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맛집순례/ 덕산면 둔리 입질네어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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맛집순례/ 덕산면 둔리 입질네어죽
  • 안현경 기자
  • 승인 2012.11.27 17:4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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뜨끈한 어죽 뚝배기로 강태공 유혹

 
어죽. 충남지역 출신이 아닌 사람에게는 생소한 음식인데, 민물 생선을 고아 만든 육수에 쌀을 넣고 갖은 양념을 넣어 끓인 죽을 말한다.

저수지를 찾는 강태공들의 한 끼를 든든하게 책임지는 음식이자 지역 사람이라면 누구나 어릴 적 친구들과 물고기 잡으러 갔다가 먹은 적이 있는 추억이 깃든 음식이기도 하다.

어죽으로 유명한 곳은 예산군 덕산면 둔리저수지 주변에 있다.

본지가 찾은 곳은 ‘입질네어죽’. 점심때를 맞춰 앞서가던 차들이 일제히 자석에 붙는 것처럼 너른 주차장으로 빨려 들어가는 것이 모두가 어죽을 먹으러 여기까지 온 건지, 지나가다 먹을 생각이 든 건지 알 수 없을 정도다. 함께 한 지인도 “여기 잘하죠” 하며 따라서 핸들을 돌린다.

말 그대로 입질이 좋은 핫 스팟(Hot spot)인 셈. 주인 안성신 씨는 “입질네 어죽이라는 식당 이름은 낚시를 좋아하던 바깥양반이 지었어요” 하고 말한다.

물고기가 낚싯밥을 무는 걸 ‘입질’이라고 하는 것처럼 사람 입도 맛있는 음식으로 많이 오게 하자는 뜻이라고.

식당에는 빠가사리, 메기, 민물새우 등을 넣고 끓인 매운탕 메뉴도 있지만, 점심 때 찾는 사람들은 대부분 6000원 짜리 어죽을 시킨다. 마음 급한 단골들은 문을 열고 들어설 때부터 “어죽 둘! 양 많이!” 하고 앉기도 전에 주문부터 한다. 안 씨는 “음식이 남으면 안 좋으니까 ‘양 많이’ 라고 하면 뚝배기에 넣을 수 있을 만큼 가득 담아 줘요” 하고 말한다.

뚝배기에 담겨 나오는 어죽 안에는 민물새우들과 눈이 마주치는 걸 제외하면 생선의 모습은 찾을 수 없다. 대신에 굵고 새하얀 국수 면발들이 뻘겋고 진한 국물 바다 속에서 물결치고 있다.

뜨거운 어죽을 몇 숟갈 떠서 앞 접시에 옮겨 담는다. 후후 식혀가며 걸쭉한 국물을 입안에 넣으니 깻잎과 들깨가루 때문인지 비리기는 커녕 고소한 맛이 난다.

어죽에 곁들여지는 반찬은 생야채와 간장고추장아찌와 얼음 동동 띄운 무 짠지, 시큼하도록 익은 백김치. 뜨겁고 매콤한 어죽으로 자극 받은 입안을 장아찌와 짠지, 백김치로 식히는 셈.

목욕탕에서 온탕과 냉탕을 오가는 원리랄까. ‘면발 불기 전에’ 하고 정신없이 후루룩 들이켜다 보면 어느새 한 그릇이 뚝딱 비워진다.
아, 이럴 거면 나도 ‘양 많이’로 시킬걸.

 
민물새우 넣고 뚝배기 사용 ‘직접 개발’

어죽과 짠지, 백김치는 모두 충남지역의 전통 음식이다. 하지만 이렇게 지역의 맛을 내는 안 씨는 사실 고향이 서울이다. 30여 년 전 낚시를 좋아하던 남편을 만나 이곳으로 내려와 저수지 옆에 살면서 간판도 없이 가게를 시작했던 것. 이웃 할머니들을 찾아다니며 직접 지역의 맛을 배우고 남편이 잡은 고기로 매운탕이며 어죽을 만든 것이 차츰 입소문이 났다.

“생산을 갈아 넣은 게 아니라 푹 고아서 만든 국물을 써요. 갈아서 넣으면 아무래도 뼈가 씹힐 때가 있거든요. 쌀과 밥을 넣는 것도 집마다 다른데 시간이 많이 걸려서 그렇지, 쌀이 훨씬 맛있지요.” 고았다가 다시 끓이고, 하루종일 솥불이 꺼질 날이 없는 식당. 죽에는 시간이라는 양념이 꼭 들어가야만 맛이 있어지는가 보다. 하지만 지금의 명성을 얻게 된 데에는 안 씨의 여러 시도와 아이디어도 한몫 했다. 지금은 이곳처럼 민물새우를 넣고 어죽을 끓인 다음 뚝배기에 내는 곳을 심심찮게 볼 수 있는데 맨 처음 이 방법을 생각해 낸 것이 바로 안 씨라고.

“민물새우를 한 번 넣어봤는데 그냥 생선만 넣고 만들었을 때보다 훨씬 맛있는 거예요. 뚝배기도 서울에 지인이 식당을 하다가 많이 남게 돼서 한번 써봤는데 뜨끈하고 더 맛있다고 해서 사용하게 된 거고요.”
월요일 점심때인데도 자리를 기다리는 손님이 생길 정도로 북적이는 가게 안. 이날 손님 가운데는 출장 나왔다 들른 아저씨, 어죽 먹으러 마실 나온 주부 등 홍성 사람들을 많이 만날 수 있었다. 예산군 고덕면에서 민물새우 매운탕을 먹으러 왔다는 박옥임 씨네 부부는 “여기 맛있어서 자주 오지. 동네에는 이런 곳이 없어” 하고 말한다.

하지만 어려운 때도 있었다. 수년 전 모 방송을 통해 어죽에 부적합한 재료를 넣는다는 괴소문이 실제인 것처럼 부풀려졌던 것. 군에서 몇 번씩 조사를 받고 신문 등을 통해 사실이 아니라고 호소했지만 한번 받은 상처는 씻기 어려웠다. “사람 셋이 모이면 없던 소문도 만들어낼 수 있다는 걸 알았어요. 우리는 정말 정직하게 먹는 음식을 장난치지 않고 만들어 왔는데 말이에요.” 다행히 몇 년이 지나면서 맛을 보고 식당을 찾는 손님들의 발길이 다시 잦아지고 있다고. 2년 여 전 남편과 사별하고 홀로 가게를 지키고 있는 안 씨는 “단골손님이 아이를 데리고 오고, 다시 또 그 아이가 커서 찾을 때 참 반갑고 좋다”고 말한다.

전날 술을 마신 애주가들이라면 해장으로 이만한 점심 메뉴가 없을 듯하다. 웬만한 먹성이라면 ‘양 많이’를 잊지 말자. 명절 외에는 쉬지 않는다.

운영시간: 매일 오전 9시 ~저녁 9시, 가격: 어죽 6000원, 매운탕 2만5000원부터.

찾아가는 길: 예산군 덕산면 둔리저수지에서 수덕사 방향. 문의: 041) 337-5989, 695길 왼쪽편. 문의 041) 338-264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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