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D. 2024-04-19 08:41 (금)
충남도 무형문화재 합동공연
상태바
충남도 무형문화재 합동공연
  • 전상진 기자
  • 승인 2012.09.11 12:13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13~16일 홍주성 일원서

제1회 충남도 무형문화재 연합 공개행사가 오는 13일부터 16일까지 홍주성 일원에서 제8회 홍성내포문화축제와 함께 흥겨운 잔치마당을 펼친다.
충남도 무형문화재연합회(회장 김용근)와 충남도, 홍성군이 함께 주최하는 이번 무형문화재 연합 공개행사는 사라져가는 충남의 전통 민속 및 풍습을 보존 계승하고, 자라는 청소년들에게 충남도 무형문화재의 가치를 일깨워주기 위한 것이다. 그리고 홍성내포문화축제를 방문하는 손님들에게 다양하고 풍성한 볼거리를 제공하기 위해서이다. 본지는 이번 홍성내포문화축제 기간 중 펼쳐지는 충남도 무형문화재 연합 공개행사 예능 재현부문 18개 팀을 본지 3호와 4호와 이번 호에 걸쳐 싣는다.
전시 재현부문 20개 팀은 충남도 무형문화재 제31호인 홍성댕댕이장(제31호·백길자)을 비롯 홍성지승공예(제2호·최영준) 홍성옹기장(제38-1호·방춘웅) 홍성대장장(제41-2호·무모회), 예산소목장(제18호·조찬형), 아산옹기장(제38-2호·이지수) 아산대장장(제41-1호·허창구) 아산연엽주(제11호·최황규), 서천부채장(제21호·이광구) 서천침선장(제44호·이순동) 서천대목장(제10호·정국진) 서천한산소곡주(제24호·우희열) 서천한산세모시(제1호·나상덕), 청양구기자주(제30호·임영순), 보령남포벼루(제6호·김진한), 태안설위설경(제24호·장세일), 금산인삼백주(제19호·김창수), 세종국궁인(제43호·주장응), 공주목소장(제42호·이상근) 공주계룡백일주(제7호·성연숙) 등이다.
그러나 이번 행사에서 예능 재현부문 중 공주 탄천장승제(제8호) 공주 봉현리 상여소리(제23호), 부여 용정리 상여소리(제22호)와 전시 재현부문 천안 단청장(제33호·보유자 없음), 서천 춘포짜기(제25호·백순기) 등이 올해 행사에 참가하지 못해 아쉬움을 남겼다.

 
공주 선학리 지게놀이(도 무형문화재 제37호)

공주 선학리 지게놀이는 공주시 신풍면 선학리에 전해 내려오는 마을 대동놀이다. 선학리는 전형적인 산촌형 마을로 현재까지도 세시풍속이 잘 지켜지고 산제와 장승제 등이 보존되어 있으며, 지게놀이와 함께 윷치기, 장치기 등의 보기 드문 민속놀이도 전승되고 있다. 2004년 4월 10일 ‘충남도 무형문화재 제37호’로 지정됐다.
선학리 지게놀이는 임진왜란을 피해 마을로 이주해 들어온 입향조들로부터 시작 전승됐다고 조사된 바 있다. 놀이 종류는 지게상여·지게풍장·지게발걷기·지게지네발걷기·지게꽃나비·지게작대기장단·지게호미(호맹이)끌기 등이다. 각각의 놀이에는 산간 서민들의 애환을 진솔하게 담은 만가, 나무꾼 타령 등의 소리가 함께 전승돼 오고 있다.
특히 이중 ‘지게지네발걷기’란 지게들을 서로 연결하여 그 위를 걷는 놀이로 놋다리밟기와 같은 형태의 놀이다. ‘지게꽃나비’란 두레가 끝나는 날 두레꾼들이 마을 앞 공터로 이동하는 과정에서 행하던 놀이로 지게 위에서 색동저고리를 입은 아이가 춤을 추고, 마을 사람들은 노래를 부르면서 함께 노는 놀이다. ‘지게작대기장단’은 지게꾼들이 나무를 하러 오가며 지게 발목을 장구 치듯 치며 노는 놀이고, ‘지게호미끌기’란 두레를 마감하고 호미를 지게 고리에 걸고 끌고 가는 익살스러운 놀이다.
선학리에는 지게놀이보존회가 결성돼 지게놀이를 전승하며 재현공연을 열고 있다. 충청도 내륙지역 산촌에 전승돼 오는 마을의 공동놀이로서 그 원형이 잘 간직돼 있고, 전승기반도 충실해 문화재적 가치가 있다.

 
부여 세도 산유화가(도 무형문화재 제4호)

부여 세도 산유화가는 부여군 세도면에 전승돼 오는 일련의 농요다. 세도면의 농요 중에서 모심는 소리·논매는 소리·벼바심소리·나부질소리·노적소리를 엮어서 ‘산유화가’로 보호하고 있다. 좁은 의미로는 부여, 공주, 논산, 청양 일부 지역의 부여민요권에서 부르는 상사류의 모심는 소리인 부여형 상사를 뜻한다.
산유화의 명칭은 <증보동국문헌비고>의 ‘백제가곡조’와 <단군세기>에도 보이지만, 모심는 소리의 메김 가사에 의거한다. 1982년 12월 31일 ‘충남도 무형문화재 제4호’로 지정됐다. 산유화가는 서민들의 생각과 애환을 담고 있는 노동요로 보호하고 전승하기 위해 무형문화재로 지정했다. 지정 당시에는 이병호 씨와 박홍남 씨가 예능보유자로 인정됐으나, 이병호 씨의 타계로 지난 1998년 조택구·김영구 씨 등이 추가 인정됐다.
세도면의 홍준기 씨로부터 전승한 소리를 1977년 전국민속경연대회에 ‘산유화가’로 출품, 문화공보부 장관상을 수상해 1982년에 지정됐다. 홍준기 씨는 세도면의 임윤필 씨와 김학수 씨로부터 세도 산유화가의 여러 노래들을 배웠을 뿐, 맨 처음 어떻게 부여형 상사가 형성됐는지, 또는 언제부터 불리었는지 정확히 알지 못한다. 다만 부여형 상사의 전파권이 부여민요권에 한정되나 상당한 지역에서 불린 점과 세도 산유화가의 모심는 소리 가사 중에 “입포의 남당산은 어찌 그리 유정턴고, 매년 팔월 십육일은 왼 아낙네 다 모인다, 무슨 모의 있다더냐”라는 구절에서 그 단서를 알 뿐이다.
산유화가는 충청도 일부지방에 전승되는 민요의 하나로 농부들이 김을 매면서 피로를 잊고 능률을 올리기 위해 부른 노동요이다. 개인 또는 집단적으로 부르며, 지방에 따라서 노래가 달라질 수 있다.
산유화가는 ‘메나리’라고도 부르는데 이는 산유화를 풀어서 ‘뫼놀이’라 한 것이 메나리로 되었다는 설과 옛 민요 ‘미나리꽃은 한철이라’하는 데에서 나왔다는 설이 있다. 또 다른 명칭으로는 뫼놀꽃, 미나리 등이 있다. 이 민요는 노인들에 의해 토막토막 구전돼 왔다. 나라(백제)를 잃은 슬픔과 조국에 대한 그리움을 담은 노래이기 때문에 구슬프고 처량한 느낌을 준다. 남·여가 주고받는 형식으로 불리어지며 모심기, 김매기 등의 농요로서 뿐만 아니라 노동과 관계없이도 불리어진 것으로 생각할 수 있다.
우리나라 민요 가운데 산유화가라는 제목이 붙여진 것은 충청·경상지방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한 지역에 분포하고 있다. 그 가사내용의 대부분이 백제고도 부여의 지명이나 백제고사와 연결돼 있어 이 노래가 백제가요가 민간에 구전되면서 취향에 따라 그 가사 내용도 변천되었음을 알 수 있다. 1980년대 민초들로부터 산유화가라는 곡명을 들을 수 있었던 예는 부여 세도면의 산유화가와 전북 고창군 신림면 가평리의 논맴소리인 임봉덕 창의 산유화 15장 및 경북 울릉군 김재조 창의 나무꾼소리인 어산영 곡풍의 산유화가 있으며, 뒤의 두 소리는 세도면의 산유화가와 무관하다.
부여지방의 산유화가는 촌로들의 구전에 의하여 토막토막 이어져 왔으니 궁야평, 구룡포, 남당산, 사비강, 취령봉, 반월성등 모두가 부여지방에서 쓰이는 지명들이다. 이 산유화가는 나라를 잃은 슬픔과 함께 백제유민들의 비감한 창곡에 원망하는 가사를 달아서 마침내는 “용머리를 생각하여 구룡포에 버렸으니 슬프고나 슬프고나 어하 벗님 고국충정 모다허네”라고 잃은 나라를 그리워하는 향수가 깃들어 있다. 이러한 노래는 남녀가 화답하는 형식으로 불리워졌고 모심기, 김매기등의 농요로서 뿐만 아니라 봄·가을의 놀이에서도 노동과는 관계없이 불리어진 것으로 생각된다.

 
부여 내포제 시조(도 무형문화재 제17호)

부여 내포제시조는 충남 서북부 지역에서 불려오던 시조창이다. 홍성·예산·서산·당진을 포함한 내포 지역에서 불려오던 시조의 한 갈래이다. 1992년 12월 8일 ‘충남도무형문화재 제17호’로 지정됐다. 지정 당시의 예능보유자인 창암 소동규 씨의 스승은 미당 윤종선 씨였고, 지난 1997년 이후 현재 예능보유자는 김원실 씨이다. 김원실 씨는 부여읍 소재의 시조회관에서 내포제시조 보급에 힘쓰고 있다. 윤종선 씨와 함께 보령의 김용래·강진호 씨 등도 내포제시조에 능했다 하며, 이들의 제자들이 홍성지역 등에서 활동하고 있다.

현존하는 시조창은 지역에 따라 서울의 ‘경제’와 지방의 ‘향제’로 나뉘고, 향제는 전라도의 ‘완제’, 경상도의 ‘영제’, 충남도의 ‘내포제’로 분류된다. 순조 때의 <유예지>에 전하는 시조 악보가 경제의 평시조에 해당하므로 미루어 보아 시조곡의 원류는 경제이고 향제는 그 파급형으로 보고 있다.
내포제시조는 주로 평시조와 사설시조가 불리고 있는데, 노래의 형태는 경상도의 영제시조와 비슷하나, 좀 더 밝고 깨끗한 것이 특징이다. 음계는 슬프고 처절한 느낌을 주는 3음의 계면조와 맑고 씩씩한 느낌을 주는 5음의 우조로 돼 있다. 중간에는 가락을 올리지 않아 안정감이 있고, 끝부분에는 가락을 떨어뜨려서 여운이 남으며 가성을 쓰지 않는다. 각장의 첫 박은 장식음을 많이 사용한다. 장단은 악기 없이 장구나 무릎장단으로 일시적 연주를 하며 초장과 중장 끝 장단에서 5박자가 줄어들기도 한다. 오랜 세월 사람들이 즐겨 불러오던 것으로서 한국 고유의 대중음악이라 할 수 있다.
특히 내포제시조 선율에서 가장 두드러진 부분은 중장, 둘째 장단 4박〜7박과 종장 첫째 장단의 2박과 3박인데 경제에서는 이 부분을 ‘청황(Eb)’으로 올려내지만 내포제에서도 4도 아래음인 ‘림(Bb)’, ‘태(F)’, ‘황(Eb)’ 음 순서로 종지형을 분명히 나타내지만, ‘중(Ab)’, ‘황(Eb)’ 음 순서로 떨어뜨려 끝내 여운을 남긴다.

 
부여 세도 두레풍장(도 무형문화재 제28호)

부여 세도 두레풍장은 부여군 세도면 동사리에서 전승되는 민속놀이다. ‘두레풍장’은 논농사 철을 본격적으로 맞게 됐을 때 마을 전체적으로 두레조직을 만들어 공동 작업에 앞서 일의 시작을 알리는 놀이이다. 이는 작업 중 일꾼들의 피로를 덜어줄 뿐만 아니라 서로 일손을 맞춰 주는 역할을 한다. 2000년 1월 11일 ‘충남도 무형문화제 제28호’로 지정됐다.
세도 두레풍장이 전승되는 동사리는 세도면의 서남부에 있는데, 남향으로 자리 잡은 마을 앞으로 넓은 들이 펼쳐져 있다. 마을에는 풍양 조씨가 10대 넘게 살고 있고, 수령 400여 년이 넘는 느티나무도 있다. 풍양 조씨는 아직도 장암과 세도면에 가장 많이 산다. 현재는 100여 호에 300여 명이 살고 있다. 마을에는 고려시대의 회양부사 조신을 배향한 동곡서원과 동사리 폐사지 등이 있다.
원래 세도 두레풍장은 박산봉 씨가 중심이 돼 지켜 왔으나, 그의 작고 후에 최종남 씨가 중심이 됐다. 이후 한동안 두레풍장이 쇠퇴하였으나, 1986년 서재억(장고), 권현주(상쇠), 윤구병(쇄납) 씨 등이 ‘세도두레풍장보존회’를 조직해 다시 일으켰다. 보존회의 노력으로 세도두레풍장은 1996년 9월 제1회 충남도 민속예술경연대회와 1997년 10월 제38회 전국민속예술경연대회 등에 참가했다. 현재 ‘세도두레풍장보존회’를 중심으로 보존과 전승에 노력하고 있다.
특히 부여에서는 두레먹기가 칠월칠석에 광범위하게 행해진다. 부여는 칠석문화권이다. 간혹 백중이 중시되는 경우도 있으나 일부에서 칠석과 겹쳐서 이루어질 뿐 백중은 대체로 무시된다. 백중은 대개 머슴들의 명절로 백중장이 서는 정도로 약화된 모습이다. 또 여기서는 김매기 노래에 호남권의 ‘상사디여 소리’와 충청권의 ‘얼카뎅이 소리’가 함께 나타나는 특성을 보인다. 곧 이 지역은 두레음악의 점이지대인 것이다.
두레풍장에서 풍장패는 농기(두레기)를 앞세우고 꽹과리·장구·북·징·태평소 등을 울린다. 풍장패를 운영하는데 드는 비용은 마을공동의 작업이 있기 전, 미리 마을을 돌며 전곡을 거둬 출역(맡은 바 역할)에 따라 분배하고, 일부는 적립하였다가 교량 가설·야학 시설·사물 구입 등에 사용한다. 두레가 끝나면 풍농을 기원하며 술과 노래, 풍장으로 마을잔치가 벌어지기도 한다.
주요 가락은 질굿가락, 칠채가락, 논풍장가락, 쩍쩍이가락, 두렁질굿가락, 자진마치가락, 마당밟이가락, 두마치가락, 매조지가락으로 구성돼 있다. 가락, 판의 구성, 옷차림 등이 전형적인 충청도 풍장의 모습을 잘 유지하고 있다.

 
부여 내지리 단잡기(도 무형문화재 제29호)

부여 내지리 단잡기는 부여군 은산면 내지리에서 전승되는 ‘단(丹)’이라는 병을 물리치기 위한 민속놀이다. 특히 단이라는 괴질이 발생하면 마을 주민이 협동 단결해 병마를 물리치고, 이를 계기로 한마당 놀이까지 펼쳐서 쌓인 감정을 정화하는 민속놀이다. 2000년 1월 11일 ‘충남도 무형문화재 제29호’로 지정됐다. 제36회 전국민속경연대회에서 대통령상을 수상했으며, 현재 이규찬 씨가 예능보유자로 인정, 전승되고 있다.
단이란 ‘단독(丹毒)’이라고도 하는데, 높은 열과 함께 피부에 붉은 반점 또는 흰 반점이 생기며 벌겋게 부어오르는 일종의 피부병이다. 전염성은 없으나 누구나 걸릴 가능성이 있고, 신체의 여러 부위를 매우 빠르게 옮겨 다니기 때문에 ‘단귀신’이라고도 부른다.
단은 증세와 형태에 따라서 창단 태단 홍단 백단 흑단 황단 띠단 녹두단 팥단 메밀단 풍단 두목광술단 등 12단으로 나누어진다. 그 중 두목광솔단이 우두머리인데, 단잡이를 할 때에 가장 먼저 잡는다. 단이 발병하면 침을 놓거나 백반, 자라 피, 계란 흰자위나 콩깍지 태운 재를 바르는 등 각종 민간요법이 동원됐다. 그러나 마을 사람들은 이 질병을 부정과 잡귀잡신 때문에 생기는 괴질이기 때문에 잡는 것이 제일 효험이 있다고 믿었다.
은산면 내지리에는 연희 방법이나 내용이 다양하고 독특한 단잡기 놀이가 전승되고 있다. 백제 말기부터 시작된 놀이라고 하는데, 이는 단귀신에게 “네 이놈 두목광술단아… 한시 바삐 당나라로 속거천리하라”고 고함치는 사설과 관련이 있다.
단잡기에는 가능한 한 많은 사람이 참가해야 한다. 단귀신을 쫓는 함성이 세 동네에까지 울려 퍼져야 효과가 있기 때문에 마을 사람 대부분이 참석한다. 뿐만 아니라 평소 이해관계로 소원해진 사람까지도 참석하여 화해를 하고 같이 소리를 지르며 연희에 참석한다. 놀이는 잡귀를 몰아내고 단잡기가 잘 돼 병이 쉽게 낫기를 기원하며 부정을 풀어주는 단굿, 단을 잡기 위하여 마을사람들이 환자의 집으로 모여서 각성받이 다섯 집을 도는 오곡 걸립, 오곡밥을 지어 단에게 먹인 뒤 12단을 모두 잡는 단잡기, 잡귀가 다시는 살아 돌아오지 못하도록 불을 피우고 액풀이를 하는 땅굿놀이, 모두 환자의 집으로 돌아와 환자를 축원하며 마당을 돌면서 신명나게 춤을 추는 액맥이 놀이 등으로 구성된다.
내지리 단잡기는 질병퇴치 의식을 민속놀이화한 보기 드문 예로 괴질이 발생한 위급상황을 주민들의 단합된 힘으로 이를 물리치고, 한데 어울려서 흥겹게 놀며 일상생활의 애환을 달래는 조상들의 지극히 낙천적인 세계관을 보여주는 전통 민속놀이다.

 
계룡 강독사(도 무형문화재 제39호)

계룡 강독사는 계룡시 엄사면에 거주하고 있는 정규헌 씨가 1930년께 유명한 강독사였던 부친 정백석 씨로부터 고담소설 읽는 법을 전수받아 활동하고 있다. 2008년 2월 29일 ‘충남도 무형문화재 제39호’로 지정됐다.
이야기꾼은 담화조로 구수하게 이야기 하는 ‘강담사’와 이야기를 소리와 아니리로 구연하는 ‘강창사’, 고담책을 이야기 분위기에 어울리는 소리로 읽어주는 ‘강독사’로 구분한다. 강독사는 음향기기가 발달하지 않던 시절 고담소설들을 음악성을 가미해 지루하지 않고 재미있게 읽어주는 사람이다. 특히 조선시대 소설의 발달과 깊은 관련이 있으며, 18세기에 ‘세책방’이 나타나 소설의 상품화가 시작되며 글을 모르는 이른바 ‘듣는 독자’를 위해 강독 활동을 했다. 전국적으로 강독사의 활동이 드문 상황 속에서 정규헌 씨가 충청지역에서 전승활동을 지속적으로 하고 있어 큰 의의를 지닌다.
최근 계룡시에서는 정규헌 씨의 후계자가 없을 시를 대비해 전통 문화유산의 명맥을 잇기 위해 음성과 영상을 CD에 담아 영구 보존하기로 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
이슈포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