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D. 2024-03-28 11:23 (목)
<추억이 머무는 그 곳, 이발소> 신흥이용원
상태바
<추억이 머무는 그 곳, 이발소> 신흥이용원
  • 김미성 기자
  • 승인 2016.12.05 10:32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나 죽을때까지 해야 혀” … ‘두런두런’ 결성 사랑방

 
1968년도부터 지금까지 결성면 사랑방 자리를 지켜 온 신흥이용원은 딱 들어서는 순간 각이 잘 잡혀 있는 군복 같은 정갈함이 눈에 띈다. 아니나 다를까 홍성군이 지정한 위생 우수업소이다. 48년을 한결 같이 외길을 걸어 온 정만섭(76세) 주인은 지난 날 허름한 건물일 때부터 집 앞으로 도로가 나면서 신축한 지금의 이발소가 있기까지 신흥이발소를 가꾸고 지켜 왔다. 동네사람들은 지금도 신흥이발소에 모여 두런두런 얘기를 즐긴다고 했다. 동네 어른들은 “나 죽을 때까지 해야 혀”하기도 하고 “신흥이발소 아님 우리가 머리 깎으러 어디까지 가야 하는 겨”하면서 문 닫지 말라고 아우성이다.

북적이던 시절도 한 철이라 지금은 적막한 고요가 감도는 시골마을 삼거리에 이발소를 지켜가는 정만섭 씨는 “내 집이니까 임대료 안 나가고 원하는 손님이 있으니 해야 한다”며 “손님들이 어느 날 안보이면 돌아가신 경우가 많다고” 했다. 그러니 그 분들이 원할 때 까지 이발소를 운영한다는 생각이다. 한창 전성기에는 할아버지, 아버지, 손자 3대가 함께 와 머리를 깎곤 했는데 지금은 시골에 노인들만 남았다. 그래서 뭐든 조금이라도 나누고 싶어 취미로 시작한 국화분재를 100여개 만들어 나눠주기도 했다. 국화 향기가 너무 좋아서 시작한 것이 벌써 30여 년이 됐다. 그러던 것이 최근에는 열정은 있어도 손이 잘 안 간다며 손이 잘 안 간다는 게 몸이 뜻대로 안 된다는 뜻이란다.

신흥이발소 주인장은 아픈 과거도 털어놓았다. 80년대에 동네에서 계를 많이 했는데 그때 돈을 잃게 돼 하던 일을 잠시 접고 이란에 가서 6년을 일하고 돌아왔다. 그때 혼자서 고생고생 하던 아내가 암 투병 10년 끝에 하늘나라로 갔다며 그 일을 생각하면 지금도 말로 다 할 수 없는 슬픔이 느껴지고, 두고두고 마음이 아프다고 했다. 그러면서 하나 둘 세상을 떠나는 동네 어른들을 보면 마음이 애잔하다며 “그 분들과 오래 함께 하며 자리를 지키겠다”고 말했다. 지금도 이발소 앞에는 작은 과실나무들이 있어 오고가는 주민들이 하나 둘 따먹는 즐거움을 선사한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
이슈포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