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착한가격업소 탐방 ⑦/ 전통시장 내 ‘홍동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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착한가격업소 탐방 ⑦/ 전통시장 내 ‘홍동집’
  • 안현경 객원기자
  • 승인 2012.12.28 15: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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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대 할머니 한결같은 음식솜씨 … 40년전 국밥 맛 그대로

풍채좋은 남편 여의고 6남매를 하나같이 곱게 키워

 
홍성읍 큰시장에서 소머리국수와 소머리국밥을 파는 뚱땡이아줌마 집 바로 옆에는 같은 메뉴를 똑같이 3000원, 5000원 착한 가격에 파는 또 다른 음식점이 붙어 있다. 이름하여 홍동집. 손님이 뜸한 오후 소머리국밥을 주문하니 주인인 장옥순 씨가 천천히 밥을 퍼고 국밥을 말아준다. “처음에는 장날에 뭐 팔구이구 하면서 장사를 시작했지. 한 오 년쯤 됐나? 국밥집을 한 지는 삼 년인가 사 년인가 헷갈리네.”

장옥순 씨 나이는 여든하나. 말하는 햇수는 ‘십’자를 다 빼고 이야기한다. 그러니까 홍성 큰 시장서 물건을 팔고 한 지는 오십 년, 국밥집을 한 게 삼사십 년이 됐다는 이야기다.

‘홍동집’이라는 간판은 남편의 고향 이름에서 따왔다. 장곡이 고향인 장 씨는 열일곱 나이에 남편을 만나 홍동면 운월리 운곡마을로 시집을 왔다. “시집갈 적이 10월이었던 것 같은데 검은 머리 길게 늘어뜨리고 예쁘다는 소리 많이 들었지” 하는 장 씨의 얼굴에 아련히 웃음이 번진다.

일곱 살 많은 풍채 좋은 남편은 동네서 씨름 잘하기로 소문난 장사였다. “전쟁 나고 남편과 서산으로 가 피란민들에게 주는 집을 얻어 살았는데 집이 말집(마굿간) 같은 거야. 너무 어려워서 고향으로 다시 내려왔지. 그래서 읍내 시장서 머리에 과일이며 반찬을 이고 팔러 다녔지. 그러다 장날에는 국밥집을 열어 국밥을 팔았구.”

 
소머리를 털도 안 태우고 육간(정육점)에서 받아오던 시절부터 장사를 했다. “그 때는 털을 불로 끄실러서 노린내가 났어. 지금은 깨끗하게 없애고 주거든.” 6남매를 키우며 힘들지만 한결같이 장 일을 버틴 건 예쁜 색시밖에 모르던 남편을 믿고 의지했기 때문이다. “한날 싸운 적도 없어. 밖으로 나다니는 일 없이 힘든 일 다 해줬지. 풍채가 커서 오래 같이 살 줄 알았더니, 7년 전 아프다가 세상을 떴지.” 장 씨는 식당 위 몸도 세우지 못하는 다락방에서 앓다 간 것이 너무 안 됐었다며 눈가가 촉촉해졌다. “가끔 그때 국수 잘 삶으시던 바깥양반 어디 갔냐고 물어보던 사람들이 있어. 요즘은 술 먹구 와서 값 안내고 늙은이더러 욕 허구 그런 사람들도 있는데, 예전에 할아버지 있을 때는 생각도 못하던 일이었지.”

지금은 며느리와 함께 장사를 이어 가고 있다. 별로 남는 것 없이 장날 하나 보고 장사를 하는데 그나마도 날씨가 너무 추워져 손님이 뚝 끊겼다고. “소 머릿고기가 풀어지도록 국물을 내려면 너덧 시간씩 불을 때야 하는데 요즘은 장 두 번만 지나면 가스통이 똑 떨어져. 그런데 10만 원이나 해. 늙은이 한 푼이라도 더 벌게 값을 올리면 좋겄는데, 뚱땡이네두 그렇구 주위에서 올리지를 않으니 어쩌겠어.”

장터에 오래 있는 이 답게 이야기를 맛깔지게 하고 사람과 어울리는 재주가 있는 장씨. 멸치 파는 젊은 상인이 “손님상에 멸치 정도는 내야지” 하니 “우리네는 김치, 짠지만 곁에 내도 맛있게만 먹어.” 하며 요령 좋게 맞받아친다. 술 먹고 행패부리는 이들에게는 시원한 욕 세례를 퍼부어 줄 만큼 배짱도 두둑하지만, 또 늦게까지 있는 손님에게 일어나라는 말도 못하는 정 많은 할머니다. “아이고, 얘기 장단 한 번 잘했네. 몇 시까지 하냐구? 그냥 손님이 있을 때까지 하지. 놀면 뭐해. 조금씩 움직이고 말도 나누는 게 건강에도 좋지.”

열일곱 긴 머리 예뻤던 옥순 씨 두고 풍채 좋던 남편은 어디로 갔나. 그래도 장 씨는 국밥을 만다. 큰 손자가 증손자를 낳고, 할머니를 똑 닮았다는 막내 손녀가 식당 벽에 낙서를 가득하는 지금까지. 배운 게 이것뿐이라며 굽은 몸을 이끌고 천천히 국밥을 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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