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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성군농민회 정상진 사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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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성군농민회 정상진 사무국장
  • 김복실
  • 승인 1999.12.3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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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채없는 세상에 살고 싶다
세기의 바뀜과 새 천년의 열림 속에서 지구촌은 "희망"을 노래한다. 왜 그리 수선떠는지 모르겠다, 그냥 이렇게 살다 가면 그만이라며 담배만 뻑뻑 빨아대는 촌로에게 맞장구치면서도 더 나은 세상을 만들고자 몸부림치는 청년 농민에게서 "희망"은 건져올릴 가치가 있음을 배운다.

농사꾼에게서 새 천년 우리 지역의 희망을 찾는 것은 아직도 농업종사자가 과반수 이상을 차지하며 우리 지역경제를 떠받치고 있기 때문이며 절망의 끝에서 끌어올리는 희망의 외침은 강렬한 절규가 되어 귓전을 때리기 때문이다.

장곡면 대현리 2구 텃골에 사는 정상진(29)씨. 외딴 산골에 정씨 집 한 채만 있는데 가족은 많다. 동갑내기 아내 이성자씨와 장남 태희(5), 장녀 다운(3), 차남 창희(2)가 집안에서 거주하는 식구라면 집 밖으로는 토종닭 100여마리, 한우 30여마리에 70평 버섯하우스에서 크는 느타리버섯이 한 자리씩 차지하고 있다.

3년 전 산 하나 넘는 대현 1구 평티 본가에서 이사해 텃골에 둥지를 틀었는데 이 곳에 농사터가 많아 부친 정인영(57)씨와 모친 최명순(54)씨가 자주 아들네로 건너온다. 여름, 겨울방학이 되면 숙식과 일을 함께하는 식구들이 무척 는다.

농촌활동을 나온 대학생 20여명이 10여일 넘게 거주하는가 하면 서울 초 ·중학생도 대여섯명씩 일년에도 몇 팀이 농촌생활체험캠프를 하러 오는 것이다. 농사일이 좀 적다는 한 겨울에도 숨돌릴 틈 없이 바쁘다는 정씨의 생활을 엿볼 수 있게 한다.

청양농고에 진학하면서 농업에 대한 생각을 키우고 예산농업전문대학 축산과에 들어가서는 프로농사꾼이 되겠다고 마음을 굳힌 정씨는 농사 3년 짓는 것으로 군필하면서 10여년간 고향을 지키며 농사만을 지어왔다.

또 대학에서 총학생회장을 역임하며 학생운동의 선봉에 서고 농사를 지으면서는 군4H회장, 홍성군농민회 조직부장, 사무국장(현)을 맡아 지역농민운동에 투신하며 더불어 사는 농민세상을 만들어나가는 이 진짜 농사꾼에게 새로운 세기는 도대체 무슨 의미가 있을까?

"정리해고를 당하지 말아야죠. 농민이 무슨 정리해고냐고요? 정부가 수출 많이 하려면 기초농산물 수입개방은 불가피하다며 농업보호정책을 포기하고 경쟁력 운운하며 농민도 구조조정이 불가피하다고 몰아부치고 있지 않습니까?"

오늘은 어제의 연속이고 또 내일은 오늘의 이어짐이라는 평범한 진리가 떠오른다. 지난해 연말 서울로 쳐들어갔던 성난 2만여 농민들의 외침을 정씨는 상기시켰다. 어제의 그 분노에 찬 요구가 해결이 되지 않았는데 어찌 장미빛 내일을 꿈꿀 수 있겠는가.

"농가부채의 근본적인 해결이 있어야 농민은 숨통이 트일 겁니다. 잘못된 농업정책과 생산비에도 미치지 못하는 농산물 값으로 인해 농가부채는 날로 늘어 파산 위기에 직면해 있습니다. 나라를 부도 위기로 몰은 기업과 금융권에는 100조원을 투자한 정부가 농민들의 총 부채 30조원의 상환 유예와 이자감면 요구를 외면하고 있습니다. 김대중 대통령은 농민과 약속한 농가부채 해결을 위한 특단의 대책을 제시하고 농가부채 특별법을 제정해야 합니다. 부채를 탕감해 달라는 말이 아닙니다. 고금리 단기대출을 장기저리 대출로 전환해주고 이자율을 내려달라는 겁니다."

농대를 나온 정씨도 부채가 6800만원이다. 농사를 못져서 진 빚이 아니다. 그는 정성을 들이지 않으면 딱 실패하고 마는 버섯농사를 한 해도 실패하지 않고 3년째 짓고 안정된 판로(풀무생협을 통한 직거래)로 짭짤한 소득을 올리고 있다. 논 30여마지기, 밭 5천여평에 담배, 고추농사일도 거뜬히 해내고 있다.

컴퓨터를 이용해 가축사양관리를 하고 최신 농사정보를 입수해 활용하는 신세대 농사꾼이다. 그의 빚은 대부분 정책자금이다. 정부는 우리나라 현실에도 맞지않는 규모화, 전업농화 농업정책으로 엄청난 자금을 보조 융자해 주었지만 생산비에도 미치지 못하는 농축산물 가격으로 상환하지 못하면서 고스란히 빚으로 남은 것이다.

"IMF관리체제에서 실업자금으로 몇 조원이 만들어진 것은 가열찬 노동운동의 성과였습니다. 우리 농민도 권리를 찾기 위해 싸워야 합니다. 홍성군농민회는 올해부터 면단위, 마을단위의 조직을 확대 강화할 계획입니다. 이같은 지역적인 결사체에 동참하여 농민의 힘으로 우리농업을 지켜내고 WTO수입개방을 막아내야 합니다. 7천만 겨레의 식량을 지켜내야 합니다."

가족들이 건강하고 빚을 줄이는게 새해 소망인 정상진·이성자씨 부부. 그러나 새 천년에도 이러한 소박한 소망조차 쉽게 이뤄지지 않을 것 같다. 정씨는 안다. 그리고 다시한번 목소리를 높인다. 농민이 주체적으로 세상을 바꿔나가야 한다고. 그의 트럭에 더 이상 "협동조합 개혁, 농가부채해결, 농정공약 이행" 같은 스티커를 부칠 필요가 없는 세상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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