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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간 특별기고/ 오석민<충남역사문화연구원(충남역사박물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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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간 특별기고/ 오석민<충남역사문화연구원(충남역사박물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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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2.08.13 20: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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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왜란·병자호란도 피해 간 ‘천혜의 낙토’ 내포

▲ 내포로 열리는 포구, 당진 구만포 전경(1956년).
▲ 오석민<충남역사문화연구원(충남역사박물관장)>
옛말에 ‘산은 가르고, 물은 잇는다’는 말이 있다. 높은 산악은 사람들의 교류를 막았고, 물은 물길을 통하여 서로 연결되었기 때문에 나온 말이다. 특히 과거 산악은 물자의 교역에서 절대적인 장애물이었다.

뱃길과 관련해서 볼 때 내포지역은 한양으로 향하는 길목이었다. 고려시대 이후 주요 물산은 개성 또는 한양으로 향하였고, 국가 재정의 근간을 차지했던 삼남의 세곡은 대부분 내포의 바다를 건너 중앙으로 향하였다. 내포 주민들의 기억과는 달리, 마포 또는 인천으로 향했던 발길은 최근의 일만은 아니었던 것이다.

반면 육상도로를 통해 내포로 가는 길은 그리 용이하지 않았다. 큰 하천은 아닐지라도 아산만으로 흘러드는 안성천과 삽교천 등에 막혀 가까운 직선도로는 엄두를 내지 못하였다. 나룻배를 타고 건너는 일도 그리 용이치 않았다. 하천들이 아산만을 향해 부채살처럼 넓게 퍼진 모양의 하구를 형성하였을 뿐더러 조수 간만의 차가 큰 까닭에 갯벌이 넓게 발달하였기 때문이다. 나루터는 썰물 때에도 물에 잠기는 곳을 택하는 법이다. 나룻배를 타기 위해 1㎞가 넘게 갯벌을 가로질러 왕래할 수는 없는 법이다. 그런 까닭에 안성천이나 삽교천 하구의 나루터는 하구보다 어느 정도 떨어진 지점에 설치되었다.

특히 사람 왕래가 많은 나루터는 좀 더 상류에 개설되기 마련이었다. 이 때문에 1979년 삽교천방조제가 완공된 후에도 한참 동안 서울에서 내포로 향하는 버스 노선은 신례원을 경유했다. 이러한 연유로 조선시대 호남으로 향하는 큰 길은 천안의 차령고개를 넘은 후에는 금북정맥의 동쪽의 길을 이용했다. 내포는 호남으로 향하는 도로에 빗겨 있었던 것이다.

내포는 금북정맥의 서쪽에 위치한 지역을 이르는 말이다. 이중환은 택리지에서 내포를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의 피해를 입지 않은 낙토”라 했다. 국가의 주요 도로에서 벗어난 까닭에 외적이 침입하지 않았던 때문이다. 이런 말을 들으면 흔히 풍수지리에서 말하는 승지(勝地)를 떠올리게 될 것이다. 산간오지를 연상시키기 때문이다.

그러나 내포는 다르다. 육상도로를 통해 내륙과 연결되기는 어려웠으나, 바다를 통하면 어느 곳이나 접근이 가능했다. 구만포와 같은 삽교천변의 포구에서도 서울 마포까지 왕래할 수 있었다. 나아가 바다를 통해 중국으로 가는 길도 열려 있었다. 내포의 포구들은 백제시대에는 웅진과 사비성의 전초기지 역할을 했던 선진문물의 창구였다. 곳곳에 산재한 마애불은 그 증거들이다.

최근에는 서양의 새로운 사상도 내포를 통해 유입되었다. 서학이라는 큰 흐름 속에 천주교 사상이 포함되었고, 초기에는 중국을 경유하여 평안도를 통해 우리나라에 유입되었다. 그러나 정부의 금령이 강화되면서, 중국 마카오와 내포를 연결하는 새로운 루트가 개척되었던 것이다. 김대건과 최양업 신부가 모두 내포 출신이었음은 이 때문이다.

그러나 일제강점기를 거치면서 육상교통이 뱃길을 대신하였고, 내포는 말 그대로 서울과 가까운 오지가 되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1960년대 이후 경부고속도로로 대표되는 경부 축을 중심으로 하는 개발전략에 따라 내포지역은 소외지역의 대명사가 되었다.

그러나 21세기로 들어서면서 서해안고속도로가 개통되었고, 중국과의 밀접한 교역으로 그 중요성은 더욱 부각되기 시작하였다. 이런 상황에서 충남도청이 내포로 이전하고, 이름 또한 내포신도시라 불리게 되었다. 역사는 반복되는 것이 아니라지만, 새로운 기대가 솟는 것은 막연한 것만은 아닌 듯하다. 서해안고속도로가 개통되기 이전에 추진된 내포문화권 개발사업도 이제는 그에 맞는 변신이 필요할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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