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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억이 머무는 그 곳, 이발소> 태영이발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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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억이 머무는 그 곳, 이발소> 태영이발소
  • 김미성 기자
  • 승인 2016.12.05 10:2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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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성서 가장 오래된 이발소 … 57년 역사 간직

이제 어른이 된 남자들의 어릴 적 동심이 묻어나는 시골 동네 어귀 조그맣고 낡은 이발소. 거기엔 부모 손에 이끌려와 눈물 콧물 닦아내며 아무리 소리쳐 울어도 눈 한 번 꿈적이지 않고 머리를 밀어 내던 이발사 아저씨의 가위 손이 있었다. 또 그 모습을 흐믓하게 바라보던 야속한 아버지, 할아버지는 아이의 울음소리에 아랑곳없이 동네 이야기며 세월 흘러가는 이야기에 몰입하여 이발소 안은 웃음소리와 남자들만의 수다소리가 요란했다. 이렇듯 이발소는 흐트러진 용모를 단정히 하고 스타일 다듬는 공간이며 남자들의 수다 터 사랑방이었다. 그러던 곳이 세월이 변하면서 점점 남자들도 미용실을 찾게 됐고, 이발소는 어느새 세월의 뒤켠으로 물러났다. 현재 홍성군에서 운영되는 이발소 53개 중 20년 이상 된 곳이 36개이며, 30년 이상은 26곳, 40년 이상 된 곳은 16곳에 이른다.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이발소 중 홍성읍의 태영이발소·역전이발소, 광천읍의 용궁이발소, 내포신도시의 내포이발소, 결성면의 신흥이발소를 탐방해 추억을 나눴다.

 
 
홍성에서 제일 오래된 태영이발소. 57년 역사를 간직한채 홍성읍 고암리에 위치하고 있다. 주인장 정낙신 씨는 올해 80세이다. 원래 이발소 뒤로 있던 초가집이 도로가 나면서 현재의 2층 집으로 변모할 때까지의 세월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다. 주인장 정낙신 씨는 어렸을 때 집이 너무 가난해 기술을 배워야 먹고 사는데 지장이 없겠다는 생각을 스스로 하게 됐다. 마침 사촌형이 이발소를 하고 있어 이발 기술을 생각하게 됐다. 처음부터 사촌형이 순순히 기술을 전수해 주진 않았다. 처음에는 여러 가지 이유를 들어 거절을 당했고, 사촌형 가게에서 일하면서 인내력과 부지런함을 테스트 받고 기술을 배울 수 있었다. 그때 나이가 열일곱이었다. 예산에서 이발 일을 시작해 지금 이 자리로 옮겼다. 주인장은 한창 전성기 때는 홍성에 이발소가 160여 개나 있었는데 지금은 40여 개 밖에 안 남았다며 “전성기 때는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일 할 수 있었고 돈도 많이 벌었지”라고 했다. “이 나이에 그래도 이 만큼 일 할 수 있는 건 기술이 있기 때문이”라며 “손기술로 번 돈으로 5남매 공부시키고 시집, 장가 보냈다”고 말하곤 밝게 웃는다.

이발소엔 세월을 간직한 맨들맨들 해진 타일과 타일처럼 변해 버린 가죽의자가 50여 년의 시간을 말해준다. 이발 기구며 가구, 거울 등 모든 물품이 주인장의 손때 묻은 세월을 그대로 드러낸다. 지나간 세월만큼 이발소를 찾는 발길도 뜸해 “지금은 손님이 거의 없다”며 “그래도 가끔씩 찾아주는 손님이 있어 소일거리로 하고 있다”고 했다. 가끔씩 찾는 손님들과 옛 추억을 서로 나눌 때가 즐겁다고 했다. 주변에서 그 나이에 안경도 안 쓰고, 손도 안 떨린다고 부러워한다며 무엇보다도 나이 들어 소일거리를 할 수 있다는 게 감사하다고 했다. 세월의 흔적을 간직하고 그 자리를 지켜낸다는 자체가 역사다. 지금은 오히려 일하기가 수월하다며 예전엔 우물에서 물도 직접 길어다 썼는데 어떤 날은 하루 종일 물만 길어 오다가 해가 졌다고도 했다. 평생을 열심히 살았다고 자부한다는 주인장은 “요즘엔 노년을 즐기며, 손자 크는 재미로 산다”며 “인생에서 제일 중요한 건 건강, 화목, 돈이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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