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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이희재<(주)엠제이텍 모터코아 대표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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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이희재<(주)엠제이텍 모터코아 대표이사>
  • 윤진아 기자
  • 승인 2012.02.03 12:5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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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원들 부모님에 통장 만들어줘 용돈 정기 송금

   
   
유년 시절, 처음 오서산에 올랐을 땐 창공을 향해 “은행원이 되게 해 주세요!”라는 꿈을 외쳤다. 어린 마음에도 돈을 제일 많이 벌 수 있는 직업 같아 보였단다.

좀 더 넓은 시야로 세상을 바라보게 되면서 꿈은 더 많이 생겼다. 좋은 사장이 되는 꿈, 더 겸손한 자세로 원칙을 지키며 사는 꿈…. 앞만 보고 달려갈 때는 잘 보이지 않았던 꿈들을 소중하게 보듬으며, 이희재(광천중 28회) 대표가 2012년 새 도약의 포문을 열었다.

경기도 안성시 죽산면 장원산업단지에 자리한 (주)엠제이텍모터코아는 미래산업의 핵심부품인 초정밀 CORE를 생산한다. 모터 회전자 코어의 적층구조에 관한 특허(2007) 취득을 비롯, ISO/TS16949 2002 인증, QS 9000 인증, ISO 9001 인증, HMC/KMC SQ 마크 인증 등을 획득한 탄탄한 중소기업이다.

기업이 미래를 꿈꿀 때 그 중심에는 사람이 있다. 아무래도 대기업에 비하면 여건이 좋지 않은 중소기업 직원의 이직률을 낮추기 위해 이희재 대표는 직원들 부모님 앞으로 통장을 만들어 정기적으로 용돈을 넣어 드리고 있다.

국내 20여개 경쟁업체들 중 선두권

직원들의 근무의욕이 높아진 건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다. 통신·소형 파워 트랜스포머용 코어 등에 사용되는 니켈코어(NI-Alloy Core)와 실리콘 스틸 코어(SI-Steel Core) 생산에 이어, 엠제이텍은 모터코어 적층금형 및 자동검사 JIG, 콘트롤러 개발로 일본, 대만 수출길을 열며 그 품질과 기술력을 인정받고 있다. 여느 노랫말처럼 언제 ‘쨍’ 하고 해가 뜰지 알 수 없는 암담한 터널도 숱하게 지나왔지만 미련하리만치 꿈을 잃지 않은 데 대한 작은 훈장인 셈이다. 어느덧 엠제이텍은 국내 20여 동종 업체 중 다섯 손가락 안에 들 정도로 성장했다.

“저는 자수성가하느라고 고생 많이 했지만 제 자식들은, 그리고 제 직원들은 고생을 덜 하길 바라거든요. 지금껏 쌓아온 노하우를 알뜰살뜰 활용하고 거래처와의 신뢰를 이어가다 보면 점점 더 좋은 날이 오겠지요.”

어느덧 듬성듬성해진 머리숱이 신경 쓰이는 나이가 됐지만 아직도 오서산 정상에 올라 미래를 꿈꾸던 소년처럼 행복하다는 이희재 대표. 공들인 첨단과학을 들고 올해도 물 흐르듯이 자연스럽게 거래처 ‘팬’들의 가슴에 스며들 생각이다.

키가 작아 중학시절 내내 앞번호를 유지한 덕분에 장문순, 이재영과 같은 죽마고우를 만난 건 행운이었단다. 친구들과 몰려다니며 산짐승도 잡고 사과나 감을 서리해 먹던 추억은 지금도 생생하다. 2010년 제30차 재경광천중학교총동창회 오서산 등반대회 대회장을 맡은 이희재 대표는 지난해 제31차 재경광천중학교총동문회 기별체육대회에서 공로패를 받기도 했다.

“매년 총동창회가 주관해왔던 오서산 등반대회를 처음으로 재경총동창회에서 주관하게 돼 걱정이 많았던 게 사실이에요. 버스 아홉 대를 대절해 고향에 갔는데 무려 500여 명이 참석해주셨어요. 뜨거운 여름볕 아래 몸과 마음을 모아주신 동문들에게 감사할 따름입니다. 선·후배·동기들과 함께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며 오서산을 오르는 감회도 남다르더라고요. 제게 오서산은 지게 지고 나무하고, 소꼴 메고, 칡을 캐며 성장기를 함께한 장소거든요.”

‘용머리 장학회’ 1동문 1구좌 운동 큰 보람

이범진 광천중학교총동창회 장학위원장을 도와 ‘용머리 장학회 1동문 1구좌 갖기 운동’을 추진한 것도 두고두고 보람으로 남는다. “우리 후배들이 그 누구보다도 행복한 학창시절을 보냈으면 좋겠어요. 요즘 같은 졸업·입학 시즌이면 광천중학교 시절의 기억이 샘솟아요. 중학생이 된 기념으로 아버지가 읍내 중국집에 데리고 가 자장면을 시켜 주셨는데, 전 그때 자장면이란 걸 난생 처음 봤거든요. 시커먼 자장소스를 도저히 입에 넣을 엄두가 안 나 결국 저만 우동을 시켜 먹었지요(웃음).”

중국집에 우동과 자장면 말고 맛있는 요리가 더 있다는 사실은 한참 뒤에야 알았다. 나이를 먹어가고 돈도 벌게 되면서 생긴 생활의 여유만큼 이제는 그리 어렵지 않게 새로운 음식을 사 먹을 수 있게 됐지만, 여전히 그 시절 아버지와 함께 먹던 우동의 맛을 잊을 수는 없다. 잠시 켜졌던 광천 읍내 중국집의 기억은 당분간 소멸될 테지만 우리의 고향은 끊임없이 각별한 이야기들을 이어낼 것이다.

오늘 밤에는 중학교 졸업앨범을 뒤져 우동 한 그릇에 열광하던 열네 살 소년의 얼굴을 찾아봐야겠다는 너스레에 미소가 고인다. 다시, 충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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