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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문 속의 신문/ 홍성군농업기술센터 홍성군귀농지원연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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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문 속의 신문/ 홍성군농업기술센터 홍성군귀농지원연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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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2.09.11 1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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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농연구회, 횡성과 원주서 협동조합을 고민하다

● 발행인 : 손미승 ● 편집인 : 오필승

지난달 29일 하계연찬회 가져
귀농·귀촌사업 성공 지원 다짐

홍성군농업기술센터(소장 전용완) 홍성군귀농지원연구회(회장 손미승·사무국장 오필승)는 2012년 UN이 정한 협동조합의 해를 맞이하여 지난달 29일 거북이마을에서 하계연찬회를 가졌다. 연찬회 개회식에는 홍성군 김석환 군수가 참석 격려사를 해주었다.
베이비부머 세대의 귀농, 귀촌 행렬이 이어지는 시대를 맞아 먼저 귀농한 선배 귀농인들이 앞장서 안내와 멘토 역할을 잘 해 주고 열심히 일하는 만큼 도시민유치를 위한 귀농, 귀촌사업에 적극적인 지원을 약속했다.
이어 주제(사회적경제와 협동조합) 강사로 충남발전연구원 김종수 책임연구원의 강의와 종합토론, 회원 및 근황소개 어울림의 시간을 가졌다.
9월 4일에는 협동조합운동이 잘되고 있는 원주와 꾸러미공동체가 성공한 언니네 텃밭 횡성군여성농민회 선진지 견학을 하기로 하고, 오전 8시30분 출발해 강원도 횡성 언니네 텃밭과 원주 한 살림을 방문했다.
한살림에 대한 안내를 받고, 무위당 장일순 선생 기념관을 둘러보고, 원주 밝음신협 회의실에서 원주협동사회경제네트워크, 원주푸드 물류협동조합에 대해 강사들의 강의를 통해 원주협동조합과 원주 로컬푸드운동에 대한 것을 듣고 배울 수 있었다. 하루 일정을 마치고 홍성군농업기술센터에 도착하니 오후 10시30분이었다.
원주협동조합운동의 메카라고 불릴만한 역사와 다양한 경험이 강의를 통해서 느껴졌다.
또한 횡성꾸러미공동체의 공동체적인 배려와 분화 발전의 모범사례가 될 만한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배울 것이 많았다.
그렇다고 홍성에서 바로 협동조합이 시작될 수 있겠다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우리 홍성의 귀농자들은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다. 그러나 한 지역을 벗어나지 못한 역사가 오래되었고 그것을 뛰어 넘지를 못하고 있다.
이를 위해서는 자기를 비우고 지역을 고집하지 않고 의도적으로 여러 읍면지역으로 들어가 새로운 역사를 만들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홍성은 지역주의 한계에서 벗어나지 못하게 될 것이다.
귀농지원연구회도 마찬가지다. 홍성에서는 구항이나 서부 등 하나의 지역을 전략지로 세워 새로운 모델을 만들어야 할 것이다.
회원들이 협동하고 공동체적인 관심이 지역을 넘어 절실한 필요를 얼마나 느끼는가가 협동조합의 시작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요인일 것이다.

횡성 언니네 텃밭(횡성군여성농민회 꾸러미공동체)

비가 간간이 뿌리는 날씨에 횡성, 원주 방문의 첫 번째 코스로 요즘 한창 뜨고 있는 꾸러미사업을 맨 처음 시작했다는 언니네 텃밭을 방문했다.
홍성군귀농지원연구회 회원들도 지금 여러 농가에서 꾸러미사업을 하고 있고, 또 새로이 시작을 준비하기도 하여 매우 관심이 높다.
제철꾸러미란 친환경재배 방식의 안전한 농산물을 월 정액제에 가입한 도시회원들에게 격주, 또는 매주 7가지 내외의 농산물과 두부, 계란, 장류, 반찬류 등을 별도의 주문없이 포장하여 배송하는 방식이다.
신선하고 안전한 제철농산물을 저렴한 가격에 다양하게 가정에서 직접 받아볼 수 있다는 장점으로 요즘 주부들에게 큰 호응을 얻고 있다.
우리가 방문한 날은 마침 꾸러미 포장 배송하는 날이라서 무척 바빴을 텐데도 관계자분들께서 친절하고 열정적으로 언니네 텃밭을 소개하고 설명해주셔서 매우 인상적이었다.
언니네 텃밭은 전국여성농민회가 2009년에 시작한 사업으로 전국 각지에 15개 공동체가 있고, 그 중 우리가 방문한 횡성은 횡성공동체 1개로 시작해서 지금은 오산공동체, 도새울공동체까지 3개의 공동체로 확대되었다.
일손이 부족한 농촌에서 일일이 호미로 풀을 제거하는 일은 보통 힘이 들지 않지만 제초제만이라도 치지 않도록 설득하는 것으로 시작하여 지금은 화학비료, 농약없이 친환경으로 재배하는 면적을 조금씩 넓혀가고 있다.
이렇게 언니네 텃밭은 안전한 먹거리 생산을 위한 좋은 땅, 깨끗한 농촌환경을 되살리는 운동이기도 하다.
여성농민들은 자그마한 텃밭을 손수 일궈 재배한 농산물을 적정한 가격에 판매할 수 있어서 좋고, 소비자는 우리 땅에서 제철에 난 다양한 먹거리를 만날 수 있어 더욱 좋은 것 같다.
도시회원들은 1년에 최소 1번 이상은 농촌체험에 참가하도록 되어 있는데 이런 농촌체험을 통해 우리 농촌에 대한 이해도 높이고 농민들과 교류소통하고 우리농산물에 대한 애정도 더욱 깊어진다.
우리나라 식량자급률은 쌀 포함해 25%가 안되는데, 친환경제철꾸러미의 생산과 소비의 확대로 우리나라 식량주권의 회복에 한 몫 하지 않을까 기대해 본다.
<진창희 회원> 

▲ 무위당 장일순 선생의 모습.
▲ 무위당 장일순 기념관을 손미승 회장이 둘러보고 있다.
‘무위당 기념관’ … 전시장 가득 메운 장일순 선생의 삶

 
무위당 기념관은 무위당 장일순 선생의 살아생전의 삶 만큼이나 작고 소박했다. 밝음신협과 원주시내의 이런저런 협동조합들 사무실이 한 곳에 위치한 ‘밝음의 집’ 건물 내 4층 한켠에 위치해 있었다. 둘러보는 시간이 원주협동사회경제 네트워크를 방문하기 전 10여분밖에 주어지지 않아 자세하게 볼 여유가 없었지만 강렬한 인상을 주기엔 충분하였다.
기념관은 무위당 선생이 생전에 사용하시던 집무실과 전시공간의 두 칸으로 마련돼 있었다. 기념관을 들어서면 기념관 팻말이 있고 그 아래 방명록과 안내책자들이 놓인 책상이 놓여있으며, 그 오른쪽으로 집무실이 있다. 집무책상 옆 창문엔 장일순 선생의 그윽하게 미소짓고 있는 사진이 크게 걸려있었는데 마치 지금도 그 자리에 앉아 계셔서 방문객들을 맞이하고 계신 것 같았다.
전시실은 선생이 살아생전에 그리셨던 서예화와 ‘얼굴난’으로 알려려진 난초화집, 개인 집기들과 책자들(선생은 당시 독재정권의 빌미가 되지 않기 위해 글을 거의 남기시지 않아 구술하신 것을 후학들이 정리한 것이 대부분임)이 전시돼 있었다. 무위당 기념관은 오늘날 우리나라의 협동경제사회의 모범적인 사례를 보여주고 있는 원주에서 심장과도 같은 역할을 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무위당 장일순 선생은 1928년 원주서 태어나 1994년 원주시 봉산동 자택에서 67세를 일기로 영면하기까지, 서울에서의 유학기간(서울대 미학과 중퇴)과 5·16군사정변 직후 사상범으로 춘천형무소에서 3년간 옥고를 치른 기간을 제외하고는 평생 고향땅 원주를 떠난 적이 없었다. 생애의 거의 대부분을 원주라는 작은 지방도시의 경계를 벗어나지 않았으면서도 언제나 시대의 정치 사회 변혁의 중심에 서 있었다.
선생은 1954년 대성학원(대성중 고등학교)을 설립하신 교육자이고, 사람의 얼굴을 담아낸 난초 그림으로 유명한 서화가이기도 하시다. 1966년 강원 최초로 원주신용협동조합을 창립하였으며, 1971년 지학순 주교와 함께 반독재 민주화 투쟁을 주도하기도 하였다. 이후 1977년 지금까지 해오던 노동운동과 농민운동을 공생의 논리에 입각한 생명운동으로 전환하여, 1985년 도농직거래 조직인, <원주소비자협동조합>을 창립하고 생명살림, 농업살림, 밥상살림의 한살림운동을 본격적으로 전개하기 시작하여 오늘날 원주가 협동경제사회의 모태가 되게 하였다.
사실 홍성에도 그에 못지않은 뿌리가 있다. 이찬갑과 주옥로 선생이 그들이다. 선생들은 1958년 홍동에 풀무학교를 설립하고, 이듬해 풀무협동조합을 발족시켰다. 이후 1969년 풀무소비조합이 발족하게 되었고 1972년에는 풀무신용협동조합이 창립되었다. 이후 작은 협동조합들이 여럿 생겨났고, 1977년도 오리농업이 도입된 이래 유기농업의 메카로 자리잡았다. 다만 원주와 차이가 있다면 원주는 시 차원에서 사회운동차원에서 시작되어진 반면, 홍성은 홍동면 일대에 국한되어서 농업농촌 마을만들기차원에서 이루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이제 원주에서 다시 길을 묻는다. 이 이기적인 자본주의사회에서 협동경제사회로 가는 길은 어떤 것인가?
그 해답을 소설가 김성동씨가 밝힌 장일순 선생의 말씀에서 찾을 수 있지 않을까 한다. “모시고 섬기라고 하셨다. 돈을 모시지 말고 생명을 모시고 쇠 물레를 섬기지 말고 흙을 섬기며, 눈에 보이는 겉껍데기를 모시지 말고 그 속에 들어 알짜로 값진 것을 모시고 섬길 때만이 마침내 새로운 누리가 열릴 수 있다”고 선생은 말씀하셨다.
<강경안 운영위원>

▲ 원주협동사회네트워크에 대해 설명하는 김선기 사무국장.
원주협동사회경제네트워크

▲ 신협, 의료생협, 사회적기업 등 다양한 단체가 모여 있는 ‘밝음신협’ 건물
원주지역의 협동조합, 사회적기업, 공동체운동기관 등 19개 회원단체로 이루어진 <원주협동사회경제네트워크>는 ‘사회적경제조직간의 협동’을 구체화하기 위하여 상호출자, 협동카드, 협동적 내부시장 형성, 공동교육 등의 상호부조 시스템을 구축하면서 원주지역의 사회적경제를 블록화하는데 역점을 두고 있다. 그리고 궁극적으로는 무위당 장일순 선생이 강조한 ‘스스로 보호할 수 있는 사회’로 나아가는데 그 목적을 갖고 있다.
현재, 19개 회원 단체 전체 종사자는 460여 명이고, 조합원 및 회원 수를 합하면 원주 전체 인구의 10%인 3만 5000여 명(중복회원 포함)에 이르고 있으며, 네트워크는 조합원 수 및 매출액을 기준으로 조직마다 차등으로 적용되는 회비로 각종 사업을 운영하고 있다. 지역 공동체모델로서 <원주협동사회경제네트워크>는 진행형이다.
이탈리아의 트렌토협동조합처럼 되기에는 원주는 아직도 멀고 먼 이야기이지만, 한 단계, 한 단계 밟아간다면 우리 세대는 아니어도 다음 세대는 좀 더 행복한 삶을 영위할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을 갖고 있다.
<이동근 홍성사회경제네트워크 사무국장>

원주푸드물류 사회적협동조합 설립 가시화

박수영 국장으로부터 원주시 농산물 생산과 유통현황, 그리고 향후 계획을 들었다.
현재의 불합리한 생산과 유통조직을 로컬푸드 개념에 기초한 새로운 지역농업으로 재 조직화하여 지역내부 유통구조로 바꾸려는 원주푸드물류 사회적협동조합 설립을 목표로 움직이고 있었다.
오는 10월에는 지금까지 모아진 구상에 대한 평가회가 예정되어 있으며 그 평가를 기초로 그 다음계획까지 착실히 준비되고 있었다.
미래는 준비하는 자의 것이라 했다. 원주시에는 협동조합의 이념으로 새로운 원주를 만들려는 사람들이 미래를 준비하고 있었다.

‘개똥같은 내일이야 꿈 아닌들 안 오리오마는
조개속 보드라운 살 바늘에 찔린듯한 상처에서
저도 몰래 남도 몰래 자라는
진주 같은 꿈으로 잉태된 내일이야
꿈 아니곤 오는 법이 없다네.‘
- 문익환 선생의 시 “꿈을 비는 마음”중에서 -
<주정민 운영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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