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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해 한용운 아들 한보국, 독립운동가이자 온건 사회주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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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해 한용운 아들 한보국, 독립운동가이자 온건 사회주의자”
  • 남원근 기자
  • 승인 2010.07.28 12:0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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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광식 동국대 교수 오는 6일 만해학회 세미나에서 첫 공식논문 발표

만해 한용운의 아들이자, 해방 전후 관내 대표적인 좌익 인사였던 한보국 선생에 대한 학계 첫 공식논문이 동국대 불교학과 김광식 연구교수에 의해 발표될 예정이다.

김 교수는 “그간 한보국에 대해 홍성신문을 비롯한 지역언론과 일부 증언이 나오기는 했지만 공식적으로 그의 삶에 대해 학계에 발표된 적이 없어 이번 논문이 최초 사례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본지는 지난 1990년 첫 보도를 시작으로 1996년과 2000년, 2006년 지속적으로 한보국의 잊혀진 생애를 발굴해 보도한 바 있다. 이번 논문은 오는 8일 서울 만해사상실천선양회 사무실에서 만해학회가 주관하는 세미나를 통해 ‘한용운 아들, 한보국의 삶’이라는 제목으로 발표된다.

이번 논문은 본지에서 그간 다뤘던 내용 중 일부 불확실한 내용을 정정하면서 몇 가지 새로운 사실을 첨부해 주목을 받고 있다. 김 교수는 만해 한용운과 한보국의 제적등본을 떼본 결과, 만해가 기존 13~14세 때 결혼했다는 기존 사실과 달리 18세에 결혼한 것으로 추정했으며, 만해와 한보국이 1936년 첫 상봉을 했다는 기존 보도와 달리 1930년 이미 만해가 한보국의 존재를 기고글을 통해 알렸으며, 교류가 있었던 것으로 나타났다고 밝혔다. 이번 논문에서는 만해가 자신의 형을 위해 호적에서 1921년 스스로 사망신고를 했다는 사실도 나와 한보국과 일정하게 거리를 둔 것이 승려로서의 신분도 있지만 항일인사로서 가족의 안위를 염려했기 때문이 아닌지 추측케 하고 있다.

김교수는 아울러 한보국이 관내에서 인민위원회, 건국준비위원장을 하기 전 이미 서울에서 공산당의 핵심적인 역할을 했으며, 고향으로 돌아온 후 박설봉, 이강세 등 민족주의와 사회주의 인사를 아우르는 가야동지회를 통해 조선독립을 준비 중이었다는 사실을 밝혔다. 사회주의자였지만 민족독립을 위해 한보국이 적극적인 역할을 했음을 보여주는 사례인 셈이다. 한보국은 대표적인 좌익 인사였음에도 그로 인해 해방 전후와 한국전쟁 당시 피해를 입은 사람이 없을 정도로 온건한 사회주의자였음도 관련 증언을 통해 드러났다.

김교수는 이같은 사실을 논문에 적시하면서 “홍성사회가 한용운 중심의 선양사업에 한보국도 포함할 필요가 있으며, 가야동지회와 같이 일제시대 및 해방공간에서 한보국을 포함한 중도적 민족운동, 좌우합작운동을 했던 진보진영의 역사 복권 작업이 요청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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