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맛집 순례/ 홍성읍 오관리 ‘콩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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맛집 순례/ 홍성읍 오관리 ‘콩사랑’
  • 안현경 객원기자
  • 승인 2013.06.25 19:1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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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산 검은콩으로 매일 만드는 대팽두부

 
정직과 정성으로 만드는 영양만점 콩요리
구수하고 진한 콩국물 … 콩맛 살아있는 손두부

가끔 우리나라 음식을 보면 그에 들어가는 시간과 정성에 비해 제값을 받지 못한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서양이라면 그냥 버터 발라 구운 감자도 근사한 요리로 치고 값을 매기는데 우리나라는 감자를 졸이고 볶고 품은 더 들이는데 곁으로 내는 반찬 취급에 불과하다. 식당에서는 그 많은 반찬들의 높아지는 재료 가격에 인건비를 감당해야 하는데 손님들은 값싸고 푸짐하고 그러면서도 좋은 재료로 만들었기를 바란다. 어쩌면 서양 요리처럼 반찬 가짓수를 줄이는 것이 답이 아닐까 싶기도 하다.

두부도 그렇다. 제대로 만들려면 좋은 콩을 골라 여러 시간 물에 불리고, 다시 이것을 충분히 곱게 갈아 모으고 서서히 저어 끓여내야 한다. 끓인 두유에 간수를 넣고 엉기기를 기다려 다시 틀에 굳혀서 만들어야 한다. 재료가 다를 뿐 비슷한 과정을 거쳐 만들어지는 것이 서양의 치즈인데 값으로 매겨지는 대접은 꽤나 차이가 난다. 제대로 만든 두부는 치즈 못지않게 정성이 들어가고 풍미가 있는데도 말이다. 두부의 매력을 제대로 알려면 각종 요리의 식재료로 쓰이는 곳이 아니라 두부 자체가 주인공인 집에 가야 한다. 그래서 이번에 소개할 곳은 청솔아파트 입구에서 직접 만든 손두부를 내는 집 ‘콩사랑’이다.

▲ 흑두부 김치
홍성읍 오관리 청솔아파트 정문 앞에 있는 콩사랑은 겉에서 보기엔 오래된 분식집처럼 허름한데 안은 생각보다 깔끔하다. 점심시간이 지났는데도 두 명의 여인이 앞치마를 두르고 쉴 새 없이 움직이고 있는데 테이블이 한눈에 들어오는 가게 안에는 쌀, 콩, 배추김치, 고춧가루가 모두 국내산이며 모든 콩 음식은 직접 만들어 사용하고 있다는 문구가 보인다.

흑두부김치와 콩국수를 주문한다. 살짝 데친 검은콩두부가 접시 가득 썰려 나오는데 옅은 잿빛에 우둘투둘한 질감이 손으로 틀을 눌러 만든 모양새다. 함께 나온 볶은 김치를 얹어 맛본다. 두부가 너무 진해 김치 양념으로 덮이지 않는다. 그냥 김치 없이 두부를 한입 베어 문다. 콩 맛이다. 콩 맛인 게 놀라운 건 우리가 흔히 아는 두부의 맛이 아니기 때문이다. 공장제식 두부에는 유통과정을 위해 여러 화학약품들이 들어간다. 때문인지 ‘이렇구나’ 하게 되는 두부 특유의 향이 있다. 그런데 이 손두부를 먹으면 알게 된다. 갈리고 끓여져 모양은 바뀌었어도 부드러우면서도 탱탱한 식감이 생겼을 뿐 두부에선 원래 콩 맛만 나야 한다는 것을.

서리태콩국수도 마찬가지다. 서리 맞고 나서야 수확할 수 있다고 해서 이름 붙은 서리태는 겉은 검고 안은 녹색이다. 그래서 이 녀석을 곱게 갈아 국물을 내면 초록빛이 감도는 콩국물이 나오게 된다. 아낌없이 서리태를 갈아 넣은 콩국물의 밀도 높은 구수함에 여기저기 주문한 콩국수 그릇들은 족족 바닥이 훤하게 드러나 회수되고 있었다.

▲ 서리태 콩국수
7년쯤 된 이곳은 복정자·복정희 자매가 운영하고 있다. 홍동면 신기리가 고향인 이들은 농사짓는 둘째의 집에서 농산물을 가져다쓰고 검은콩은 전통시장 관성상회에서 받아쓴다. 아침마다 콩을 갈고 끓여 그날그날 필요한 두부를 만든다. 두부도, 콩비지도 검은콩으로 만들고 콩국수는 서리태로 만든다.

“검은콩으로 하면 재료 값이 더 들 텐데요?”하는 물음에 들려오는 명쾌한 대답은 “더 맛있고 더 몸에 좋으니까요.” 검은콩의 ‘검은’ 색소는 블루베리처럼 항산화작용으로 노화에 좋다고 알려져 있는 안토시아민이 들어 있다. 다이어트며 미용식품으로도 각광받는 검은콩. 그래서 단골들 가운데는 검은콩을 갈 때 나오는 물을 찾는 분들도 있다고. 차게 식힌 검은콩물은 진한 포도주스 같은 색을 띠고 있는데 콩차라고 해야 할 법한 꽤나 깔끔한 맛이 났다.

정희 씨가 말한다. “흑두부 한 모를 만드는 데 국산 검은콩 2kg가 들어가요. 원래는 두부 만들고 남은 찌꺼기로 비지를 만들어야 하는데 그럼 맛이 없잖아요. 그래서 우리는 비지용을 따로 만들어요. 아낌없이 진하게 만들고 값도 싸니까 멀리서도 찾아와 주시는 분들이 있는 거죠.” 손님이 예전에 100만 원 뭉치를 놓고 간 것을 찾아드린 적도 있다며 정희 씨는 정직함을 자랑으로 여기며 산다.

같은 이름의 정희 씨가 예전에 예산에 살았었다. 젊은 시절 본가 음식을 제주도로 공수해 먹을 만큼 까다로운 미식가였다는 그는 말년에 ‘대팽두부’라는 명문을 남겼다. “최고 좋은 반찬은 두부 오이 생강 나물이고 (大烹豆腐瓜薑菜) 가장 좋은 모임은 부부 아들딸 손자의 모임이다(高會夫妻兒女孫)”라는. 바로 추사 김정희가 남긴 글이다. 소박하지만 정성스레 만든 두부는 서양요리에도 진수성찬에도 뒤지지 않는 최고의 반찬이라는데 동의한다면 찾아가 보길. 진한 콩 맛이 입가에 구수한 웃음을 띠게 해 줄 것이다.

▲운영시간: 오전 11시 ~ 오후 9시 (매주 일요일 휴무).
▲메뉴: 서리태콩국수 5000원, 순두부 청국장 콩비지 6000원, 흑두부김치 1만 원 등.
▲찾아가는 길: 홍성읍 오관리 856 청솔아파트 입구.
▲문의: 041) 634-99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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