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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포도청이 있기까지 … 역사적 흐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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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포도청이 있기까지 … 역사적 흐름
  • 전상진 기자
  • 승인 2012.08.21 10: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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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여년만에 변방에서 충남의 새 중심지로

충남도청은 36년간의 공주시대를 거쳐 80년간의 대전시대를 마감하고, 이제 환황해권 시대를 주도할 내포의 중심 홍성·예산으로 이전하면서 그동안 충남의 변방이었던 서북부 내포지역이 마침내 충남의 중심으로 떠오르는 것이다.

충남·북 분리되며 공주도청 30년

▲ 공주청사(1896~1932).
독립신문이 창간된 1896년(고종 33년) 8월 4일, 조선 정부는 인구 수 증가와 행정구분 편의 등을 이유로 전국을 칙령 제36호에 따라 8도제에서 13도제로 나눴다. 그리고 좌·우도를 현재의 행정구획과 같이 남·북도로 고쳤다. 이에 따라 충청도의 상징 도시였던 ‘충주’와 ‘청주’가 속한 지역은 충청북도로 분리됐다.

또한 ‘공홍도’ 또는 ‘홍공도’로 불리워진 충청남도는 당시 ‘공주’와 ‘홍주(지금의 홍성)’가 중심이었다. 이 두 곳 중 백제의 고도이자 충청감영이 있었고, 호서와 호남의 교통·상업 교류의 중심지인 공주에 충남도청을 두었고 14개 군을 관할하게 했다.

하지만 일제강점기 경부선과 호남선 철도가 대전을 통과하고, 대전이 삼남의 교통요충이자 물산집산지로 변모하면서 신흥 상공업도시로 부상하게 됐다. 더욱이 대전은 일본인들이 대거 진출하면서 근대 도시기반을 갖추고 신흥도시로 발전했다.

이와 때를 맞춰 당시 일제강점기 일본은 한반도를 엑스(X)자형의 종관 철도망으로 연결하면서 시정상 편의라는 명분으로 철도가 통과하는 지점에 도청 소재지를 이전시키는 식민지 지배 통치체제를 구축한 것이다.

충남도청 이전은 1929년 조선총독부 야마나시 총독의 독직사건이 여론화되는 과정에서 대전지역 유지들의 도청유치 로비사건이 폭로됐다. 이에 공주지역 유지들은 ‘공주시민회’를 조직해 1930년 11월부터 1931년 3월 초순까지 도청 대전이전 반대운동을 주도했다.

일제 통치편의상 대전으로 이전

▲ 대전 청사(1932~2012).
공주시민회의 본격적인 도청이전 반대운동은 1931년 1월 16일 시민대회에서 “도청이전은 총독정치의 본령에 반하는 것”이라는 내용의 결의문을 채택하고, 충남도청 앞에서 시위를 벌였다. 그리고 대규모 상경 투쟁단을 조직하는 한편 동경제국 의회에까지 진정 활동을 전개했다.

하지만 조선총독부는 분란의 소지를 없애고 도청이전 문제를 매듭지기 위해 ‘공주는 교통이 불편해 행정 중심지로서 적당하지 않다는 것’과 ‘청사가 낡고 협소하여 민중의 편익을 도모하기가 어렵다는 것’ 등의 이유를 들어 1931년 1월 13일 충남도청 대전이전을 기정사실화했다.

공주의 도청이전 반대운동이 무산되자 조선총독부는 1931년 12월 12일 대전 충남도청(현재 대전광역시 중구 선화동 287번지)에서 도청사 상량식을 거행했다. 이듬해 1932년 5월 30일 공사비 35만9000원으로 도청사가 준공됐으며, 6월 17일에는 충남도청을 공주에서 대전으로 이전하는 ‘조선총독부령 제48호’가 정식 공포됐다. 그해 9월 3일부터 이전을 시작해 10월 1일에 충남도청대전축하회를 사흘간에 걸쳐 거행하면서 도청 대전이전이 완료됐다.

충남도청 대전시대는 1932년 공주에서 대전으로 이전 한 뒤 80여 년을 한결같이 그 자리에서 충남 16개 시군을 관할하는 도청으로, 도민들의 삶의 질을 높이는 도청으로 그 역할을 다해 왔다. 충남도청사(2002년 5월 30일 등록문화재 제18호로 지정)도 1932년 5월 일본 건축가에 의해 지어진 뒤 80여 년을 이어왔다.

충남도청이 대전으로 이전한 뒤 일제강점기 1935년 부제 실시와 더불어 대전부로 승격하고 대전군의 나머지 지역이 대덕군이 되면서 충남 대전부로 개편했다. 1948년 대한민국정부 수립 후 부제가 시제로 개편됨에 따라 대전시가 됐다. 대전시는 한국전쟁 후 중부권 중추역할을 담당하는 최대의 행정·교통·상업의 성장거점도시로 부상하면서 충남과 대전시의 분리 논의가 전개됐다.

1989년 1월 대전시 및 대덕군을 통합해 대전직할시로 승격되면서 충청남도는 대전직할시와 분리됐다.

환황해권의 중심 내포서 출항

▲ 내포신도시 청사(2012~).
2006년 2월 마침내 충남도민의 오랜 숙원이었던 충남도청 이전 예정지로 홍성·예산이 확정됐다. 1989년 대전광역시 분리 후 이루어진 충남도민의 꿈이었다.

새로운 충남시대를 이끌어 갈 내포신도시 충남도청 개청이 4~5개월 앞으로 다가왔다. 이제 비로소 ‘공주’와 더불어 충청남도의 중심축의 한 곳인 ‘홍주(홍성·예산 등 내포지역을 포괄한 의미)’에 닻을 내린다. 곧 힘찬 출발을 하기 위해서.

충남 서북부 환황해권 시대의 성장거점도시로 희망찬 충청남도가 돛을 올린다. 충남의 미래를 위해, 충남의 꿈과 희망을 위해 공주에서 대전으로 마침내 ‘내포’에서 출항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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