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맛집 순례/ 삽교읍 ‘사과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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맛집 순례/ 삽교읍 ‘사과나무’
  • 안현경 객원기자
  • 승인 2012.12.18 11:1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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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까스와 보리밥…빈티지한 분위기…젊은 엄마들 단골

▲ 공방 같은 분위기가 물씬 풍기는 레스토랑 사과나무에서 문호석, 안은미 부부
절망 속에서 지은 희망의 간판 ‘사과나무’

전통있는 맛집들은 대개 역사가 오래돼서 인지 집이 허름하기 마련이다.

맛집에 분위기와 운치까지 있으면 금상첨화일테고. 기왕이면 칼질도 좀 해 볼 수 있는 양식 맛집을 바란다면 무리일까?

있다. 아이를 둔 젊은 부부가 좋아할 만한 레스토랑. 게다가 값도 저렴해 부담도 적다.

 
돈까스로 유명한 삽교읍 사과나무집은 이미 엄마들 사이에선 유명한 모임 장소다.

예산하면 사과인데 레스토랑 이름이 ‘사과나무’라니 일단 호감이다.

삽교읍에서 조금 떨어진 길가에 자리하고 있는데, 하마터면 지나쳐 버릴 정도로 간판이 조그맣다.

하얀 간판에 달랑 ‘사과나무’라고 검게 쓰인 것이 마치 눈밭에 서 있는 겨울나무를 닮았다.

호감 플러스. 나뭇조각을 덧대 만든 지붕을 보며 나뭇가지를 그대로 붙여 손잡이로 만든 문을 연다. 순간, 흙과 나무와 사람이 만들어 낸 갈색의 풍경이 한눈에 들어온다.

황토로 마감된 벽에는 수채풍경화와 손으로 쓴 시가 가득하고, 투박한 도자기잔과 그릇들이 곳곳에 진열돼 있다. 가운데에는 나무난로가 피어오른다. ‘빈티지’ ‘앤티크’ 같은 말이 생각나는 산장 같기도 하고 공방 같기도 한 따뜻한 풍경.

식사메뉴는 달랑 두 종류뿐이다.

 
필자는 보리밥, 지인은 돈까스를 시켰다.

이내 보리밥과 나물 반찬. 도토리 묵, 전이 나오고 추억의 크림스프가 나온다.

보리밥에 빛깔 고운 고추장과 나물을 넣어 슥슥 비비는데 돈까스 등장. 돈까스에 일가견이 있다고 자부하던 지인은 한 눈에 알아봤다.

“이건 느끼하지 않은, 맛있는 돈까스군요. 딱 보면 알 수 있어요.” 짙은 색 데미그라스 소스가 듬뿍 뿌려진 돈까스를 칼로 서걱서걱 자르는데 쉽게 잘리는 소리와 모양새가 바삭하고 부드러울 고기의 질감을 상상하게 한다. “맛만 보자”며 가장 크게 썰어놓은 조각을 한입에 덥석 먹는다. 생각했던 대로의 맛이 나니 입가에 웃음이 지어진다.

보리밥 시켜놓고 돈까스 썰어놓기가 무섭게 뺏어 먹었다. 덕분에 둘 다 돈까스가 아쉬워져 버렸다.

분위기 좋은 레스토랑 찾을 때는 언제고 “리필 되면 좋겠다”는 말이 나온다.

식사를 마치고 나니 후식으로 차도 나온다.

홍성읍에서 온 박상미 씨는 남편과 점심데이트를 즐기러 사과나무를 찾았다.

박 씨는 “분위기도 있고, 돈까스도 맛있는 데다 이 가격에 후식으로 차도 나온다”며 가족들이 즐겨 찾는 집이라고 말했다.

커피를 마시며 포만감을 즐기고 있는데 고기 두드리는 소리가 주방에서 들린다.

일일이 고기를 두드리고 있는 사람은 바로 사과나무 안주인 안은미 씨. 여유로운 공예가가 취미 삼아 레스토랑을 운영하는 건가 싶었는데 의외다.

안 씨는 바삐 움직이며 “우리는 다른 비결이 없어요. 그냥 얼리지 않은 돼지고기 등심을 사용하고 주문이 들어오면 그때그때 양념 입혀서 깨끗한 기름에 튀기는 게 전부예요”하고 말한다.

47세 동갑내기 문호석, 안은미 부부는 원래 이곳에서 어린이집을 운영했다. 그런데 12년 전, 보증 때문에 큰 빚을 져 땅과 집을 모조리 잃을 처지가 되고 말았다. 문 씨는 그때 스피노자의 말을 떠올렸다고 한다.
“그때는 정말 세상이 다 무너지는 느낌이었어요. 그래도 우리는 여기를 팔지 않고 빚을 갚기로 했어요. 이 가게는 마지막 사과나무를 심는 마음이었지요. ”부부가 맨 처음 만난 곳도 예산읍내에 있던 사과나무라는 카페였다. 도예 공방과 찻집으로 꾸미기를 시작했는데, 돈은 없었지만 부부에게는 손재주가 있었다.
황토벽이며 바닥 돌까지 둘이서 손수 작업했다. 레스토랑 전체가 이들 가족의 갤러리인 셈.
당신과 나 / 어린 봄날 소꿉놀이처럼 / 그렇게 살면 어떨까?

풀잎이랑 / 돌멩이랑 / 햇살 한 줌이면 / 맘껏 행복하던 그날처럼. -중략-
안은미 ‘당신에게’ 중에서

지금은 점심식사를 하러 찾아오는 손님이 더 많다.

부부가 심은 사과나무가 얼마나 멋지게 자랐는지 한번 찾아가 보기를. 빈티지한 분위기와 바삭한 돈까스 맛에 한번 반하고, 어려운 생활 속에서도 멋을 잃지 않은 부부에게 또 한 번 반하게 될 것이다.

단, 독특한 휴일을 기억할 것. 세 딸의 생일에 맞춰 매달 11일, 22일, 말일에 쉰다.

주말일지라도 이날이면 어김없다.

운영시간: 10시~저녁 9시 (식사는 11시부터)
가격: 보리밥 6000원, 돈까스 8000원, 차와 막걸리, 동동주, 파전도 있다.
찾아가는 길: 예산군 삽교읍 상하리 372-17. 문의 041)337-42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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