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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기고/ 이환의<이반교육농장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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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기고/ 이환의<이반교육농장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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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2.09.04 09: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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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촌문제에 관심높은 안철수를 만났습니다”

▲ 이환의<이반교육농장 대표>
지난달 29일 저녁 무렵 옆 마을에 오리농법 전도사로 유명한 주형로 님의 전화를 받았습니다. “내일 대선 후보 중 한 사람이 마을에 오니 이야기 자리에 참여해 달라”는 요청이었습니다.

제가 누구냐고 묻자 ‘내일 와보면 안다’고 하더군요. 순간 머릿속에 여러 사람들의 모습이 지나갔지만 더 이상 묻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오늘 아침 이웃마을에 가니 벽면에 <안철수 원장님의 방문을 환영합니다>란 ppt 화면이 떠 있더군요. 그제야 사람들이 유력한 대선 예비후보라 부르는 안철수 원장이 오는 줄 알게 되었습니다. 과거 지방선거때 충남지사 안희정 후보가 동네에 왔을 때는 상황이 안돼 못 뵀지만 이번에는 열일을 제쳐두고 가리라 마음먹은 터였습니다.

도지사든 대통령 예비 후보든 불과 두 세 시간 안팎의 짧은 만남에서 농촌 현실을 온전히 전하는 일은 불가능하겠지만 그래도 농촌을 배우고 알고 싶어 하는 이에게는 작은 도움이라도 되겠지요. 마침 참석한 여성 농민 중 한 분이 마치 정치부 기자처럼 대선 출마여부를 비롯한 민감한(?) 질문을 던졌습니다. 그때 돌아온 답은 ‘기자들이 자리하지 않은 편안한 자리에서 농민들로부터 직접 농촌 얘기를 듣고 싶어서’였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아마도 정제되거나 걸러지지 않은, 다소 거칠어도 상관없는 있는 그대로의 목소리와 속마음을 들으러 오셨겠지요.

오는 길목이 마침 태풍이 집중적으로 할퀴고 간 서해안 농촌지역이어서 느낌이 남달랐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그렇잖아도 ‘장인께서 농사를 짓는데 이번 태풍에 하우스가 피해를 입었는데 가보지도 못한다’고 안타까워 하시네요.

참석한 이들의 면면이 모두 다른지라 여러 이야기들이 오고갔습니다. 농사이야기에서 농촌형 사회적기업의 어려움, 베이비부머의 귀농·귀촌 문제, 친환경농업, 농가가공과 과도한 법적규제, 체험마을 운영 개선방안 등등 지금 우리 농촌이 당면하고 있는 어려움들이 쏟아져 나왔습니다. 저도 과거 귀농·귀촌 지원제도의 문제점과 나름대로의 대안 등을 제시했지요. 끝으로 “대통령이 되든 안되든 이번 계기에 농촌과 접촉하셨으니 농촌의 어려움을 잊지 말아주세요”라며 특별히 당부드렸습니다.

토론회 후 다른 약속이 있어 지역 돌아보기와 점심은 함께 하지 못했지만 안철수 원장과의 만남은 이번이 처음입니다. 안철수 원장을 만난 느낌은 뉴스에서, TV 프로그램에서 봐왔던 그 모습 그대로 편안했습니다. 과거 만난 적은 없지만 대통령에서 농부로 변신한 고 노무현 전대통령의 얼굴에서 묻어나오는 이미지와 비슷했습니다. 또 지금까지의 행보는 ‘국민이 불러낸 것이기에 그 요청에 스스로가 맞는 사람인지 아닌지 엄중히 검증하기 위해서’라 하였습니다.

각계각층의 많은 분들을 만나 이면의 진솔한 이야기를 들으면서 자신이 그들의 요구에 ‘적합한 이인지 아닌지’ 엄격하게 판단하겠다는 뜻이겠지요. 제가 굳이 ‘자연인 안철수’를 거론한 것은 그이가 더욱 깊게 만나야 할 이는 다른 사람과의 만남 후에 찾아오는 또 다른 자신이기 때문입니다. 다른 사람을 만나면서 동시에 스스로를 깊이 만나야 할 안철수 원장은 그래서 할 일이 많은 분입니다.

그래도 참 신선합니다. 그간 저명하신 분들, 특히 무언가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뛰는 분들을 만났지만 비슷한 이야기를 들은 적이 없습니다. 우리 유권자가 원하는 것은 화려한 공약이나 자기자랑이 아닌, 어렵게 말해 ‘철학’이고 시쳇말로 ‘개념’있는 모습일 겁니다. 저는 진정으로 개념있는 정치인, 개념있게 행동하는 지도자들을 만나고 싶습니다.

안철수 원장은 아직 대선후보가 아닙니다. 어제 그이의 말대로 곧 입장을 밝힐 시기가 다가오겠지요. 솔직히 저는 안철수 원장이 대선에 출마했으면 좋겠습니다. 국민의 한 사람으로 요청하고 싶습니다. 하지만 대통령이 되지 않아도 상관없습니다. 선거는 할 수 있는 한 이기는 것이 선(善)이겠지만 정말 당락을 떠나 <위법이나 탈법을 하지 않고 정정당당하게 승부하는> 깨끗한 후보를 만나고 싶습니다. 만약 출마한다면 선거후 저를 비롯한 국민 대다수가 ‘선거과정도 안철수답다’고 고개를 끄덕였으면 합니다.

과거의 선거판이 진흙탕에서 적에게 최대한 오물을 묻힌 뒤 상대적으로 깨끗한 자신을 돋보여서 유권자의 선택을 받는 ‘상대성의 원리’가 적용되는 공간이었다면, 오는 12월에 치러질 대선은 문자그대로 ‘큰 인물을 선택하는 자리, 혹은 큰 선택을 하는’ 국가적 행사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대선을 통해 나라와 민족의 장래를 걸머지겠다는 헛구호가 아니라 이미 서울시장 선거에서 보여준 것처럼 다른 이들이 ‘따르고 싶은 모델’로 자리매김 했으면 합니다. 우리에게 정말 부족한 것은 우리보다 앞선 이입니다. 우리보다 더 넓고 깊은 세계를 가진 이입니다. 따르고 싶은 모범사례입니다.

검증이랍시고 드라마 추격자보다 더 치밀한 전략으로 포장하고, 상대를 깎아내려야 내가 사는 선거와 정치구도가 생활화된 멘붕사회에서 부패와 불신의 바이러스를 퇴치할 누군가가 등장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꼭 승리자의 모습이 아니어도 좋습니다. 더러운 승리보다 깨끗한 패배라는 말을 책속에서가 아닌 현실 정치에서 만나보고 싶습니다. 올 12월 대한민국에서 진정한 선거혁명이 일어났으면 정말 좋겠습니다.
일국의 대통령이 퇴임 후 저와 같은 농부로 변신하는 모습을 참아내지 못하고, 나의 그릇과 사람됨을 깊이 만나지 않고 유권자들과 악수하기 바쁜 후보들, 사람들이 자신을 원하는지 아닌지 주제파악도 못한 채 스스로를 높이는 이들을 우리는 그간 너무나 자주 봐왔던 까닭에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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