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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일용 마포구의회 의장 당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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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일용 마포구의회 의장 당선
  • 윤진아 서울주재기자
  • 승인 2016.07.07 14: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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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 마포구의회를 이끌어갈 의장에 한일용(서교·망원1) 출향인이 선출됐다.

마포구의회는 4일 본회의장에서 제205회 서울특별시 마포구의회 제1차 정례회 제2차 본회의를 열고 제7대 의회 후반기 의장 선거를 진행했다. 이날 구의원 18명의 투표결과 한일용 후보가 과반수를 넘는 11표를 차지하며 후반기 의장직을 수행하게 됐다. 임기는 2년이다.

한일용 의장은 “지역일꾼으로서 주민들의 얘기를 귀담아듣고 불편하거나 개선되었으면 하는 점은 적극적으로 바꾸려고 노력해왔다”며 “40만 마포구민을 대표해 지역발전에 헌신하고자 했던 초심으로 돌아가, 열린 소통으로 의회를 이끌어나가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2010년 구의원으로 정치 입문

2010년 제6대 마포구의회 구의원으로 당선돼 정치에 입문한 한일용 의장은 2014년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재선에 성공하고, 제7대 마포구의회 전반기 부의장으로 선출돼 2년간 의회를 이끌어왔다. 지난 6년간 한 의장은 ‘서울특별시 마포구 공유촉진 조례’, ‘서울특별시 마포구 생활임금 조례’, ‘서울특별시 마포구 공정 하도급 및 상생협력에 관한 조례’ 등을 동료의원들과 함께 연구해 공동발의했다. 특히 지역경제 활성화와 관광산업에 많은 관심을 기울여 ‘관광산업 활성화 조례안’을 공동발의하고, 지난해 하반기부터 홍대 예술발전을 위한 ‘홍대문화예술인회관’ 건립을 추진 중이다.

장기간 방치돼 있던 신촌 다주쇼핑센터 철거 후 잔재정리를 위해 예비비 2억 원을 확보해 지금의 공영주차장으로 변모시킨 일도 보람으로 남는다. 지난해 동교동 삼거리에서 서강대역 앞까지 이어지는 경의선숲길 구간의 가로수를 주민들이 원하는 왕벚나무로 바꾸는 데 심혈을 기울였으며, 안전취약 지역에 CCTV를 설치를 추진하기도 했다.

이런 활발한 의정활동의 공로를 인정받아 2015 코리아파워리더대상에서 ‘지차체 의정활동부문 대상’을, 2015 국제평화언론대상에서 ‘기초단체 의정공헌부문 대상’을 수상했다. 2014년에는 사단법인 전국지역신문협회로부터 ‘기초의원부문 의정 대상’을 받았다.

▲ 4일 한일용 출향인이 마포구의회 의장에 선출됐다. 사진제공=마포구의회
각종 행사 홍성 유치 앞장

지난해 12월에는 자연보호서울시마포구협의회 회원 40여 명이 한일용 의장의 주선으로 서부면 궁리 간월호 A지구를 찾아 ‘겨울철새 먹이주기 행사’를 개최했다. 한 의장이 자연보호서울시마포구협의회장으로 있던 2009년에는 회원 100여 명과 함께 용봉산 등산을 하며 쓰레기를 수거하고 자연보호캠페인을 펼치기도 했다.


서울 동교동에서 음식점을 운영하던 시절에는 동교동청소년지도협의회 회장을 맡아 하루 수천 명의 청소년이 붐비는 홍대 주변에서 야간순찰과 청소년 계도에 앞장선 그다. 한국구조연합회 특수안전국장으로 활동하던 2005년에는 삼풍백화점 붕괴현장 실종자 수색을 비롯해 태국 쓰나미 현장 등 국내외 다양한 재난현장을 찾아 인명구조 및 복구활동을 펼친 공로로 행정자치부 장관 표창을 받았다.

갈산면 쌍천리 고향, 갈산초 51회 졸업

불의를 지나치지 못하고 어려움에 처한 이웃을 앞장서 도우며 살아온 한일용 의장은 청년 시절부터 ‘의인’으로 통했다. 돌이켜 보면 남다른 의협심의 근원은 “다 쌍천리 어른들에게서 배운 미덕”이란다.

갈산면 쌍천리가 고향인 한일용 의장은 故 한원봉·박남의 씨 사이에서 태어나 갈산초등학교(51회)를 졸업했다.

“초등학교 2학년 때 아버지를 여의고, 가정형편이 정말 어려웠어요. 어머니와 단둘이 어렵게 사는 저희 모자에게 인정 많은 쌍천리 이웃들이 큰 힘이 되어주셨지요. 가을이면 타작하고 남은 짚을 모아 지붕을 만들라고 챙겨주시던 기억도 나요. 자칫 삐뚤어질 수도 있었던 환경이었지만, 인심 좋은 동네에서 성장하며 세상에 대한 믿음을 얻은 것 같아요.”

사는 게 바빠 초등학교 졸업하자마자 일선에 뛰어들어야 했다. 고단하고 치열한 삶이었지만, 농사일 마치고 어르신들이 따라주는 막걸리 한 잔에, 요맘때면 다 같이 뜰채 하나 들고 와룡천에 뛰어들어 즐기던 천렵과 매운탕 한 사발에 근심을 잊었다.

“1977년에 고향을 떠났으니 어느덧 40여 년이 지났네요. 제게는 큰 산 같은 고향인데, 이렇게 추억을 되새기다 보니 사는 게 바쁘다는 핑계로 고향을 위해 한 게 너무 없다는 생각이 들어요. 어린 시절 가족처럼 사랑해주셨던 쌍천리 이웃들에게 홍성신문을 통해 인사드릴 기회가 생겨 감사합니다. 앞으로 시간을 만들어서라도 더 자주 고향에 찾아뵙고, 우리 고향 사람들의 행복과 발전에 작은 역할이라도 꼭 할 테니 지켜봐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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