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시 김양수 기자(1939~2000·전 혜전대 교수)가 취재한 지진 피해는 컸다. 군청과 홍주초등학교 사이 초가집 한 채가 완파되다시피하고 홍성읍사무소 뒤에 있던 홍성우체국 콘크리트 건물 벽에 금이 가고 굴뚝이 무너졌다. 홍주성곽 남쪽 90m가 무너져 남문동 민가를 덮칠번 했다. 성내 김좌진장군 추념비와 병오항일의병기념비 기단이 허물어졌다. 남산 군부대 앞 헬기장 바닥 60m가 갈라졌다. 군청을 중심으로 반경 600m 내에 피해가 집중됐지만 홍동면 구정리 천주교 공소 벽이 무너진 것을 비롯해 금마면 화양리, 홍북면 중계리, 갈산면 신안리 장곡면까지 건물이 흔들리고 학교 유리창이 깨졌다. 모두 118동의 건물이 파손되고 1100여 동의 건물에 균열이 발생했으며 홍성군청 등 12개 공공기관의 유리창 500여 장이 깨졌다. 82개 점포에서 음료수 432상자, 술병 1094개, 연탄 5만5000장이 박살났다. 그러나 인명피해는 여자 2명이 다리를 약간 다친데 그쳤다. 당시 기상청은 총 피해액을 2억 원, 복구 소요 비용을 4억 원으로 추정했다.
그날 이후 10월 10일, 11월 24일과 다음해 1월 1일, 2월 8일, 2월 24일, 3월 12일까지 5개월 동안 7차례의 여진이 발생했다. 특히 2월 8일은 두 차례 일어났는데 한번은 4.0으로 꽤 큰 여진이 기록됐다.그후 홍성온천지구 고시
홍성지진이 다른 지역 동일한 진도 지진보다 피해가 컸던 이유가 있다. 지난 12일 경주에서 발생한 지진은 5.8로 더 컸지만 6~8초간 건물이 흔들렸으나 홍성지진은 3분 여간 길게 지속됐다(두산백과, 연합뉴스 3분9초로 기록). 진원의 깊이가 10km 이내로 얕았고, 가까운 일본의 지진 관측소에서는 뚜렷하게 기록되지 않았을 만큼 지진파 에너지가 진앙 부근에 집중되었다는 점이 달랐다.
당시 홍성을 찾은 조사반원들은 조양문 바닥이 균열됐는데도 문루가 한 곳도 파손되지 않아 인근 전화국 건물 피해와 대조를 이뤄 조선시대 선조들의 건축 지혜에 놀랐다는 것이다. 조사단장을 맡았던 서울대 정봉일 교수는 그후 몇 해 동안 10월이면 홍성에 찾아와 지열조사를 했다. 그는 김양수 기자에게 “홍성에 온천이 생길수 있다”고 말했다는 것. 그 후 홍성온천이 생기고 군에서는 온천지구로 고시했다.
전국 최초 강진 홍성에 지진대책 없어
정부는 지난 5월부터 국민안전처 주관으로 ‘지진대책 TF’를 운영하여 ‘지진방재 개선대책’을 마련했다고 발표했다. 최근 지진활동 증가로 국민적 불안이 고조되고 있는 상황에서 대국민 알림서비스 강화, 내진보강 및 교육·훈련 등이 필요하다고 지적됐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방으로 내려오면 실질적인 정책효과로 연결되지 않고 있다.
건축물의 내진설계는 2008년 ‘지진재해대책법’ 제정으로 기존시설까지 내진보강을 의무화 했다. 그러나 민간분야는 경제적 부담 등으로 전혀 실현되지 않고 있다. 이같은 현실을 보완하기 위하여 정부는 신규 건축물에 대한 내진설계를 강화하고, 기존건축물에 대해서도 내진보강 유도를 위한 다양한 인센티브를 제공하고 있다.
내년부터 신규건축물은 내진설계 대상을 현행 3층 이상(또는 연면적 500㎡ 이상)에서 2층 이상(또는 연면적 500㎡ 이상)으로 확대한다. 민간건축물 내진 보강시 재산세·취득세 감면대상을 현행 연면적 500㎡ 미만 1~2층 건축물에서 건축당시 내진설계 의무대상이 아닌 기존 건축물 전체로 확대하며, 건폐율 및 용적률도 완화한다.
군에서 자체적으로 마련한 지진 대비 훈련이나 교육, 홍보 매뉴얼도 없다. 이런 가운데 충남도는 오는 10월 7일 각 시·군에서 지진대피 훈련을 일제히 실시한다. 충남도가 1978년 홍성지진 발생일에 맞춰 실시하는 이 훈련은 오전 11시 홍성군청 지하에서 지진이 발생한 것으로 가정하고 대피훈련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