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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영희의 녹색이야기/ 시골 삶을 꿈꾸는 친구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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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영희의 녹색이야기/ 시골 삶을 꿈꾸는 친구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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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6.09.07 09: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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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영희<장곡면>

▲ 정영희<장곡면>
친구야 안녕? 이제 날씨가 좀 선선해졌구나. 지난 여름은 더워서 한낮엔 정신이 가물가물해질 정도였어. 도시는 더 더워서 저녁에 집에 들어가면 온도가 36도를 넘고, 밤에는 열대야 때문에 몽유병 환자처럼 돌아다녔다고 했지. 작은 아이는 아토피로 고생하고, 큰 아이는 학교 다니는 게 죽을 만큼 싫다고 했다지? 너는 밤 낮 없이 일해도 줄어들지 않는 회사일과 집안일로 심한 두통에 시달렸어.

“시골이 좀 낫지 않을까?” 이번에도 그냥 한번 가볍게 던진 말이었는데, 넌 눈을 반짝였어. 얼마 전 휴가라는 명목으로 도망치듯 도시를 빠져나와 이곳에 잠시 머물렀던 너와 아이들은 머무는 동안 “여기서 살고 싶다”며 여러 번 노래를 불렀어. 너희 집은 큰 도로 옆이라고 했지? 밤 낮 없이 소음이 일고 먼지가 쌓인다고 했어. 그런데 여긴 공기도 햇빛도 거기보다 낫다고, 밤에 듣는 풀벌레 소리가 너무 좋다고 말했어. 우리는 어떻게 시골에서 살 수 있을까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꿈을 꾸었지.

내가 처음 시골로 내려올 때를 떠올려 보았어. 도시 삶을 정리하고 농사지으며 사는 삶은 기대가 되면서도 꽤 긴장됐어. 적게 벌어서, 적게 쓰고, 여유로운 시간을 갖자. 그 시간에 아이와 더 많이 놀고, 나와 내가 속한 사회도 돌아보자. 그런 생각을 되새기곤 했지. 그랬는데 초기에는 농사지어 돈을 마련하느라 아둥바둥 대고 몸에 병도 얻었어. 그게 엊그제 같은데 벌써 10년이 됐네. 지금? 응 지금은 그럭저럭, 시골에 살게 된 것을 참 다행으로 여겨.

할머니들이 살던 농가와 거기 딸린 텃밭, 그리고 아이들 학교만 있으면 된다고 우린 결론을 내렸지. 그리고 “너는 당분간 좀 쉬어.” 라고 나는 말했어. 쉬라는 말에 너의 얼굴 근육이 미세하게 변했어. 넌 웃었지만 울고 있었어. 나중에 네가 말했지. 좀 쉬라는 말, 십 몇 년 동안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던 말이었다고. 나도 쉬어도 되는 사람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 위안이 되었다고. 이미 다 가지고 있는데 누리지 못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이야기도 우리는 나누었지. 이런 계획도 세웠어. 과수원에 가서 하루 사과 따 주면 한 달 먹을 사과 주니 그것 받고, 쌀 농사짓는 집에 가서 하루 일 도와주면 한 달 먹을 쌀 나오니 그것 받고... 당분간은 그렇게 동네 사람들에 빌붙어 농사를 배우면서 살아보자. 같이.

그렇게 수다를 떨고 하룻밤을 보낸 후 다음날이 되었어. 도움이 되라고 네게 해 준 말들이 자칫 공허한 말잔치는 아니었을까 염려가 됐어. 내가 불안해하자 너는 이렇게 말했지. “아이들과 바로 지금 잘 지내는 것이 가장 중요해. …아이들도 시골 온다니까 벌써 태도가 달라졌는걸.” 친구야 지금 잘 지내고 있니? 시골에 와서 살 돈을 마련하느라 너무 무리하는 건 아니니? 우리 조금만 더 힘을 내자. 나는 이곳에서 부지런히 텃밭이 딸린 집을 알아볼게. 또 만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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