이다.

선진국들은 종자은행을 만들어 후진국들의 토종 유전자원을 마구잡이로 수집해 간다. 시간이 지나면 후진국들은 비싼 대가를 지불하며 선진국으로부터 원래 자신들의 것이던 유전자원을 구입한다. 현재 미국에 6000여점, 일본에 3000여점의 한반도 토종 유전자원이 있는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2014년 말 현재 한국 국립농업유전자원센터에 보관하고 토종 유전자원은 4만9228점으로 전체 자원의 24%에 그치고 있다.

온 국민이 즐겨 먹는 청양고추는 1983년 우리나라 농업기업인 중앙종묘에서 개발했다. 그러나 IMF 후 멕시코 종묘회사로, 2005년 미국 몬산토에서 인수 해 우리는 지금 비싼 로열티를 주고 청양고추를 먹고 있다. 다국적 종자 기업들은 농민들이 수확한 농산물 씨앗이 자살하는 종자(터미네이터 종자)를 개발해 농민이 계속 종자를 사다 심을 수 밖에 없도록 만들었다. 또 종자에 대한 생물특허를 출원해 허가없이 자기 작물을 재배하는 농가에게 막대한 손해배상을 청구한다.

지난해 10월2일 국회 농수산식품위 민주당 박완주 의원은 농촌진흥청이 2006년부터 2015년까지 10년간 해외에 지급한 원예작물 로열티는 1456억 8000만 원에 이른다며 대책을 요구했다.

마을 노인들 이야기 채록 출판 준비

GMO 확산, 다국적 기업에 의한 종자독점과 토종 단절에 맞서 우리 씨앗을 지키고 보급하기 위한 운동이 대안으로 주목받고 있다. 토종 지키기 운동은 전국여성농민회총연합, 흙살림, 전국귀농운동본부, 행복중심생협 등이 나서고 있으며 온라인 활동도 활발하다. 이런 가운데 홍성군 장곡과 홍동을 중심으로 홍성군농민들이 씨앗도서관을 만들어 운영함으로 전국 각 지역의 씨앗도서관 설립 붐을 일으키는 단초가 되기도 했다.

홍동과 장곡면을 비롯한 홍성군 농민 60여명은 2013년부터 토종씨앗 문제에 대한 공부와 토론을 거쳐 2015년 2월 28일 홍성씨앗도서관 문을 열었다. 주민이 스스로 나서 당국에 임의단체로 등록하고 공식적으로 문을 연 국내 첫 씨앗도서관이다.

도서관에서 책을 빌려주듯 씨앗도서관은 회원들에게 씨앗을 빌려주고 농사지은 다음 씨앗을 돌려받는다. 홍동면 운월리 갓골 풀무학교 전공부 입구 농업연구소 2층에 사무실을 두고 있다.

씨앗을 빌려주는 데 따른 수수료나 비용은 없다. 홍성씨앗도서관은 정부나 지방자치단체, 기업 등으로부터 지원을 일체 받지 않는 것을 원칙으로 하고 회원들의 월 회비로 운영된다. 회원은 한달에 어른 1만 원 이상, 학생은 5000원 등 자기가 정하여 자동이체로 회비를 낸다. 실무자는 현재 한 달에 35만 원 내지 40만 원의 회비가 들어온다고 말했다.


지난 3년동안 홍성씨앗도서관이 해온 일은 크게 4가지다. 첫째, 씨앗마실이다. 마을에 다니며 노인들을 만나 이야기를 듣고 토종씨앗을 구하는 일이다. 오도(45) 대표는 이렇게 말했다.

“홍동 14개 마을을 3년 째 찾아다니며 30여명을 만나 씨앗을 받았습니다. 더 중요한 건 각자 씨앗에 얽힌 이야기들입니다. 효학리 84세 할머니는 시집올 때 갖고 온 씨앗을 지금까지 갖고 있더라구요. 전에는 여자가 시집갈 때 혼수는 못 해도 씨앗은 갖고 갔다는 겁니다. 친정 어머니한테 받았다는데 친정어머니는 또 친정 어머니한테 받고 해서 어떤 씨앗은 몇백년의 역사를 갖고 있을 겁니다. 씨앗마실에서 녹취한 여러 이야기들을 풀고 있는 중입니다. ‘들녘’이라는 출판사로부터 의뢰를 받아 책으로 펴낼 계획이죠”

종자주권회복 운동이다

홍성씨앗도서관은 이렇게 모은 지역 토종씨앗이 200여 가지. 콩, 팥, 깨 등 곡류가 많고 상추, 시금치, 아욱 등 집에서 채종한 씨앗들이다. 도서관에서는 카드로 관리하며 회원들에게 빌려준다. 지난해는 50여종이 회원들에게 나갔다. 가을에 돌려받지 못하거나 씨앗이 섞일 수도 있기 때문에 도서관 옆에 150평 채종포를 만들어 별도로 재배하기도 한다.

홍성씨앗도서관은 채종워크숍을 열어 토종에 대해 공부하며 채종 방법을 가르치고 토론한다. 6월, 8월, 10월 1년에 세 번 여는데 홍성군민은 물론이고 지난해에는 전라도 장흥, 완주, 강원도 등에서도 찾아와 참석했다.

홍성씨앗도서관이 올해 추가로 벌일 사업은 씨앗학교다. 지역내 어린이집과 초, 중, 고등학교에 찾아다니며 토종씨앗에 대한 교육을 한다는 구상이다. 우리 씨앗의 필요와 중요성을 어릴때부터 알게 해야한다는 것이다. 외국의 씨앗도서관 실태와 운영 사례를 찾아가 견학하고 자료집을 만드는것도 올해 하고 싶은 구상이다.

홍성씨앗도서관은 일본 게이센 여대에서 원예를 전공하고 제주도 여미지, 천리포수목원을 거쳐 풀무학교 전공부 교사로 근무하는 오도 씨가 대표로, 문수영 씨가 실무일을 하고 있는데 다음달부터 전공부를 졸업하는 전봄이 씨가 더 참가한다.

홍성씨앗도서관 개관 후 지난해 4월 서울 강동구 명일동 씨앗도서관이 개관하는 것을 비롯해 수원시 권선구, 전주시 완산구, 광주 서구, 제주도 등 전국에서 씨앗도서관이 속속 만들어지고 이들의 연대운동이 시작되고 있다.

“농사꾼은 굶어죽어도 종자는 베고 잔다”는 속담이 있다. 종자는 농민에게 그만큼 소중하다. 농민의 자존심을 살리고 빼앗긴 종자주권 회복을 위한 토종 씨앗지키기에 홍성 농민들의 각오는 올해 더 옹골차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
이슈포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