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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남도 무형문화재들 한자리서 공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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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남도 무형문화재들 한자리서 공연
  • 전상진 기자
  • 승인 2012.09.04 10:3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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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16일 홍주성 일원

제1회 충남도 무형문화재 합동공연이 9월 14일부터 16일까지 홍주성 일원에서 제8회 홍성내포문화축제와 함께 흥겨운 잔치마당을 펼친다.

충남도와 홍성군이 마련하는 이번 무형문화재 합동공연은 사라져가는 충남 전통민속 및 풍습을 보존 계승하고, 자라는 청소년들에게 충남 무형문화재의 가치를 일깨워주기 위한 것이다. 그리고 홍성내포문화축제를 방문하는 손님들에게 다양하고 풍성한 볼거리를 제공하기 위해서이다. 이에 본지는 이번 홍성내포문화축제 기간 중 펼쳐지는 충남도 무형문화재들을 지난호에 이어 소개한다.

 
태안 황도붕기풍어제(도 무형문화재 제12호)

황도붕기풍어제는 태안군 안면읍 황도리에서 마을의 안녕과 풍어를 기원하기 위해 지내는 마을 제사이다. 이 제사는 지난 1991년 7월 9일에 ‘충남도 무형문화재 제12호’로 지정됐다.

황도붕기풍어제는 전국민속예술경연대회에 참가하면서 ‘붕기풍어놀이’로 알려지기도 했지만 본래는 충남 서북부 해안지역에 흔한 당제이다.

황도는 전형적인 섬 어촌마을로 인근에서 가장 많이 풍선(바람으로 움직이는 배)을 부렸기에 배 사업의 원고장이라는 별칭을 얻기도 했다. 한편 다른 마을에 비해 소득이 높아 황도를 ‘황금도(黃金島)’라고도 불렀다. 풍선을 부리던 시절에 만선을 하면 배에 대나무를 잘라서 장식한 붕기를 달고 섬으로 돌아온다.
배가 물에 잠길 정도로 고기를 많이 잡았을 때 사용하는 붕기는 만선의 상징으로 모든 어부의 희망을 담고 있다. 풍어를 희망하기에 당제를 붕기풍어제라고도 부른다.

불규칙적이며 험준한 바다를 대상으로 생활해야 했던 황도 주민들은 그 어려운 현실을 당제를 통해 극복하고자 해마다 음력 정월 초이튿날부터 초사흗날까지 당제를 베푼다. 마을주민들이 주축이 돼 베푸는 당제만 거행했으나, 풍선을 이용한 어업이 번성하면서부터는 선주들이 나서서 당굿을 추가했다.

당굿은 3~5년에 한 번 무당을 불러 행하다가 지난 1983년부터 지금껏 해마다 베풀고 있다. 2008년까지는 서해안배연신굿의 주무로 활동하는 김금화 무당패가 굿을 연행했으나, 2009년 태안군 무형문화재로 등록된 앉은굿을 행하는 장세일 법사 일행이 굿을 주관하고 있다.

 
서천 저산팔읍 길쌈놀이(도 무형문화재 제13호)

저산팔읍 길쌈놀이는 서천군 한산면 일원에서 전승되는 ‘한산 모시짜기’ 풍속을 저산팔읍 중에서도 특히 서천을 중심으로 여섯 마당으로 재구성해 만든 놀이이다. 지난 1991년 7월 9일 ‘충남도 무형문화재 제13호’로 지정됐다.

예전에는 음력 7월에서 8월 중순까지 일정한 장소에 모여 공동으로 길쌈을 했으며, ‘두레길쌈’이라고 해 서로 겨루기보다는 함께 돕는 품앗이 같은 두레의 성격이 짙다.

길쌈놀이는 모시를 베어다 모시베끼기, 모시삼기, 모시꾸리감기, 모시날기, 모시매기, 모시짜기 등으로 이어지는 일련의 과정을 노래와 행위로 표현하고 있다. 노래는 민요풍으로 여인네의 애환과 체념, 그리움 등의 내용을 담고 있다. 또 저산팔읍을 예찬하는 노래에 맞춰 흥겹게 춤추면서 농사의 고달픔을 잊고, 이웃과 화합을 꾀하며 협동을 다진다. 발표가 끝나면 모든 사람들이 원을 그리며 춤을 추고 장원을 차지한 마을을 축하해준다.

오늘날 서천 한산은 전국적으로 유일하게 모시의 명맥을 잇고 있으면서 한산오일장에서 매 5일마다 모시시장이 형성돼 전국 각처에 모시를 공급하고 있다. 한산 모시의 우수성을 널리 보급함은 물론 민속놀이를 보존·계승하고자 모시길쌈놀이를 체계적인 고증과 구성 연출을 통해 ‘저산팔읍 길쌈놀이’를 발굴해 지난 1982년 제23회 전국민속경연대회에서 문화공보부장관상을 수상했고, 1986년에도 충남도 대표로 출전해 국무총리상을 수상한 바 있다. 매년 5월 초 ‘한산모시문화제’ 행사 시 시연을 통해 국내외에 홍보하고 있다.

 
논산 연산백중놀이(도 무형문화재 제14호)

연산백중놀이는 논산시 연산면에서 매년 음력 7월 15일 백중에 전승되는 민속놀이다. 본래 논산시 두마면(계룡시) 왕대리를 중심으로 하는 열두 두레의 ‘합두레먹이’로 전승됐던 놀이인데, 지난 1989년에 연산 백중놀이로 새롭게 복원됐다. 또한 1991년 7월 9일 ‘충남도 무형문화재 제14호’로 지정됐다. 기능보유자는 김용근 씨이다.

예로부터 음력 7월 보름날 백중에는 음식을 차려놓고 노래하며 춤추고 놀았다. 백중은 머슴들이 쉬는 날로 ‘머슴날’이라고도 했고, 농촌에서는 백중날 전후에 시장이 섰는데 ‘백중장’이라 했으며, 마을이나 백중장에서는 씨름 등 민속놀이가 펼쳐졌다.

연산면 일대에서는 조선 성종 때 좌의정을 지낸 김국광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그의 생가가 있던 왕대리와 근처 마을에서 농사일이 끝나는 백중에 김국광의 묘에 참배한 뒤 두계천에 모여 축제를 벌였다. 그 뒤 광산김씨들이 연산 일대로 옮겨 살면서 백중날 연산 장터에 모여 놀이를 즐겼으며, 한창 성행할 때는 전국의 한량들이 모여들었다.

백중놀이는 쌍룡기와 용기를 가진 동리로 각각 나누어 놀이마당으로 들어오는 길놀이로 시작해 기싸움을 벌인다. 기싸움이 끝난 뒤 용기 집단이 쌍룡기에게 기세배를 올리고 농신제를 지낸다. 또 상벌마당으로 마을의 효부, 효자에게 상을 주고 불효자에게는 벌을 줬으며, 농사를 잘 지은 머슴을 뽑아 표창했다. 상을 받은 머슴을 가마에 태워 머슴놀이를 한 다음 수상쇠의 인솔로 풍물이 앞장서고 기 주위를 돌며 춤을 추는 뒤풀이로 끝난다.

조선시대부터 시작된 연산 일대의 백중놀이는 일제강점기에도 계속됐는데, 1940년 무렵 중단됐다가 1989년에 재현했다. 특히 연산의 백중놀이는 효자, 효부와 머슴을 표창하고 불효자는 징벌해 충효와 근면을 강조한 민속놀이다. 1990년 10월 전국민속예술경연대회에서 국무총리상을 받았다.

 
금산 농바우끄시기(도 무형문화재 제32호)

농바우끄시기는 금산군 부리면 어재리에 있는 농바우를 대상으로 비를 기원하는 여성 기우제의 하나. ‘끄시기’는 ‘끌다’의 금산 지역 사투리로, 농바우끄시기는 농처럼 생긴 바위에 동아줄을 걸고 끌어내린다는 뜻을 담고 있다. 지난 2000년 9월 20일 ‘충남도 무형문화재 제32호’로 지정됐다.

농바우끄시기가 언제 시작되었는지 역사를 분명하게 파악하기는 어렵다. 다만 주변에 파다하게 퍼져 있는 전설에 따르면 수백 년 전부터 날이 가물면 부녀자들이 농바우에 동아줄을 걸어 놓고 비를 기원했다고 한다.

농바우에는 장수 또는 임금님의 갑옷이 들어 있다고 전해지며, 이 바위가 굴러 떨어지는 날 천지개벽이 이루어진다는 속설이 전한다.

놀이의 본 행사는 30대 이상 부인들이 주도하고 남자들은 행사에 필요한 물건을 만들거나 나르는 정도의 제한된 일만 한다.

농바우 아래 계곡물에 여인네들이 알몸으로 떼 지어 들어가 바가지로 물을 퍼 끼얹으며 물장난을 치고 놀면 이를 본 하늘이 비를 내려준다는 믿음에서 비롯됐다.

놀이는 비를 기원하며 병에 소나무 가지를 꽂아 거꾸로 매다는 물병매기, 집집마다 추렴한 짚으로 지름 20㎝, 길이 200m의 동앗줄을 꼬아 농바우에 거는 용줄매기, 마을 아낙들이 농바우에 도착해 비오기를 기원하는 산제, 농바우 아래 계곡물에 아낙들이 옷을 벗고 떼 지어 들어가 키로 물을 까부는 날궂이 등으로 구성된다.


풍물에 따라 신명나게 노는 풍장굿과 마마굿으로 마무리하는데, 줄을 걸고 농바우를 끄실 때 선소리꾼이 농바우에 올라 구성지게 소리를 매기면, 바위 건너편 언덕에서 양쪽으로 길게 줄을 잡은 아낙들이 이쪽저쪽 번갈아가며 농바우를 끄실고 이 농바우가 굴러 떨어지기 전에 비가 내린다는 것이다.

금산의 농바우끄시기는 다른 기우제와는 달리 상황이 사람의 목숨이 위태로울 지경에까지 이르지 않으면 좀처럼 하지 않는 것이 관례였다.

실제로 이 지방에서 농바우를 끄신 행사는 네댓 번에 지나지 않았다고 한다.

왜냐하면 천지를 개벽시켜서 비를 내리게 하는 행위는 자연 법칙에 위배되기 때문이다. 이 마을에서 농바우를 끄신 일은 지난 1992년이 마지막이다.

 
금산 물페기농요(도 무형문화재 제16호)

물페기농요는 금산군 부리면 평촌리를 중심으로 벌말, 물페기, 동기 절골 등에서 300여 년 전부터 농민들이 두레 농사를 지으며 부르던 구전농요이다.

전승되는 지역이 소백산맥과 노령산맥의 분기점에 있기 때문에 평야지대의 소리와 산악지대의 소리가 결합된 처연하면서도 힘차고 음색이 담백하다.

금강 상류의 평촌리 물페기 마을은 비가 조금만 오면 물에 잠겨 ‘물페기’라 하였다고 한다.

물페기 농요는 농사 시작부터 끝까지의 과정을 노래와 동작으로 표현한 이 마을의 농요로 지난 1992년 8월 17일 충남도무형문화재 제16호로 지정됐다.

물페기 농요는 토신고사, 모심는 소리, 두렁밟기, 얼카이산이야 소리, 긴방아 소리, 잦은방아소리, 쌈싸는 소리, 장원놀이 순으로 구성된다.

모심는 소리인 모노래는 매우 유장하면서 힘찬 메나리조로 불려지고, 논을 멜 때 부르는 얼카이산이야 소리와 방아소리는 입타령으로 끝을 맺으며 백미를 이룬다.

금산 물페기농요는 평야지대와 산악지대의 소리가 결합된 독특한 구조를 가지고 있다. 지난 1991년 제32회 전국민속경연대회에서 국무총리상을 수상했으며, 금산군 부리면에 살고 있는 예능보유자 양승환 씨가 그 맥을 이어가고 있다.

 
청양 정산동화제(도 무형문화재 제9호)

정산동화제는 청양군 정산면 송학리에서 해마다 음력 정월 열 나흗날 저녁에 동화대에 불을 놓아 마을의 안녕을 기원하는 의례이다.

거대한 화목을 불사르는 행위로 마을에 깃든 액운과 재앙을 소멸한다는 상징성을 띠는 동화는 ‘동네불’이란 뜻을 지니고 있으며, 달집태우기와는 구분된다.

정산동화제는 임진왜란 때 왜적의 침입을 막기 위해 행하던 화전(火戰)에서 비롯됐다. 칠갑산을 중심으로 정산면 일대에서 행해졌으나, 일제강점기 때 중단됐다가 1987년 정산면 송학리에서 발굴해 민속놀이로 정착됐다. 지난 1989년 12월 29일 ‘충남도무형문화재 제9호’로 지정됐다. 기능보유자는 오영범 씨이다.

해마다 음력 정월 14일 마을사람들이 목욕재계한 다음 산에 올라가 나무를 베어 와서 동아줄로 동화대를 세운다. 달이 뜨면 신에게 제사지내면서 국태민안과 그해의 풍년을 기원하며 부정한 것을 불에 태워 액을 제거하고 평안을 빈다.

이때 동화가 넘어지는 쪽으로 마을의 재액과 질환이 든다고 믿었다. 제사를 마치면 주민들은 대동단결을 다짐하며 이웃마을과 쥐불놀이를 하면서 하룻밤을 지새운다.

소원을 담은 나무타령, 지게춤 등의 놀이를 통해 촌락의 강인한 공동체 정신을 구현하는 것이 특징이다.
동아줄을 만들면서 부르는 노래, 축문을 읽을 때의 노래, 지게가마타기와 휘장돌기하면서 부르는 노래 등이 전하는데 전통민요의 발굴 및 보존 측면에서 큰 수확이다.

놀이는 입장, 동화대 만들기, 제사, 놀이, 퇴장의 순서로 진행된다. 입장은 흥겨운 농악과 함께 용대기·농기·영기·오방기 등을 앞세우며 제관과 제물을 머리에 인 아낙네와 주민들이 나무를 한 짐씩 지고 등장한다.

동화대 만들기는 지게에 지고온 나무들을 모아 선소리에 맞추어 동아줄로 묶어 동화대를 만든다. 동화대가 완성되면 넘어지지 않도록 받침나무로 고정시킨다.

제사는 달이 떠오르면 횃불로 동화대 윗부분에 불을 올린 후 제사지낸다. 놀이는 춤을 추며 1년 내내 좋은 일만 있게 해달라고 마음속으로 빌며 여러 놀이를 하는데, 지게가마타기·지게타기·휘장돌기 등을 한다. 청양 정산동화제는 제29회 전국민속예술경연대회에 출전해 문화공보부 장관상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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