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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하정/ 오종설<홍성제일장로교회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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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하정/ 오종설<홍성제일장로교회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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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6.05.19 13: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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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과의 만남에는 이유가 있다!

▲ 오종설<홍성제일장로교회 목사>
이런 말이 있다. 부부가 같이 사는 이유는 10대 부부는 서로 뭣 모르고 살고, 20대 부부는 서로 신이 나서 살고, 30대는 건너뛰고, 40대 부부는 서로 마지 못해 살고, 50대는 불쌍한 마음에서 살고, 60대는 서로 필요해서 살고, 70대는 서로 고마워서 산다는 것이다. 인간에게 일평생 여러 번의 중요한 만남이 있다. 부모와의 만남을 시작으로, 친구의 만남, 부부의 만남이 그러하다. 이중에 특히 부부의 만남은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이다. 태초에 천지 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께서 아담을 흙으로 지으시고 그 코에 생기를 불어 넣어 주심으로서 사람이 되게 하셨다. 그러나 아담의 독처함을 놔두지 아니하시고 돕는 배필인 여자 화와를 만들어 아담에게 인도하니, 인류의 첫 부부요, 첫 가정이 출현하게 된 것이다. 아담이 그의 아내가 될 화와를 처음 만났을 때, 한 첫 마디가 “이는 내 뼈 중에 뼈요, 살 중에 살이라”고 탄성을 올렸다. 부부의 만남은 천륜과도 같다. 하늘의 뜻이요, 인륜지 대사가 결혼 이라고 본다.

부부의 만남은 서로 사랑하기에 만나서 결혼하지만, 결혼 후에 3가지의 복을 누리려는 이유가 있다.

첫째는, 행복해야 한다. 결혼 전에는 상대방을 사랑하기에 모든 것을 다 사랑의 눈으로 보게 된다. 사랑은 허다한 허물을 덮는 신비한 약과 같기에 어떠한 모자람도 실수도 다 좋게 보여진다. 그러나 결혼 후에는 사랑의 신비한 약도 시효기간이 지남에 따라서 상대방의 단점과 허물을 보이게 한다. 이때부터 가정의 불화는 시작되어 상대방을 비판하고, 책망하고, 불평하며 원망하기에 이른다. 행복지수는 점점 하강하기에 이르러 분쟁과 불화가 시작 되는 것이다. 부부의 만남에 있어서 가장 큰 이유는 서로 간에 행복을 위하여 있는 것이다. 그런데 행복은 더 많은 소유나 더 좋은 환경에서 오는 듯 착각에 빠지게 하는데, 이 착각에서 벗어난 부부가 행복해 질 수가 있다. 행복은 만남이요, 존재의 가치에 오는 것이다. 아담이 화와와의 만남에서 행복했고, 혼자 있다가 곁에 있어 줄 배필이 있음에 행복했던 것이다.

부부의 행복은 자격이 아니라, 의무이며 권리인 것이다.

둘째, 항복하는 부부가 되어야 한다. 진정한 부부로의 만남은 서로간 무릎을 꿇도록 하며, 서로간 져 주는데 익숙해 가는 것이다. 모든 싸움에는 승자와 패자가 분명하게 있지만, 부부간의 싸움에는 승자나 패자를 구분 할 수가 없다. 오로지 부부간의 다툼은 모두가 패자가 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지혜로운 부부는 서로 먼저 ‘항복’ 하는 것이다. 남편에게 항복 할 때, 아내에게 항복 할 때 부부됨을 인정해 가는 것이다. 부부간의 항복은 가정을 화목하게 만드는 열쇠와도 같은 것이다.

셋째로는, 부부가 서로 항복하며 살다 보면, 행복한 가정으로 세워 진다. 그 속에서 축복을 누리게 되는 것이다. 부부의 만남은 축복된 삶을 위한 것이다. 탈무드에 “남편이 왕이 되면, 아내는 왕비가 되고, 가족은 왕족이 된다”라는 말이 있듯이 부부는 서로 간에 축복하며, 존경하고 격려하며 살아야 한다. 배우자가 가장 듣고 싶은 말은, “당신 최고 예요. 당신이 곁에 있어 행복해요. 힘내세요, 내가 도와줄께요. 항상 감사해요.” 축복은 입술에서 시작 되는 것이다. ‘천냥 빚도 말 한마디로 갚는다’라는 속담과 같이 부부간의 축복은 사랑하고 존경하는 말 한마디가 이루게 한다는 평범한 사실을 곧바로 실천하는 5월이 되었으면 한다.

부부간의 만남에는 분명한 이유가 있다. 행복을 위한 항복을 하기 위함에 있고, 축복을 함께 누리는 부부로 살기 위함에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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