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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포신도시 원주민 방담/ 고향을 떠나게 된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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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포신도시 원주민 방담/ 고향을 떠나게 된 사람들
  • 안현경 기자
  • 승인 2012.08.21 11:0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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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파트가 아무리 편해도 고향집만 하겄슈?”

▲ 덕산면 아파트 경로당에서만난 신도시 원주민들.
내포신도시 도청 이전을 위해 자의 반 타의 반으로 고향 땅을 내어 준 사람들. 다른 삶터를 찾아 뿔뿔이 흩어진 내포신도시 원주민들의 진솔한 이야기를 들어봤다. <편집자 주>

4년 전 지어진 덕산면 읍내리의 써니밸리아파트에는 내포신도시를 건설 중인 삽교읍 목리와 신리 사람들이 모여 산다. 농사짓고 살던 땅을 팔고 저마다 보상금을 받고 나왔던 이들 가운데는 전원주택으로 이사 가거나 자식을 따라 멀리 떠난 사람도 있지만 예산군 삽교읍 목리, 신리 사람들의 40%는 내포신도시에서 가까운 덕산면의 이곳으로 모였다. 홍성군 홍북면 신경리 출신 사람도 몇몇 눈에 띄었다.

나이든 농부였던 이들은 이제 오후 3~4시가 되면 아파트 1동에 마련된 경로당으로 모이는 것이 하루의 중요 일과다.

삽교읍 목리·신리 주민들

20일 오후 경로당 거실에는 할아버지들이 모여 텔레비전을 보거나 화투를 치고, 안방에는 할머니들이 모여 아파트 단지 안에 사람들이 오가는 것을 본다. 오늘은 어느 집 할머니가 수덕사에서 시루떡을 얻어왔다며 나눠먹는다. 창밖은 살벌한 비바람이 불지만 서로 떡을 권하는 집안 풍경은 여느 마을 경로당처럼 정겹다,

“예전 같았으면 매(시간) 치구(치우고), 바쁠 땐디 이렇게 노는 게 일이니 얼마나 편해.” 50년 동안 목리에 살았던 70대 중반의 이 할머니가 웃음기 가득한 눈매로 너털웃음을 짓는다.

“아파트가 편하긴 편하지. 복도까지 청소해 주고 나는 집에서 방만 쓱쓱 닦으면 그만이니께. 조금 살면 남는 장산디, 오래 살까봐 걱정이지.” 이 할머니는 땅을 평당 17만 원씩 보상받고 나왔는데 아파트 관리비만 매달 17만 원이라며 “있는 돈을 깎아먹고 사는 거니 오래 살까봐 걱정인 거여” 한다.

“잔댕이에 농사 지을까?”

그래도 할머니들이 나누는 이야기는 농삿일 이야기가 반이다. 이젠 아파트가 아닌 데서는 살지 못하겠다는 신경리 출신 할머니가 “덕산장에 나갔더니 그렇게 나더러 김장용 파씨를 사라는겨. 그걸 워디다 심나. 내 잔댕이(등)에다 심으까?” 하고 웃었다.

고운 얼굴의 조 할머니는 “그래도 고향이 좋지. 신문에다 택지 싸게 분양해 주면 다 들어간다고 써. 그 말만 딱 써” 했다. 돌아간 고향의 모습이 예전과 전혀 다를 걸 알면서도 “그냥 고향이니까 돌아가고 싶다”고 잘라 이야기한다.

마을 역사와 한자에 해박한 이봉규 할아버지가 마을 지명을 이야기해 주신다.

“목리에 있는 마을이 높을 ‘뫼’에 터 ‘기’. 정3품의 높은 사람이 살았던 터라고 해서 붙인 이름이 뫼기마을이야. 목리도 원래 목욕을 많이 하고 갔다고 조선시대까지 ‘목욕리’였는데 일제 때 줄여서 목리가 된 거야.”

옛 마을이름도 사라지지 않겠느냐는 물음에 할아버지들은 “쫓겨나온 사람들인데 말해 뭣혀” 한다.

이장 일을 맡아 오던 이수웅 어르신은 “조상께 제사를 지내던 제청도 선산도 다 팔았고 대대손손 살던 곳을 잃었는데 그럼 쫓겨났지 뭐라 그러나?”고 말한다.

한 어르신이 “다 지어지면 다시 돌아가겠다는 사람도 꽤 되지만 돈이 문제지. 비싸게 팔구 싸게 사야 남는 장산디 싸게 팔고 비싸게 사라고 하니께 말이 되남?” 다른 어르신이, “이왕 땅 내준거 고향 땅에 좋은 게 들어서야 할 것 아녀. 홍성 땅에는 관공서 건물이다 산업단지다 들어서는데 우리쪽은 공원에 골프장이 뭐여”했다. “홍성이 다 뺏어갈 거여. 내포신문도 홍성·예산 소식을 같게 실어줘야지 홍성소식만 더 실어주면 안되고 말이야.”

그러자 다른 어르신들이 그런 이야기 하지 말라고 말린다. “이제 가. 이런 이야기는 기관단체장들한테 가서 취재해. 여기서 답도 안 나오는 거 뭐 들으려고 그래.”

“그래도 고향으로 돌아가고 싶지”

다들 뿔뿔이 흩어졌지만 여전히 마을 사람들간 소식은 오며 가며 듣게 마련이다.외지로 떠난 사람들도 이곳 아파트 주변을 서성이는 것을 보거나 경로당을 찾는다고 한다. 이수웅 씨는 “음력 칠석이면 마을 경로잔치를 하는데 지금은 보성초에서 해. 전국 각지서 고향사람 한 100명이 모여” 했다.

아파트에 들어온 지 1년 정도 됐다는 박천동 씨는 여전히 고향인 목리를 매일 간다. “봉서초쪽에 아직 밭이 조금 남아 있어서 경운기로 매일 고향을 보러 가지. 빨리 그 쪽에 제대로 된 길이나 만들어 달라고 그래. 비만 오면 길이 진창이 돼서 갈 수가 없어.” 박씨는 신도시가 들어서면 얼른 고향으로 돌아갈 거라고 했다. “집 앞에 누가 사는지도 모르는 아파트에는 못 살겄어. 고향이 좋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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