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맛집 순례/ 홍성읍 오관리 ‘뜸부기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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맛집 순례/ 홍성읍 오관리 ‘뜸부기네’
  • 안현경 객원기자
  • 승인 2013.03.05 15:2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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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격에 맞춰 주인장 맘대로 나오는 상차림 ‘별미’

 
예약필수 … 손님 기호에 맞는 음식 내 놔

참으로 묘한 식당이었다. 늦은 저녁, 지인의 추천을 받고 허기진 배를 채울 겸 찾으러 나선 뜸부기네 식당은 오관리 홍성상설시장을 두 바퀴를 돌도록 나타나지 않았다. 겨우 찾고 보니 식당 간판이 꺼져 있었던 것. 들어가는 입구에 쓰인 메뉴판도 ‘한우갈비 4인 1상’ 하는 식으로 이해하기 어지럽게 쓰여 있다.

식당 안으로 들어가서 두 명이서 먹을 음식을 주문할 수 있느냐 물으니 곱게 차려 입은 사장님이 난처한 표정을 짓는다. 마다 하지는 않으나 반갑지도 않아 한다. 식당 안에는 여전히 사람들도 많고 반주를 즐기는 사람들도 많았는데 말이다. 묵은지등갈비 찌개만이 된다 하여 그것을 시키고 한 자리를 차지한다.

실내는 마치 푹신한 소파들로 채워져 있어 호프집이나 레스토랑 같은데 조명이 밝다. 한켠에는 구획이 되어 있고 천장에는 로만쉐이드가 달려 있어서 로만쉐이드를 내리면 다른 이들의 시선을 차단할 수 있는 구조, 왠지 비밀스럽고 아늑한 느낌이다. 어떤 공간을 개조했던 것일까 고개를 갸우뚱거리고 있는데 반찬이 들어오고 찌개가 불 위에 오른다.

 
국내산 돼지고기 등갈비가 잘 익은 신김치와 어울려 자글자글 익어간다. 거기에 깔리는 반찬은 매콤새콤한 세발나물 무침, 고소한 들깨 드레싱을 한 고사리 무침. 늦은 저녁인데도 식지 않은 고등어조림이 나온다. 등갈비가 익기 무섭게 먹어치우기를 시작하는데, 점원이 “곱창 있는데 좀 드릴까요?” 하고 물어본다. 고개를 끄덕이니 뜨끈하게 삶은 곱창과 새우젓이 나온다. 그제야 추천해 준 지인이 하던 말이 생각났다. “가격에 음식을 맞춰주는 집. 나가는 음식은 주인장 맘대로인 집.”

음식을 먹는 동안에 함께 간 지인과 나는 별로 말이 없었다. 저녁 8시가 넘은 허기를 달래느라 급했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어느 반찬 하나 손 안 가는 것이 없었기 때문이다. 모든 반찬과 음식을 깡그리 비울 때쯤 사장님인 백종순 씨가 다가와 늦게 와 별로 찬이 없다며 미안해한다. “우리는 예약제로만 손님을 받아서 갑자기 찾아온 손님이 참 어려워요. 지금도 반찬이 많이 안 남아서 받기 어려웠는데, 대신 찌개에 등갈비를 많이 내어 드렸어요.”

아들 잃고 시작한 장사 인연 닿아 찾는 손님에게 최선

올해로 예순 살이 된 그녀가 이 식당을 시작한 것은 2005년. 당진이 고향인 백 씨는 공무원인 남편을 만나 살림하며 살던 중 1994년 큰아들을 교통사고로 잃었다. 마음의 병을 얻은 백 씨는 시름시름 앓기 시작했다. 헛것을 보기 일쑤였고 삶의 의지도 희미해져 갔다. 그렇게 힘들게 보내기를 10여 년, 우연히 지금의 식당 자리에서 일을 하며 마음의 평화를 얻었고 가족들을 설득해 식당을 인수하게 됐다.

“식당 이름을 꿈에서 얻었어요. 문득 어떤 할아버지가 꿈에 나타나 대뜸 ‘내 이름이 무엇인지 아느냐?’고 호통치며 묻다가 모른다고 하니까 알려준 이름이 뜸부기에요.” 꿈속에서 백 씨가 돌아가려는 할아버지를 따라나서는데 벼가 알알이 여물어 고개를 숙인 황금들녘이 펼쳐졌다고 한다. 들녘에 손을 갖다 대려는 순간 할아버지가 “건드리지 마. 건드리면 다 떨어져” 하고 말했다고.


늦은 나이에 주방까지 맡아가며 식당을 시작해 백 씨는 예약제로 소수의 손님만 받기로 했다.

일본에 여행을 갔을 때 식당마다 간판 불 따로 없이 손님을 맞이하는 것을 보고는 간판에 불도 끄게 되었다고 했다. “어차피 오시는 손님은 다 전화하고 알고 오시는 거니까요. 전날이나 두 시간 전까지 예약을 하시면 그때그때 음식을 만들어요. 예약 손님이 없는 날에는 아예 음식을 하지 않아요. 그러니 늦게 갑작스레 찾는 손님에게는 별로 드릴 음식도 없는 거죠.”

 
갈치, 물메기 등 주 메뉴에 생선이 많다보니 4인 기준으로 상차림을 하고 전복이나 아나고 등 가격에 따라 추가 요리가 들어간다. 단골손님이 많다 보니 그날 오시는 손님 기호에 따라 오리며 닭고기, 한우에 등갈비까지 함께 가격에 맞춰 준비한다. 가히 육해공이 총출동 하는 정식이 되는 것. 소규모 연회가 가능한 식당들은 메뉴가 으레 회나 고기로 정해져 있는 경우가 대부분인데 이곳은 가격에 맞춰 다양한 요리가 가능하기에 최근 도청 공무원 손님들의 출입이 잦아지고 있다고.

먹고 살기 위해서가 아니라 백 씨가 살기 위해 시작한 식당이다. 굳이 간판 불을 켜고 오고가는 손님을 불러들이는 대신 인연이 닿아 찾은 손님들에게 최선을 다한다. 손님이 먹는 때를 맞추고 손님의 기호에 맞춘 요리를 선보여 발걸음이 이어지게 하는 식당. 함께 뜸부기 이름의 유래를 들었던 지인이 말했다. “욕심 내어 벼 나락을 떨지 않아도 자연스레 떨어지는 나락만으로도 충분히 잘 될 것이라는 그런 뜻이었나 보다.”

▲운영시간: 12시~저녁 10시까지 (예약은 필수이며 예약 시 주말도 가능)
▲가격: 한우등심, 묵은지등갈비, 물메기탕, 아나고 조림, 전복 등. 1인당 만 원~3만 원. 4인상 차림 기준
▲찾아가는 길: 홍성읍 오관리 매일시장 입구
▲예약 및 문의: 041)634-5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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