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성읍 월계마을 故 유재희 여사 유가족의 사모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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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성읍 월계마을 故 유재희 여사 유가족의 사모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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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09.05.26 11: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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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신적인 사랑 간직하며 살겠습니다

어머님을 아버님 곁에 모셨습니다.

이승에서의 60년 해로를 저승에서도 계속 이어가시라는 뜻이었습니다.

지난 10일 아침 어머니와의 이별은, 지난달 11일 갑작스런 아버지의 죽음을 되새기게 했습니다.

당시 중환자실에서 힘든 투병생활을 하시던 어머니를 ‘미지의 세계로 먼저 보낼 수 없다’는 아버지의 배려였던 셈입니다.

먼저 터를 닦은 뒤 ‘병마의 고통에서 해방된 좋은 세상이니 빨리 오라’고 어머니를 부른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이런 뜻을 알기까지는 참으로 황망했습니다. 천애의 고아가 됐다는 것도 그렇지만 하늘의 뜻을 안다는 지천명을 넘긴 자식들이 넷이나 있는데 꼭 한 달 만에 어머니마저 떠나보내게 했다는 죄책감에 고개를 떨궈야 했습니다.

차마 부고장을 날리기가 힘들었습니다.

하지만, 또다시 그 먼 길을 찾아 격려와 위로를 해주셔서 무사히 어머니를 모실 수 있었습니다.

여리디 여린 심성인 어머니는 자식을 위해 헌신적인 사랑을 베푸는 여느 어머니와 비슷한 분이셨습니다.

그러나 말년에는 간경화라는 병마와 힘든 싸움을 해야 했습니다. 20살에 아버지와 결혼할 때는 ‘국회의원 집에 시집간다’고 주위의 부러움을 많이 받았답니다.

하지만 신혼생활은 한달 만에 터진 한국전쟁으로 날아갔고, 시누이가 다섯인 8남매의 맏며느리로서 고달픈 현실을 감내해야 했습니다. 딸이라도 있었더라면 카타르시스의 통로가 될 수도 있었을 텐데… 당연히 두통에 시달리면서 진통제 없이는 하루도 견뎌낼 수 없는 세월의 연속이었습니다. 50년 넘게 복용한 진통제의 결과는 간경화로 이어졌고요.

어머니를 하늘나라로 보내면서 추석 일주일 전에 태어난 어머니의 생일상을 제대로 차려드린 적이 없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추석 차례상을 생일상으로 대신하자’는 어머니의 말을 너무나 당연하게 받아들였습니다. 뒤늦었지만 다가오는 생신에는 추석 차례상 이상으로 상을 차려 자책의 사모곡을 부르려고 합니다.

면목 없지만 많은 격려와 위로를 해주신 분들의 가정에 행복과 건강이 항상 넘치길 기원합니다. 좋은 소식이든 궂은 소식이든 꼭 연락 주셔서 사람도리를 할 수 있도록 해 주시길 부탁드립니다.

2009년 5월

아들 손규원, 규흥, 규성, 규석
손자 승표, 종표, 인표, 창표, 영표
손녀 보경, 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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